이 기사는 문창길(CHARLES MOON) 목사의 저서 「크리스천의 필수지식」 제2부 “성경의 가장 영광스러운 성육신 진리” 4장에서 발췌한 글이다. 재림신앙과 신학 블로그 사이트에 게재하도록 허락해 주신 저자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이 책을 구입하기를 원하는 분들은 한국이나 미주의 시조사로 연락하시기 바란다.


A.  서 론

성육신의 진리,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의 기별은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이 선포하고 히브리서가 변호하며 요한계시록이 예언한 한 성경전서에서의 핵심 진리이었다. 그 진리는 19세기 윌리엄 밀러의 재림운동에 가담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옹호했던 진리이기도 하였다. 재림선구자들의 대다수는 그 재림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은 요한계시록이 예언한 세 천사의 기별에 의해서 성육신 진리의 보다 더 확실한 의미를 붙잡을 수 있게 되었다. 

1888년 미네아폴리스대총회에서 와그너와 존스가 선포한 그 성육신의 기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였으며 그것이 바로 셋째 천사의 기별임을 엘렌 화잇은 확인하였다. 그 기별을 확인한 두 선구자에 이어 또 한 사람으로 프레스캇이 나타났으며 그는 그 기별을 변호하고 그 기별의 세계적 선포에 이바지하였다. 

이와 같이 셋째 천사의 기별이 더욱 확고하게 되었을 즈음 그 기별에 대한 사탄의 첫 번째 도전이 전장에 기술한 봐와 같이 거룩한 육체 운동으로 재림교회의 역사에 등장하였다. 그 거룩한 육체운동은 그리스도가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인성을 취하셨으며 거룩한 육체를 가지셨음을 주장하였다. 그 운동이 노렸던 목적은 성경의 진리 중의 진리 성육신 진리를 짓밟고 모독함으로 셋째 천사의 기별을 땅속에 묻어버리려고 하는 데에 있었다.  

셋째 천사의 기별에 대한 사탄의 도전이란 그 한 운동으로 결코 끝난 것은 아니하였다. 그 도전은 재림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것이었지만 그 다음 도전은 외부의 미국 복음주의 교회를 통하여 유발되었다. 그 두 번째 도전은, 목적에 있어서는 그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 진리에 대한 항쟁이었다. 그 도전은 첫 번째보다 더욱 간교하고 더욱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으로 나타났으며 재림교회 내부 깊숙이 침입하고 지도자층을 정복하는 데에 있어서 성공하였다. 그 결과는 참으로 참담하였으며 그것은 오늘 우리들 모두가 경험하는 현실이 되었지만 재림 신자들 대부분이 이 역사적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더욱 슬픈 비극인 것이다. 

그 도전은 1950년대에 일어난 일이었으며 여기 완강히 저항하고 투쟁한 재림교회 선구자들은 그 도전-새로운 가르침을 신 신학이라 불렀다. 본장에서는 그 신 신학이 재림교회에 침투하게 되는 역사적 과정들을 소개하며 그리고 또한 그 신 신학에 동조한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변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용한 엘렌 화잇이 기록한 베이커 편지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B.  신 신학이 재림교회에 침입한 역사  

1955년 어느 날 침례교 청년 마틴(Walter Martin)이 재림교회의 대총회 본부 사무실을 찾아 왔으며 재림교회의 진리를 알고자 하였다. 그는 뉴욕의 모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던 한 학생으로서 장차 크리스천 이단종파의 전문가가 되리라는 뜻을 가지고 여러 종파들에 관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박사 학위 논문 준비를 거의 마쳤으며 마지막의 한 작업으로 재림교회의 총본부 사무실을 찾게 된 것이다.  

재림교회의 진실을 조사하는 중 그는 재림교회가 일반 개신교회들이 인식하고 있듯이 이단이 아니라는 생각이 더욱더 굳어져갔다. 그는 이 사실을 재림교회의 진실을 찾도록 지시한 그의 후견인 장로교회 목사요 크리스천 정기 강행물 이터니티(Eternity) 잡지의 편집인 반하우스(Donal G. Barnhouse)에게 보고하였다. 그리고 또한 그는 반하우스를 재림 교회의 신학자 레로이 프룸(LeRoy E. Froom)과 대총회목회부 부장 로이 앤더슨(Roy A. Anderson)에게 소개하였다. 

이렇게 하여 서로 만나게 된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두 사람과 재림교회의 그 두 사람들은 회합을 가지고 서로가 이해하지 못했던 교리와 신조들에 관해서 서로의 이해를 돕는 기회들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시작된 회합들은 비공식으로 시작되어 진행된 일이었지만 서로가 달성시키고자 한 목표를 가진 열성적인 회합이 되었다. 애당초 계획하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1955년과 1956년 사이에 저들은 도합 18회를 가지게 되었다. 저들의 회합에서 일어났던 진행 상항과 토의 내용을 그들 양편의 정기 간행물들을 통하여 발표하기로 하자는 합의까지 하게 되었다.

이러한 회합들을 통하여 그 복음주의 교회 대표들은 재림교회가 비록 두서너 가지 특이한 교리들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정통 크리스천교회의 신조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렇지만 저들에게 크게 거리낌이 되는 교리 하나가 있었는데, 사실은 그 문제를 서로가 해결하고자 한 의지가 그들에게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빈번한 회합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저들 복음주의자들에게 거리낌이 되었던 재림교회의 교리란 무엇이었는가?

그 복음주의자들은 재림교회가 전통적으로 성육신 진리를 고수해 온 사실을 발견하였다. 재림교회가 그리스도의 인성을 나타나는 데에 있어서 사용한 표현들이란, 엘렌 화잇의 글에서 읽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죄된 본성,”“우리의 타락한 본성,”“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본성”등이었다. 저들 복음주의자들은 비록 그리스도의 인성을 받아들인다고는 하였지만 그리스도가 죄의 인성을 취하셨다는 가르침은 부인하였었다. 저들의 가르침은 성경보다는 오히려 가톨릭의 가르침에 가까웠으며 그리스도는 죄와 죄의 성향이 없는 아담의 타락하기 이전의 인성을 취하셨음을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론에 있어서 이러한 차이점을 서로가 발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표들이 서로 마주치며 대화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저들 각자는 저들 나름대로의 무엇인가를 달성시켜 보겠다는 강한 의지와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은 재림교회 대표들의 갈등과 유동성을 읽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교리를 수정하기를 계속 유혹하였다. 재림교회 대표들은 복음주의자들의 기대와 아량을 읽었으며 그들을 통하여 크리스천 교계에서의 이단이라는 누명을 벗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저들의 회합을 종결지어야 할 날에 이르렀을 때에 재림교회 대표는 크리스천 교계에서 이단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다는 큰 희망을 가지고 저들 교회를 이와 같이 변호하였다. “재림교회의 역사에, 어떤 다른 교단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극단적인 저자들이 이따금씩 나타나서 그리스도의 죄의 인성을 주장했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일반 신도들은 그러하지 아니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 증거로써 엘렌 화잇의 60 인용문(모두가 화잇의 펜으로 쓰여 진 글이 아니었음)을 제시하였다. 

복음주의자들은 만족하였으며 심히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인성을 취하셨다는 새로운 가르침이 재림교단에 침입할 수 있는 문호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 회합이 마쳐졌을 때 복음주의 정기 간행 잡지 이터니티(Eternity) 1956년 9월호 전면 표지에는 최 대형 활자로 “제칠일안식일재림교는 크리스천인가?”하는 특별 광고문이 인쇄되었다. 거기에 복음주의 대표자와 재림교회 대표들이 18회의 회합을 마치고 도달한 결과를 전 세계 크리스천교계에 공포하였다. 그리고 재림교회를 이단으로 여기는 일은 앞으로 결코 있지 아니할 것이며 “저들은 우리 크리스천들의 형제임을 선언 한다”는 요지가 발표되었다. 

그 이터니티 잡지의 발표와 때를 맞추어 대총회 목회부장 앤드선은 그의 주관 아래에 있는 미니스트리(Ministry) 잡지 1956년 9월호를 통하여 성육신의 새로운 가르침을 발표하였다: “그리스도는 인성을 취하셨으나 우리의 죄 된 성향(propensities)을 취하지 아니하셨다. 우리의 죄, 허물, 책벌 등 모두가 그분에게 전가되었으나 실지로 그분의 것이 아니었다…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것과 같은 육신을 취하셨다…아담이 시작한 곳에서 시작하셨으며 타락하기 전의 죄 없는 육신을 취하셨다. 인간의 형체를 취하셨지만 부패되고 죄 된 속성은 취하지 아니하셨다…아담으로부터 아무런 악의 성향을 유전 받지 아니하셨다”라고.

이와 같이 18회의 회합을 거쳐서 복음주의의 대표 잡지, 이터니티을 통하여 재림교회는 이단이 아니라는 공식 발표와 동시에 재림교회의 기관지, 미니스트리를 통해서도 새로운 그리스도론이 발표됨으로 신 신학의 가르침이 재림교회의 심장부 깊숙이 침입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수적인 재림교회가 이렇게 단시일 동안에 극적인 교리의 변경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는가?

재림 선구자들이 확신하고 가르친 그리스도의 성육신 진리는 1872년에 발행된 제칠일 재림신자들이 가르치며 실천하는 기초적 원칙들에 열거된 25개 조항들 중 그 둘째 조항에 이와 같이 표명되고 있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들이며 하나님, 그분을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은 그분을 통하여 존속한다. 그분은 우리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시려는 목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의 본성을 가진 육신을 취하셨다. 그분은 사람들 사이에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삶을 사셨다.”

위에 표명된 바와 같이 재림교회가 조직된 이래 고수해 왔으며 그리고 1888년에 재확인되었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가르침은 1956년에 이르러, 대총회의 미니스티리 잡지가 발표한 바와 같이, 돌연적으로 변경된 것이다. 물론 그것은 성경연구를 통해서 혹은 대총회 결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위에 언급한바와 같이 1955년과 1956년에 복음주의 교회와 재림교회 대표들이 가졌던 18회의 회합으로 인하여 일어났던 결과였다. 그 당시 재림교회 지도자들은 크리스천 교계의 이단 명단에서 제거되기를 열망한 것이 사실이었으며 그리고 저들은 재림교회를 구하고 타 종파들과 접촉하며 재림교회의 사명을 이루고자 한 선한 뜻을 가지고 최선의 일을 다 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다행스러것은 지금의 28교리는 전통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4장 참조).   

그리하여 저들은 저들의 결정을 정당화시키고 변호할 수 있는 엘렌 화잇의 증언을 찾아 구하였다. 물론 엘렌 화잇은 단 한 줄의 글도 저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증언을 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저들은 1955년 화잇유산관리부 문서 창고에서 기록 보관 책임자였던 팀 포이리어(Tim Poirier)를 통하여 엘렌 화잇이 위리엄 베이커에 보냈던 편지 한 통을 찾아내었으며 저들이 찾고 있었던 한 문단을 찾아내었다. 

그리하여 저들은 한 개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찾아낸 한 문단의 글을 가지고 엘렌 화잇이 일생 변호해 온 그리스도론 뿐만 아니라 재림교회가 100여년 핵심 교리로 믿고 가르쳐온 그리스도론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베이커 편지란 어떠한 사항에서 기록된 것이며 저들이 찾고 있었던  내용의 문단은 무엇을 전하는 글이었는가? 

C.  신 신학의 변호를 위하여 사용된 베이커 편지 

베이커 편지란 1895년 엘렌 화잇이 호주 테스머니아 섬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사역자 윌리엄 베이커(William Baker 1858-1933)를 도와주고격려하기 위하여 보낸 한 통의 편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 편지 내용은 그 젊은 사역자가 강조한 그리스도의 인성에 추가되어야 할 그리스도의 신성을 권고한 것이었다. 그의 편지는 개인에게 보낸 편지였으며 반드시 공개되어야 할 성질의 편지는 아니었다. 그가 사망한 후에 그의 편지는 다른 편지들과 함께 수집되어 화잇유산관리부의 문서창고 속에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 편지가 쓰여 진지 60여년의 세월이 지나서 1955년 신 신학에 동조한 사람들에 의해서 발견되기까지 그 편지는 이 세상의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아니한 문서로 남아 있었다.  

베이커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1882-1887년 그는 칼리포니아주 태평양 인쇄소에서 와그너의 조력자로서 일하였다. 그 후 호주의 출판 사업을 돕기 위하여 호주로 이동하였으며 그는 얼마동안 호주잡지 출판을 위하여 일하였다. 그런 후에 그는 호주와 테스머니아 섬 그리고 뉴질랜드까지 돌보는 사역자로 임명되었다. 1891년 엘렌 화잇이 호주를 방문하였으며 여러 해 머물고 있는 기간 동안에 그녀는 테스머니아 섬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베이커 목사에게 편지한 것이다. 

베이커 목사는 그 당시에 재림교회의 다른 사역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가 타락한 인류의 죄의 육신을 취하고 오신 사실을 굳게 믿은 사람이었다. 그 당시 복음 사업에 헌신한 사역자들은 그러한 신앙을 가지므로 그리스도가 저들 안에 저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음을 믿었으며 그리스도가 마신 쓴 잔은 자신들의 고통으로 여겼다. 그들의 대다수는 학위를 가지지 못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었으며 따라서 저들은 더욱 단순하였고 자신들의 소신하는 바를 열심히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베이커 목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시련과 유혹, 실패와 실망, 고통과 범민을 이해하고 우리들을 돕고자 하시고 우리와 같은 육신을 취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설교하였다. 그의 강조를 야곱의 꿈에 나타난 하늘에서 내려온 사다리로 예증하여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을 도망친 날밤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들판에 누웠을 때 그의 번민은 극에 달하였으며 그의 앞날은 캄캄하게 보여 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버리지 아니하셨다. 하나님은 번민하는 야곱에게 죄인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경윤을 보여주셨다. 하늘에 내려온 사닥다리는 공중에 거저 매어 달려 흔들흔들 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가 누워있는 바로 그 땅으로 내려와서 양 다리가 굳게 세워졌다. 죄인을 구원하려 오신 그리스도는 영화된 몸이 아니었으며 죄인과 꼭 같은 죄의 육신을 취하시고 계셨다. 그리하여 베이커 목사는 우리의 구세주는 우리들과 더욱 가까운 분이심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가 타락한 죄의 육신을 취하고 오신 사실을 베이커 목사는  굳게 확신하고 그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설교하는 일에 있어서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언급하는 일을 잊는 실수를 범하였다. 이와 같은 실수는 오늘 우리 젊은 사람들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실수이기도 한 것이다. 베이커 목사는 엘렌 화잇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으므로 그에게 장장 19 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글을 친필로 기록한 것이다. 그녀의 편지에서 그에게 특별한 주의를 환기시킨 대목을 여기에 열거해 보이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점을 특별히 조심하십시오…그분은 인성을 취하셨으며 인간 속성이 시험을 받는 것처럼 모든 점에 있어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죄를 범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타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한 순간도 악의 경향이 없었습니다…결코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리스도에게 부패의 흔적이나 경향, 혹은 그분에게 어떤 모양으로 부패에 굴종하셨다는 극히 사소한 인상도 사람의 정신 가운데 남기지 않도록 하십시오…우리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우리들과 같은 인간 존재로 만들려고 하는 욕망을 경고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렇게 되실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그릇되게 나타내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상과 같은 편지 내용은 엘렌 화잇이 심히 사랑하고 아끼는 젊은 사역자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나타나는 데에 있어서 균형을 잃고 혹시 그 한 편으로 기우려지지는 않을까 하는 어머니 같은 염려와 사랑을 가지고 교정을 권면하며 격려하는 글로서 읽으며 이해하는 것이 바로 된 일이라 생각된다. 이 편지 내용은 현대 언어로 “개인 상담”에서 나타낸 권고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상담자와 피상담자와의 대화를 일반에게 공포하고 상담 지도자의 기본 사상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있어서 참으로 무례하고 부당한 일이며 언어도단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진리와 사실에 대하여 정직하여야 한다. 우리가 그 당시 참으로 엘렌 화잇이 품고 있었던 그리스도론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베이커 편지가 쓰여 진 같은 연대나 그 전후에 발표된 그녀의 공적 글들, 특히 호주 정기 간행물(Australian Bible Echo)과 대총회 정기 간행물(Review and Herald)을, 그리고 거기에 그 당시의 다른 재림 선구자들의 글들을 열람하는 일은 마땅하고 공정한 태도라고 확신한다.

특별히 베이커 편지가 쓰여 진 같은 년대에 쓰여 진 시대의 소망의 원고는 어떤 개인에게 보내지는 글과는 달리 엘렌 화잇의 사상을 공적으로 발표하는 문서이며 우리가 거기서 그녀의 그리스도론을 찾는 것은 정직하고 바로 된 일이라 믿어진다. 그녀가 저술한 시대의 소망에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증언한 한 대목을 여기에 인용해 두고자 한다. 여기에 엘렌 화잇이 기록한 증언과 베이커 편기에 기술된 대문을 서로 비교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예수는 인류가 4천 년간의 죄로 인하여 쇠약하여진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은 아담의 모든 자녀들과 같이 위대한 유전 법칙의 작용으로 나타난 결과들을 받아들이셨다. 이러한 결과가 어떠하였는가는 그분의 지상 조상들의 역사 가운데 보여 지고 있다. 그분은 이러한 유전을 지니고 우리의 슬픔과 유혹들에 같이 참여하고자 오셨으며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죄가 없는 생애의 모범을 주고자 하셨다”(DA 49) – (참조: “4000년간 죄로 쇠약해진 인간, 즉 죄의 결과로 쇠약해진 인간을 말함. )       

D.  결론의 말

셋째 천사의 기별에 대한 사단의 첫 번째 도전은 거룩한 육체 운동으로 나타났으며 성경의 진리 중의 진리, 가장 영광스럽고 성육신 진리를 공격함으로 셋째 천사의 기별을 땅속에 묻으려하였다. 그 거룩한 육체 운동은 그리스도가 죄가 없는 거룩한 육체를 주장하였으며 성령의 나타나심을 가장하기 위하여 넘어지고 소리 지르는 광태를 나타내었다. 그 두 번째 도전은, 그 목적에 있어서는 그 첫 번째 도전과 온전히 같았으며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는 고차원적이었으며 심히 간교하였다. 

복음주의 교회 대표들은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크리스천교계에서 이단자 명부에서 제거되기를 심히 갈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찍이 파악하였으며 “그리스도가 죄가 없는 육신을 취하셨다.”는 교리를 미끼로 던지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유혹하였다.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함으로 배가 심히 고픈 예수님에게 사탄이 나타나서 돌을 빵으로 만들게 한 유혹과 유사했었다. 당시의 재림교회 지도자들은 그 유혹에 넘어갔엤으나, 지금의 기본교리28은 전통적인 그리스도의 인성관으로 다시 수정하여 수용한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참조: 기본교리 28은 그리스도꼐서 타락한 인간의 본성, 곧 죄의 결과를 지난 것으로 수정함.)

저들은 한동안 그 유혹에 넘어졌으며 “그리스도가 죄가 없는 육신을 취하셨다”는 새 교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저들은 저들이 받아들인 그 새 교리를 입증하고 변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엘렌 화잇의 증언을 찾아 구하였다. 그리하여 때마침 저들은 화잇유산관리부의 창고에서 60여전에 기록한 베이커 편지 한 통을 발견하였다. 저들은 성육신의 참 진리를 구하여 엘렌 화잇의 증언을 구한 것이 아니었으며 자신들의 주장을 변호하고 옹호하기 위하여 엘렌 화잇의 증언을 구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저들은 그 편지를 대대적으로 선전 광고하였다.

오늘 우리가 엘렌 화잇의 한 개인에게 보낸 편지를 통하여 나타낸 권면과 그리스도의 생애를 저술한 책을 통하여 공적으로 나타낸 그녀의 소신을 구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믿어진다. 오늘 우리는 자기주장이나 소신을 정당화시키며 증명하기 위하여 예언의 신을 잘 못 인용함으로 교단 전체에 초래시킨 참혹한 결과에 대하여 냉철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판단할 수 있는 양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오늘의 참담한 결과를 어떻게 뒤바꿀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 주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간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참고 문헌
Walter R. Martin, The Truth About SDA, 1960.
LeRoy Edwin Froom, Movement of Destiny, 1971.
J. R. Zurcher, Touched with Our Feelings, 1999.

이 주제에 대해 더 연구하기를 원하는 분들은 본 블로그 사이트에 게재된 다음 문헌/기사들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교리에 대한 질문」의 배경과 역사적/신학적 분석 문헌들
재림교회와 월터 마틴
우리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와 있는가?
「교리에 대한 질문」 초안에 포함되어 있던 원죄론

그 외 비평/분석 문헌들
테드 윌슨 대총회장 선출 소식에 접한 소고(小考)
미주지남의 「그리스도의 인성론 – 도전과 대응」 비평
날조된 유사함

문창길(CHARLES MOON) 목사는 1962년 도미하여 덴버신학대학(M.R.E.), 앤드루스신학대학(B.D.),매코믹신학대학원(D.Min.) 등에서 수학하였다. 1972년 시카고 지역에서 조직된 한인교회의 초대목사로 시작하여 1981년 하와이 호놀루루 교회, 그 후에 캐나다 토론토 교회 등에서 목회에 임했다. 토론토 교회에서의 마지막 사역을 마치고 1996년에 정년 은퇴한 후, 건강 생활 연구, 저술과 교편 생활 및 지역 사회 봉사에 임하였으며 더불어 중국에 수차례 오가며 성경과 건강 생활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