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1978년 2월 10-23일에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노소카 파인즈(Nosoca Pines)에서 개최된 대총회 PREXAD (President’s Executive Advisory Committee)에서 발표되고 논의된 자료이다. 그 당시 저자는 리뷰와 헤럴드지의 편집인이었으며 후에 엘렌 화잇 유산관리위원회의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1978년경 교회 지도층에 대한 불신풍조의 점진적 상승에 대해 염려하던 교회 지도자들이 그 당시 리뷰와 헤럴드지 편집인이었던 케네스 우드 박사에게 그 원인과 배경에 대해 조사하여 예정된 교회 지도자들의 회의 중에 발표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 있었던 복음주의파 신학자들과의 대화와 그로 인해 초래된 일련의 사건들과 「교리에 대한 질문」의 출간으로 파생된 문제들에서 그 주요 원인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이 문서는 역자가 오래전 엘렌 화잇 유산관리 위원회로부터 받아 보관해 온 서면 자료이다.

역자: 김정대 (Justin Kim)


1955년 이후 재림교회 역사의 일부 측면에 대한 고찰

서 론

모든 원인은 그에 상당한 결과가 따르고 모든 결과에는 그 원인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 원인의 결과를 모면하거나 피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기계적인 결정론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이나 조직이 단지 그들이 통제할 수 없었던 과거의 사건들 때문에 특정한 행동 과정을 따라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운명을 형성하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데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상황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과거의 사건들과 결정들에서 기인하는만큼, 만약 우리가 과거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현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과거가 현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여러 위원회에서 자주 시인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언급을 우리는 자주 접하곤 한다: “그것은 우리 형제들에 의해 오래전에 결정되었다,” 또는 “우리는 그 다리를  오래전에 이미 건넜다.” 이 말들이 암시하는 바는, 의료 분야이던, 교육 분야이던, 또는 출판 분야에서 오늘날 우리가 하는 일이 어느 정도 과거에 내려진 결정에 따라 꼴지어 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30년대에 우리 교육 기관의 인가를 받고자한 결정이 우리 학교와 교단 모두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그리고 의료진 종사자들을  교단의 다른 종사자들과는 다른 재정 범주로 분류하기로 한 결정은 지금도 끊임없이 씨름해야 하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문서의 목적은 1970년대에 우리 교회가 믿고 가르치는 걸 결정하는데 이바지한 사건들의 개요를 제시하여 지난 20~30년 동안 교회를 괴롭혔던 분열과 논쟁 중 일부를 설명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한 교인은 편지에서 우리의 상황을 잘 기술하고 있다: “약 1956년까지 교회의 가르침과 이해는 매우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믿고 가르쳤으며, 다른 견해를 취하는 사람은 모두 약간 경계심을 가지고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와 있는가?

최근 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들은 오늘날 교회 안에 존재하는 교리적 분열의 중대한 원천으로 1950년대 중반에 있었던 월터 마틴과 도널드 반하우스와 가진 대화와 그 후 1957년에 출판된 「교리에 대한 질문」을 지목하고 있다. 다른 이들은 그 몇 해전인 1950년에 윌랜드와 쇼트가 저술한 「1888년에 대한 재검토」를 주된 원천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또 다른 이들은 로버트 브린스미드에 의해 주도된 성소 각성 운동과 그 후 지속된 그의 선동에서 오늘날 신학적 혼란의 주요 원인을 찾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복음주의파와의 대화가 매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었고 「교리에 대한 질문」은 가치있는 내용을 아주 많이 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대화는 양쪽이 모두 서로가 말하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여 도움이 되는 최대한의 결과를 산출하지 못하였다. 또한 「교리에 대한 질문」은 우리의 두 기본적인 교리를 다시 정리하여 쓰면서 교회가 100년 동안 가르쳐 왔던 것을 부정하는 듯이 기술하였기 때문에 재림교인들 사이에 혼란을 조장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었다. 많은 재림교인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이 복음주의파 세계로 부터 용인됨을 받고자 교단의 신학적 견해를 바꾸려는 음모에 연루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신념은 여전히 많은 수의 재림교인들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최근 2월 6일, 나는 존경받는 교단의 한 사역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나는 좋은 의도를 가진 우리 형제들 중 일부가 우리를 배신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형성된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복음주의파와의 대화 및 「교리에 대한 질문」의 출판과 관련하여 발표된 기사, 뉴스와 서평들 중 일부에 주목함으로써 그 당시 조성된 분위기를 재구성해 보기로 하자. [복음주의파 교인들이 발간하는] 1956년 11월 「우리의 소망」지에서, 스카일러 잉글리쉬 (E. Schuyler English) 박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제목하에 사설을 집필하였다. 이 사설의 목적은 같은 호에 실린 월터 마틴이 쓴 재림교회에 관한 기사를 지지하고자 함이었다.

이 사설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편집자는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독자 가족과 마찬가지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이단이며 기독교가 아니라고 한때 믿었다. 거의 1년 동안 계속된 조사를 통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재림주의(SDAism)가 지난 10년 동안 변화를 겪어왔으며, 재림교회 안에 많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일부 교리들에 우리가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본 편집인은 그들의 안식일 준수는 골로세서 2장 16절에도 불구하고 율법주의라고 믿는다. 비록 많은 신학자가 그렇게 가르치지만, 그리스도가 죄를 지을 수 있었다고 가르침은 그의 인격에 대한 불명예라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인간이 사망 후] 영혼이 잠잔다는 교리와 조건부 불멸의 교리는 마틴 루터와 존 위클리프가 그런 이론을 가르쳤든 말든 완전히 비성서적이라고 믿는다. 마틴 씨가 집필한 ‘오늘날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제목의 기사를 정독해 보시길 권한다. 그는 1875년, 1900년, 1925년이 아니라 1956년에 대해 말하고 있다.” [1] 이 사설에서 잉글리쉬 박사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가 “지난 10년 동안 변화를 겪어왔다”라고 느꼈음을 주지하여야 한다.

[1] 역자주: 이러한 발언을 읽으며 배타적인이고 경직된 태도를 이 사설자에게서 느낌은 역자 뿐인가?

우리의 소망지에 실린 마틴의 기사

“오늘날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기사에서 월터 마틴은 밀러 재림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제시한 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844년 이후 몇 년 동안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된 합의 기반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이 기간에 교리신학과 관련된 많은 불행한 진술들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에 의해 출판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대다수는 그러한 일탈한 이견에 전혀 집착하지 않았는데, 그 일탈적인 교리의 주된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그리스도의 속죄가 십자가에서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 (2) 구원은 은혜와 더불어 율법 행위의 결과라는 것, (3)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창조된 존재라는 것, (4) 그리고 그리스도가 성육신했을 때 인간의 죄 된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는 것이다. 다른 비주류적인 견해들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만이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144,000을 구성한다는 개념과 그리고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은 모든 사람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개념 같은 것들이다.” [2] 마틴이 위에 언급된 네 가지 견해가 “비주류적인 견해”이며 “압도적인 대다수는 그러한 일탈한 이견에 전혀 집착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점이다.

[2] 역자주: 물론 이러한 관찰은 마틴의 칼뱅주의 신학 사조라는 프리즘을 통해 여과 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점에서 정확하거나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우선 밀러 재림운동의 대실망 후 형성된 여러 다양한 집단들이 존재했고 밀러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 된 적도 없었는데, 밀러 재림운동 그 자체를 재림교회와 동일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문서에 언급된 마틴과 반하우스를 비롯한 여러 복음주의파 교인들의 주장은 이러한 측면에서 좀 비판적인 안목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역자의 생각이다.

이 기사에서 마틴은 자신이 7년 동안 재림 신학을 공부했으며 지난 1년 반 동안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대총회 관계자들과의 최고위급 회의를 하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이 회의들을 근거로 “재림교회의 적들에 의해 그렇게 널리 공격이 이루어진 이전의 입장들이 몇 년간에 걸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의해 완전히 폐기되었음을 조금도 주저함 없이 말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사 후반에서 그는 그러한 “일탈적인 교리들”이 “재림교단에 의해 폐기되었음”을 다시 한번 언급하면서, 특정한 “비주류 출판물들”이 이러한 견해를 계속 출판하고 있지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대총회가 조직적으로 그들을 통제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거리낌 없이 믿는” 교리로, “그리스도의 완벽한 죄 없는 인성”, “우리 주님의 죄 없는 삶과 대리적인 속죄의 죽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한 율법준수와 상관없이 은혜에 의한 구원”을 열거하였다. 더불어 부연하기를, “개인적 연구와 친분으로 알게 된 그야말로 수백여명의 박식한 재림교인들은 이러한 교리에 관해 대총회의 선언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물론 이탈자들이 어느 정도 있지만 그들은 확실히 소수에 불과하다. 여담이지만, 만일 이 이탈자들이 그들의 일탈적인 교리로 너무 강경하게 목소리를 높이면 교회의 요람에 명시된 대로 교단이 그들을 신속하게 징계할 것이다.” 분명히 마틴 씨는 교단 지도자들이 “이탈자”로 간주할 수 있는 교회 내의 모든 사람에 대해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대총회 지도자들에 의해 제시된 견해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확실히 소수”에 불과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 기사에서 마틴씨는 또한 교단의 신조를 형성하는 데 있어 엘렌 화잇과 그녀의 역할에 대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의 태도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역사에 관한 철저한 연구에서 드러나는 가장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그 어떤 교리도 엘렌 화잇에 의해 기원한 것으로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 . . 그리고 이 점과 관련하여 더 주목할 점은, 비록 일부 지나치게 열성적이고 무분별한 재림교인들이 그렇게 말하곤 하지만, 엘렌 화잇은 그녀 자신이나 그녀의 글에 무오성을 결코 주장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 . . 재림교회를 폄하하고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재림교인들이 엘렌 화잇과 그녀의 글에 대해 존경심을 느끼고 있으며, 그녀의 저서들을 성경과 동등한 위치에 두고, 그녀를 무오하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녀의 글에 대한 믿음을 교제의 시험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한다. . . . 이러한 일반적인 비판은 현시대의 재림교회 출판물과 책임있는 재림교회 지도자들의 사실적 진술에 비추어 볼 때,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왜냐하면 대총회는 그들이 화잇 부인의 글에 대한 믿음을 교제의 시험으로 삼지 않는다고, 그리고 더 나아가 그녀의 글을 성경과 동등한 위치에 둔 적도 없고 두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잇 부인에 관해서, 재림교인들은 그녀가 하나님으로 영감을 받아 재림교인들을 위한 조언을 집필했지만, 그녀가 쓴 모든 것이 영감이 있다거나 오류가 없다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 . . 그들은 그녀의 조언이 특별히 자신들에게 전달된 것이지 타 교파 기독교인들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3]

[3] 저자주: 이러한 주장이 「각시대의 대쟁투」와 같은 서적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고려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재림교인들이 화잇 부인을 무오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는 마틴 씨의 이해는 옳았다. 하지만 재림교회의 교리가 형성되는 과정에 이바지한 엘렌 화잇의 역할에 대해서 그가 부분적인 이해만을 지니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현시대의 재림교회 출판물과 책임 있는 재림교회 지도자들의 사실적 진술”을 우리 출판물에서 과거 교회 지도자들이 밝힌 입장과 격돌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 성소에 관한 우리의 입장에 대해서도 그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기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하늘 성소 교리는 구약에 나오는 지상 성소의 역사적 전통에서 하늘나라는 성소이며, 그리스도는 그 하늘 성소에서 지금 갈보리에서 모든 인류을 위해 성취한 속죄의 은사를 베풀고 있다고 가르친다.” 조사심판의 교리와 [아사셀 염소와 관련된] 희생양으로서의 사탄의 역할을 간략히 검토한 후, 마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간단히 말해서 이것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하늘 성소와 조사심판의 교리인데, 특이하고 때로는 거의 기이하다고 인정하지만, 그리스도께서 홀로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룬 속죄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이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틴은 안식일을 다루는 부분에서 “일요일에 양심적으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토요일에 예배드리는 사람들만큼이나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면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더 이상 비기독교 이단으로 분류될 수 없고 기독교의 한 종파로 구분되어야 한다. . . . 나는 재림교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는 그들의 권리를 강력하게 옹호할 것이다. . . . 물론 재림교회 출판물, 홍보, 선교 활동 및 다른 사업 분야에서 아직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음은 사실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결론지었다.

타임 기사

타임지는 1956년 12월 31 일자의 종교란에 “재림교인들과의 평화”라는 뉴스 보도를 발표했다. 이 기사는 재림교회 지도자들과 마틴 및 반하우스 사이의 대화에 대해 보도한 후, 마틴의 연구 결과로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화해의 손을 내밀었으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라고 보도하였다. 이 기사는 밀러 운동에 대해 재검토한 후 조사심판을 언급하면서, “윌리엄 밀러는 이런 면피용 개념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한때 밀러 운동에 가담했던 많은 개신교 집단들은 이 개념으로 함께 모여들었다”라고 기술했다.

이 기사는 또 재림교인들이 “까다로운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운동이 성장하면서 이 “까다로움이 점차 사라졌다”라고 언급하고, 그 주요 증거로 월터 마틴이 타코마 파크에 소재한 교단 본부를 방문했을 때 매우 친절한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마틴은 논의되는 사안마다 재림교인들이 “특이한 재림교회의 전통들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필요함을 고집하지 않고 보수적인 개신교의 노선을 따르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가 들은 것에 감동하여 전도자 반하우스는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자기 농장으로 고위급 재림교인들을 초대하여 회담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리는 지나치게 비방을 받아온 진실한 신자들로 구성된 단체에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그들을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도,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도 같은 철저한 이단자 그룹에서 제외하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지체와 형제로 인정한다.”

이 기사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재림교인들은 그들대로 내년 봄 경에 새롭고 최종적인 신조문을 발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목회자 협회의 총무인 로이 앨런 앤더슨(Roy Allan Anders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무 자주 오해받고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잘못 진술된 우리 신조의 특정한 특징들 때문에, 일부 선의의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우리를 비기독교 사이비 집단으로 분류했다. . . . 이러한 오해에 대한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도 있음은 충분히 가능한데 그 이유는 우리가 믿는바에 대해 명확하게 기술하지 못했고 또한 강조해야 할 곳에 주된 중점을 부여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재림교인들은 복음주의파 교인들이 더 이상 자신들을 “철저한 이단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타임」지를 통해 알게 되어 일반적으로 기뻐하면서도, “새롭고 최종적인 신조문”을 기술한 책이 교회에 의해 출판될 것이라는 약속에 아연실색했고, 또한 교회로서 아마 우리가 “진짜 강조해야 할 곳에 주된 중점을 두고 있지 않았다”라는 [앤더슨의] 고백으로 인해 당황하였다.

이터니티지에 실린 반하우스 기사들

1956년과 1957년 사이에 「이터니티」지에 5개의 기사가 실렸다. 첫 번째와 마지막은 편집자인 도널드 그레이 반하우스에 의해 쓰였고, 그 사이에 있는 세 개는 월터 마틴에 의해 쓰였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도는 기독교인인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라는 반하우스의 첫 번째 기사에서, 그는 재림교인들과 자신의 관계 및 마틴씨에 의해 성사된 워싱턴 D.C.의 대총회 본부에서 재림교회 지도자들과의 접촉들에 대해서도 검토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재림교인들을 공정하게 대하고 싶으니 재림교회의 지도자들 몇 사람들과 인터뷰할 기회를 주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재림교인들과 접촉했다. 반응은 즉각적이고 열정적이었다.”  첫 번째 방문에서 마틴은 재림교회가 답변해야 할 약 40개의 질문을 제시하였다. 두 번째 방문에서, “그는 자기 질문에 대한 상세한 신학적 답변이 담긴 수십 페이지를 받았는데, 재림교인들이 이전에 그들에게 귀속되었던 특정한 교리적 입장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감지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마틴 씨가 그들의 답변을 읽었을 때, 그들이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기초라는 생각을 완전히 부인하고, 또 주의 첫날을 지키는 것을 적그리스도인 ‘짐승의 표’를 받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어떤 가르침도 부인하는 진술을 접하였다. 이에, 마틴은 그 회의가 열리는 빌딩의 부속된 서점에 진열된 책들 중 재림교회가 출판한 한 목사의 특정한 책이 그들이 지금 주장하고 있는 교리적 입장과 단호히 상충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러자 재림교회 지도자들은 그 문제의 책을 가져오게 하여 마틴 씨의 지적이 옳음을 확인한 후 즉시 대총회 임원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상황이 시정되고 그 책이 수정되도록 하였다. 그와 같은 절차가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의 본성에 대해서도 반복되었는데, 간혹 전체 교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부 저자들의 상충된 견해가 출판된 사례가 있기는 하나 교단의 대다수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죄 없고, 거룩하고, 완전하였음을 늘 주장해 왔다고 재림교회 지도자들은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근본주의 기독교계 어디에나 광기 있는 무책임한 자들이 섞여 있는 것처럼 그들 중에도 그런 ‘광적인 소수 분파(lunatic fringe)’가 있다고 마틴 씨에게 설명했다.”

반하우스 박사는 이 기사에서 재림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재림교인들이 “마귀를 죄를 짊어지는 자로 여기고,[4]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토요일을 준수해야 한다고 믿고,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결된 사역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반하우스 박사는 각주를 통해 후자의 두 가지 신조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학에서 완전히 폐기되었음을 통고 받았다”고 선언했다.

[4] 역자주: 아마 구약의 대속죄일에 사용되었던 아사셀 염소로 표상된 사탄에게 최종적으로 모든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된 후 영멸되는 것에 관한 우리의 가르침을 두고 한 말로 추정됨

그는 월터 마틴이 저술한 재림교인에 관한 책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에 의한 서문이 포함될 터인데, 그들이 잘못 인용되지 않았으며 마틴 씨가 제시한 합의점과 불일치점이 복음주의파의 관점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점에서도 정확함을 인증할 것이다.” 반하우스 박사는 앞으로 “재림교회 운동에 대한 공정한 비판은 마틴의 책과 「교리에 대한 질문」을 참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반하우스는 가려진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진술을 했는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림교회가 지금 취하는 입장 중 어떤 것들은 우리가 볼 때 새로운 입장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아마 교단의 책임 있는 지도부의 입장과 다른 견해를 가진 교인들에 제동을 걸기로 결심한 분별 있는 대다수 지도층의 입장인 것 같다.” 그리고 반하우스는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엘렌 화잇의 저서를 성경과 동등하게 두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특별히 안식일의 준수가 어떤 식으로든 구원의 수단이라는 생각을 버렸고,” 재림교인들이 자신의 정체를 은폐하려고 시도한다는 복음주의자들의 비판을 피하고자 예언의 소리(Voice of Prophecy)와 시조사(Signs of the Times) 선교단체들과 협의하여 그들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속해 있음을 밝히도록 했다고 전했다.

흥미롭게도, 이 기사와 관련하여 반하우스 박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다른 기독교인들을 향해 개종 활동을 했는가? “라는 제목의 칸막이 기사란을 실었는데, 그 기사란에는 다음의 문장이 명시되어 있다: “재림교회 지도자들과의 회의 과정에서 우리는 재림교회 선교사들과 전도자들이 다른 교파의 교인들을 향해 개종 활동을 한다는, 선교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된, 항의를 제기했다. 지도자들은 그러한 개종 활동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해왔다고 격렬하게 단언하면서, 과거에 그러한 사례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방법이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우리는 그들과 협력하여 지난 2년 동안 그러한 개종 활동의 사례를 담은 증거문서를  선교사들로부터 접수할 것이다. 그러한 문서가 「이터니티」지의 월터 마틴 씨에게 전달되는 즉시, 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약속한 재림교회 지도자들에게 보내질 것이다.”

반하우스 박사는 그의 사설에서 조사심판이라는 재림교회 교리를 묘사하며 “종교 역사상 가장 엄청난 속 보이는 면피용 현상이고. . . . 그것은 체면 유지를 위해 꾸며진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일부 몰지각한 재림교인들이 그 성소교리를 문자적 극단으로 끌고 갔지만, 그와 월터 마틴은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그러한 모든 극단적인 것들을 부인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이것을 확실히 말했고, 더 나아가 그들의 초기 교사들 중 일부가 가르친 바, 예수님의 속죄 사역이 갈보리에서 끝나지 않았으며 대신 1844년 이래로 두 번째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는 교리를 그들은 믿지 않는다. 이 개념 또한 완전히 부정되었다. 그들은 승천 이후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완성한 속죄의 은사를 베풀어 오고 있음을 믿고 있다”라고 기술했다.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의 기록을 조사하는 문제에 관해서, 반하우스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독특한 입장을 지지하는 일말의 성경절이 있음을 믿지 않으며, 그것을 확립하려는 어떤 노력도 진부하며 지루하고 유익이 되지 않는다.”

사설의 요약에서 반하우스 박사는, “조사심판은 중요하지 않고 거의 단순 무지한 교리”로 취급하고, “좀 더 진지한 안식일 준수의 교리”에 관해서는 그것이 율법주의의 색채를 가지고 있으며 “보잘것없는 죄인들에 부여되는 주권적 은혜라는 진리의 뿌리를 갉아 먹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반하우스 박사는 또 1957년 11월 「이터니티」지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대한 후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교리에 대한 질문」이 출판되었고 이제 반하우스 박사는 그 책의 출판으로 이어진 일련의 일들에 대해 검토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과 월터 마틴이 대총회 본부에서 우리 지도자들과 가졌던 접촉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그러한 협력, 모든 것을 기꺼이 공개하려는 그러한 마음, 그리스도인 친교에 대한 그러한 열망, 그리고 모든 관계에서 나누는 그러한 친절과 사랑을 본 적이 없다.”

“마틴 씨는 수십 개의 질문을 준비했고, 그들의 대답은 우리와 함께 이루어졌다. 그들은 최고의 선생들과 편집자들을 모았고 이제 그 질문들에 대한 720페이지의 답변을 출판했다! 이 책은 그들의 교리에 대한 권위 있는 진술이다. 그들은 이것이 새로운 신조의 진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신앙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건전한 지도부의 입장과 다른 독립적이고 상충하는 재림교인들의 글을 잘라버린 결정적인 진술이다.”

월터 마틴의 새 저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관한 진실」에 대해 언급하면서, 반하우스 박사는 “마틴 씨의 책 앞부분에는 “재림교단 지도자들이 마틴 씨의 이 책에서 그들이 잘못 인용되거나 왜곡되지 않았다고 서명한 편지가 있다”고 말하였다.[5] 이 기사에서 반하우스 박사는 그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엘렌 화잇에 대한 재림교인들의 태도와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 두 가지 문제를 검토했다. 첫 번째 요점에서 그는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우리는 성경에 의해 엘렌 화잇의 저서를 시험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녀의 저서로 성경을 시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음을 지적하면서, “재림교인들이 엘렌 화잇의 저서를 지극히 존중하지만, 이것들이 우리 신앙 진술의 근원이 아니고”, “성경이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척도다”라고 함을 전했다.

[5] 저자주: 이 책이 1960년에 가서야 출판되었지만, 반하우스는 이미 1957년에 출판된 것으로 말하였다. 하지만 그 책에는 약속되었던 진술문이 워싱턴 D.C.의 타코마 파크 소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대총회 성서 연구소 로우 (H. W. Lowe) 소장의 서명과 함께 실렸다.

두 번째 요점인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림교인들에 대한 가장 심각한 혐의는 이전의 사역자들 중 한 사람이 쓴 일련의 소책자에서 기인했으며 책임 있는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꾸준히 부인되었다. 특히 한 저술가는 그리스도가 죄 된 인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주장했는데, 최근 출간된 「교리에 대한 질문」은 이 주장에 대해 여러 각도의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그것을 혐오스럽게 부인했다. 이 오류를 화잇 부인 자신에게 씌우려고 시도한 한 ‘신앙의 수호자’에 의해 큰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에, 재림교회 지도자들은 이 책에서, 우리 주님의 영원한 신성과 죄 없는 인성에 관한 긍정적인 진술을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표현한, 36개의 다른 인용문들을 화잇 부인의 저서에서 제시하고 있다. 또 다른 부록에서는 성육신의 신비에 관한 50 개 이상의 인용문이 열거되었는데,  거기서 화잇 부인은 말씀이 육신이 되심과 그분의 죄 없는 영광에 대해 경이로움을 반복해서 표현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화잇 부인이 훈련된 신학자가 아니었고 역사 신학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용한 용어 중 일부가 그에게 불리하게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내 의견으로는 그녀는 깊은 사고력, 정교함 및 학식이 부족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하고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마음에 간직하고 존경하며 가르쳤다.” 글쎄, 영감을 받은 사람이 진리를 정확하게 밝히기 위해 “훈련된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은 당연히 도전받아야 할 주장일 것이다.

마틴이 편의 기사들

검토의 대상이 되는 기간에 「이터니티」지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관한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월터 마틴이 쓴 세 편의 기사를 발표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그의 책 제목과 같았으며, 내용은 주로 그 책의 장에서 가져왔다. 첫 번째 기사의 제목은 “기독교 뿌리로 부터의 역사적 발전”, 두 번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실제로 믿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재림교회 신학 대 역사적 정통성” 이었다.

첫 번째 기사에서 마틴은 밀러의 재림운동에 대한 개요를 제시했으며 재림 교회 창립 과정에서 화잇 부인의 위치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화잇 부인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지배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더 나이가 이 기사에서 그는 재림교인들이 화잇 부인의 무오성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반박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다음과 같은 교단의 공식적인 입장을 인용하였다:  “엘렌 화잇은 우리 신조를 설명하는 원천이 아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우리 신앙을 도출하고 예언에 대한 우리 해석은 모두 화잇 부인이 그에 대해 말하거나 쓰기 전에 확립되었다. 우리는 그녀의 저서를 아주 존중하며 성령께서 그녀의 마음에 빛을 주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대한 권면을 쓰게 하셨다고 믿는다. 그 글들이 성경적, 역사적, 과학적 사실과 일치함에 정말로 놀랍다고 우리가 느끼지만, 혹자들의 공격대로 우리는 그 글들을 성경과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으며 또한 결코 그렇게 한 적도 없다.”

그는 계속하여 “전 세계 재림교회를 대변하는 최고 기관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대총회의 지도자들”을 인용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성경의 경전이 요한 계시록으로 종결되었음을 일률적으로 믿는다. 우리는 모든 저술과 가르침이 기독교 신앙의 규범과 근원으로서 유일무이하며 홀로 서 있는 성경에 의해 판단되어야 하며 성경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엘렌 화잇이 성경 기자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번째 기사에서 마틴은 재림 교회의 세 가지 “독특한 교리”로 (1) “하늘성소 교리”, (2) “조사심판”, (3) “예언의 신을 포함한 영적 은사의 회복”으로 열거하며, 「교리에 대한 질문」 30, 31페이지에서 인용했다. 이 페이지는 “한 세기 전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창시자들은 다양한 교단들의 배경에서 나왔는데”, 일부는 삼위일체주의자였고, 다른 일부는 아리안 계통, 또 다른 일부는 아르미니우스 전통에서 나왔으며, 소수는 칼뱅주의자였음을 언급한다. 어떤 사람들은 물에 완전히 침수되는 침례를 주장했고, 몇몇은 그냥 물을 뿌리는 것에 만족했다. 마틴에 의하면, 처음에는 “칼뱅주의 입장과 대치되는 아르미니우스주의 요소들의 장점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 . . 그들은 ‘절대 법령’, ‘신성한 주권’, ‘특별한 선택’ 또는 ‘제한적 속죄’ 같은 개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처음엔 신격의 본질이나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육신 동안의 본성을 포함한 기독론의 주제, 성령의 성격과 신성, 속죄의 성격과 범위 및 완전성, 은혜에 대한 율법의 관계, 또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충만성에 대해 정의하려고 하지 않았다.”

「교리에 대한 질문」을 계속 인용하면서 마틴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율법과 은혜의 올바른 관계, 그리고 죄에 대한 완전한 속죄로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명확한 견해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이전의 견해 중 일부를 고수했으며 때로는 이 견해들이 인쇄되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 진리에 있어 실질적으로 하나가 되었다.”  여기서 「교리에 대한 질문」에 있는 견해와 다른 견해는 “비공식적”인 것으로 분류되고 있음에 유의하시기 바란다. “때로는 이 견해들이 인쇄되었다”라는 표현은 이 견해들이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책임 부서가 미리 알게 되었으면 출판되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마틴은 다음과 같이 이어서 말했다: “아직도 일부 인쇄물과 도서관의 선반에 좀 전에 언급된 이전 입장을 반영한 일부 문헌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견해가 더 이상 분포되는 것을 제한하고 기독교 신앙의 중추적인 교리를 고수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통일되고 진실한 모습을 제시하기 위해 예방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그는 대표성이 없는 인용문들이 “이 출판물들의 현재 판에서 삭제되었다”라고 하면서, “1956년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신앙을 포기함 (Seventh-day Adventism Renounced)」이라는 책에서 더들리 캔라이트 (Dudley M. Canright)가 특정 분야에서 옳게 비판하였던, 그 재림교회와는 현저히 다르다. . . . 점진적인 빛과 발전되는 진리가 복음의 중추적인 진리들에 대한 해명과 준수를 필요하게 한다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지도부의 신념에 따라, 많은 이전의 소수 입장은 번복되거나 수정되었다”라고 말하였다.

마틴은 재림 교회의 일부 과거 문헌이 속죄 과정에서 희생양의 역할에 대해 명확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모든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모두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 셨고 그 완전한 희생과 그리스도의 완성된 속죄 위에 그들의 구원이 안착되어 있다는 대총회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라고 서술했다.

마틴 씨는 세 번째 글에서 악인들의 종말이나 멸절에 대한 재림교회의 관점은 “기껏해야 추측에 근거한 입장으로 조직 신학, 올바른 성경주해, 그리고 해석학의 건전한 원리 적용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것”으로 지적했다. 그는 조사심판에 관한 질문에서, 재림교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한 속죄의 은사를 베풀고 계신다”고 믿으며, “그들이 히브리서 8장과 9장을 근거로 삼는 하늘성소 교리와 조사심판은 그것이, 일부 초기의 재림교인 저자들이 제시한 대로 실제적이거나 극단적인 문자적 의미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될 때 그들이 그리스도인 교제에 포함되는데 실질적인 장벽이 되지 않는다. . . . 현시대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학은 이 교리를 위대한 하늘의 현실이라는 비유적 의미로 받아들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리스도인 신자들을 위해 그의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여전히 중보하고 계신다고 가르친다. 조사심판에 대한 교리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의 사고에서 이중적이거나 또는 부분적으로 완성된 속죄의 개념을 결코 암시하는 것이 아님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오히려 재림교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를 위해 이루신 완성되고 최종적인 속죄를 강조하며, 그 속죄의 희생이 하늘에서 우리 대제사장인 그리스도에 의해 베풀어지고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적용된 “남은 교회”라는 용어의 사용에 관해서, 마틴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단의 초기 교인들이 신봉한” 그 개념이 “여전히 교단에서 가르쳐지고 있지만,” 그것은 “원래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교회는 재림교인들이 “남은 교회의 확실한 일부를 구성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이 용어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에게만 적용된다고 주장한 운동의 초기 작가들과 대조적으로, 많은 다른 교회들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들도 이 ‘남은 자손’에 포함된다”라고 말하고 있음을 전했다.

반하우스와의 전화 통화

종교 저널과 뉴스 잡지에 실린 일부 진술들로 인해 우려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한  평신도 (L 형제라고 칭함)가 1958년 5월 16일 반하우스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전화 통화에서 반하우스 박사는 부분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말하는 바의 요점은 단지 재림교인들도 기독교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교리가 세상의 그 어떤 기독교 집단 중 가장 형편없는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것을 의심의 여지 없이 믿지요. 실제로 조사심판 교리는 그들이 말한 1844년의 예수 재림 불발 사건의 낭패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노골적인 면피용 주장입니다. 두 사람이 옥수수밭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한 사람이 머리를 치며, ‘맞아, 그리스도는 오셨어’라고 했다는데, 이건 정말 우스꽝 스럽고 터무니 없는 헛소리죠.  조사심판 전체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발상이란 걸 백 년이 지난 지금 재림교인들의 교육 수준이 어느 정도 발전했으니 용기가 있다면 인정해야 합니다. 100년 전만 해도 재림교인들은 사실상 모두 문맹이었어요. 그리고 이제 그들은 교육받고 있으며, 그들의 교리가 성경주석의 빛에 유지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도저히 지탱될 수 없는 교리입니다.”  그리고 안식일 진리에 대하여 논평하면서 반하우스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림교인들이 토요일을 지키는 것도 잘못이고, 개신교인들이 일요일을 지키는 것도 잘못입니다. 지켜야 할 유일한 것은 날마다 똑같은 날이고 하나님이 어느 한 날에만 임재하는 게 아니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지요. 단 하나님은 현재 안식일을 증오하신다는 겁니다.” [6]

[6] 역자주: 최소한의 양식을 가진 이들에게 이러한 자가당착적 주장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아무 날이나 괜찮다면 왜 하나님이 안식일은 증오한다는 것인가? 마틴과 특히 반하우스의 발언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들이 자신들의 신학 지식/학위에 도취하여 상당히 도도하고 안하 무인적이며 비그리스도적인 태도를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계에는 아르미니우스 계통의 교회들도 있는데, 그 당시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왜 칼뱅주의 신학사조에 편향된 이런 순화되지 못한 복음주의파 신학자들을 기독교계의 대표로 삼고 대화했는지 상당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러고 나서 반하우스가 언급하기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엘렌 화잇의 책이 있는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단 한 권의 사본이 와싱턴의 타코마 파크에 있는 금고안에 잠겨서 보관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7] 재림 교회가 그 책을 금고 안에 잠가 보관하는 이유로,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그걸 읽으면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손을 들고 ‘잠깐, 애당초 그녀는 그저 인간에 불과했네!’ 라고 소리를 지를 것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나는 화잇 부인이 매우 영적인 것들을 자주 썼음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결코 여성을 통해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 사실을 직시하세요. 여성이 설교하여 남성의 권위를 침해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 .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은 미성숙한 기독교인들이에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엄청나게 미성숙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8]

[7] 역자주: 이런 음모론적인 주장을 신학자라는 사람이 그 어떤 증거의 제시도 없이 가볍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데이브 피틀러도  「재림교회와 월터 마틴」이라는 그의 문서 말미에서, 근거의 제시도 없이 막말하는 마틴의 유사한 행습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8] 역자주: 이 발언은 도도하고 안하무인적일 뿐만 아니라, 여성 선지자들에 대해 기록한 누가복음 2:36, 사도행전 21:9의 말씀과 선지자이며 사사인 드보라 (사사기 4,5장)외 다른 여성 선지자들을 언급한 왕하 22:14, 역대하 34:22, 느헤미야 6:4, 이사야 8:3을 간과한 발언이라고 생각된다.

1844년의 대실망에 대해서 반하우스는 다음과 같이 계속 말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무릎을 꿇고 ‘주 하나님, 우리는 거짓말에 근거하여 시작되었습니다’라고 시인하지 않으면 결코 그 어떤 진정한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거짓말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반하우스 박사는 마틴과 자신이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점을 언급했다. 즉,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신학이 단지 과도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아주 기분 좋게 직시합시다. 이 책 「교리에 대한 질문」을 저술한 지도자들은 재림 운동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떠났습니다. 그들은 성경으로 돌아왔어요.” 그는 앤더슨과 프룸(L. E. Froom)이 진리와 함께 나아가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하지만 그들을 막아 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은 감히 해야 할 만큼 전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L 형제는 어느 순간 이렇게 말했다: “내 책상 위에는 어제 대총회 총무에게서 받은 편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조에 대한 당신의 해석과 우리 가운데에 여전히 존재해왔고 지금도 믿는 신조의 이해 사이에는 상당한 불일치함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반하우스는, “이보시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입장을 우리가 잘못 전하지 않았음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지도자들이 인정하는 서명된 편지를 우리가 요청했고 또 받았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L 형제는 자신의 요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 사람들이 나와서 그들이 형성한 당신과 마틴 씨와의 관계와 더불어 그들이 취하는 교리적 입장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으면 합니다. 솔직히 당신들이 출판한 내용과 우리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요. 나는 단지 우리가 입장을 변경했는지, 변경했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 변경 상태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할 뿐입니다.”

이에 대해 반하우스는 “내가 출판한 모든 것은 출판하기 전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지도자들이 읽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출판한 어느 한 줄도 프룸에 의해 사전에 검토되지 않은 것이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L 형제는 이에 “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당신의 말조차 내가 믿은 바를 바꾸어야 할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공개적으로 표명되고 사무적으로 처리된다면 나는 충분히 고려할 의사가 있습니다. 만약에 워싱턴에 있는 우리 지도자들이 교리를 수정해야 한다고 느끼면, 내 입장은 그들이 일선에 있는 우리 교인들에게 와서 ‘형제들, 이 점에 있어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바꾸어야 합니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있어요. 그들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데, 그러나 당신과 마틴 씨에게는 우리가 교리를 바꾸는 과정에 있거나 바꿀 의사가 있다는 생각을 전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난 지금 사실 여부를 파악하려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L형제에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에는 미치광이들과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있어요”라고 말한 후에, 반하우스는 계속해서, “만약 안식일외 다른 날을 예배일로 지킬 때 짐승의 표를 받는다고 믿으면, 당신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일부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믿음으로 은혜에 의해서만 구원을 얻는 것을 당신이 부인하기 때문이지요. 당신은 구원이 은혜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믿지 않는군요, 그렇죠?”라고 질문했다.

L형제의 대답은, “당신이 사용하는 그런 개념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천만에요!” 이어서 안식일 이슈가 논해질 때, 반하우스는 L형제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아닌 사람은 구원받지 못함을 믿고 있다고 시사하면서, “나는 안식일 종교일로서의 토요일을 증오합니다. 그리스도가 그랬기 때문에 증오합니다”라고 언급하였다. 이런 대화가 좀 더 진행된 후에, 그는 계속 말했다: “내가 말한 당신 교회에 있는 미치광이 부류는 바로 토요일이 안식일이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전도 소책자를 인쇄한 집단입니다. 이런게 바로 미치광이 부류에요. 책임감있는 기독교인은 그런 말을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전화 대화가 남은 교회의 주제로 바뀌었을 때, 반하우스 박사는 “당신 교회가  남은교회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L 형제는 “그것이 재림교회의 가르침”이라고 답했고, 반하우스는 “글쎄, 그렇게 믿는다면, 당신은 과대망상증 환자임이 틀림없습니다”라고 했다. L 형제가 그것이 재림 교회의 가르침이라고 역설했지만, 반하우스는 계속 “그건 재림교회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실례지만, 아니에요”라고 주장했다.

어느 순간 반하우스는 L형제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당신은 내가 구원받지 못할 영혼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질문에 L형제가 “친구여, 그것은 하나님께 달린 겁니다” 라고 대답하자, 반하우스는 “아니, 아니, 아니, 잠깐만요.  질문 하나 하지요. 하나님께 달려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내가 안식일로서의 토요일을 저주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됨의 입장을 취하고, 안식일로서의 일요일을 저주하고, 율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저주하고, 은혜만을 원하고,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며,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제거됨을 믿는다면, 당신은 내가 잃어버린 영혼이라고 믿는가요?”라고 되물었다. 이에 L 형제는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그리스도의 불순종한 추종자이고, 그 불순종이 계속되면, 그렇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궁극적으로 잃어버림을 당할 것이라고 난 믿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간 후에, 반하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지도자들이 당신의 입장을 취하지 않는 게 천만 다행입니다. . . . 그들은 내가 중생한 사람이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었다고 믿고 있어요. 그들은 내가 이미 영원히 구원받았기에 영생을 결코 상실할 수 없다는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칼뱅주의 견해를 취하는 사람인 것을 압니다. 이에 반해 그들은 아르미니우스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데도 그들은 나를 중생한 신자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한 형제로 확실히 믿고 있어요.”

이 전화 통화가 끝날 즈음, L형제는 다음과 같이 그의 최종적인 생각을 밝혔다: “당신과의 대화에서 내가 최대한 파악한 바로는, 우리 지도자들이 당신에게 말한 것과 우리에게 말한 것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 . . 나는 우리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가르치는지 알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교리를 바꾸어야 한다면 나도 그들과 함께 바꾸고 싶습니다. 단지 나도 그렇게 바꾸어야 함을 그들이 내게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당신과 마틴 씨에게 우리 교리를 변경했다는 인상을 주고, 우리에겐 교리를 변경치 않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데, 난 그런 걸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사람들이 나와서 그들이 제의한 바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화 중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교리가 나왔을 때, 반하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성육신] 예수님이 죄없는 본성이 아니라 죄된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초기 교회 역사에 존재했던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의 주장을 받아들였던 겁니다.[9] 이제 당신의 지도자들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리의 그 당시 가르침을 가장 강력하게 부인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L형제는, “그러면 아담이 죄를 범하기 이전의 [죄 없는] 인성을 그리스도가 가졌다는 입장을 그들이 취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란 말이죠?”라고 질문했는데, 반하우스는 이 점에 대해 조금 다르게 이해하며, “그렇지 않길 바랍니다!. . . . 아담은 타락할 수 있는 피조물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God-man)으로 타락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라고 강조했다. L형제가 다시, “그러면 그것이 우리 지도자들의 입장에 대한 당신의 이해란 말인가요?” 라고 질문했는데, 이에 반하우스는, “물론이죠! 그들은 그런 입장을 매우 강력하게 취했고 그들의 책 「교리에 대한 질문」에  적혀 있잖아요. . . . 보세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하고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죄를 지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 . . 우리는 우리 말에 동의하고. . . . 당신의 주장을 부정하는 화잇 부인의 18개나 되는 인용문들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응답했다.

[9] 역자주: 가현설(Decetism)에 대해 반하우스는 완전히 반대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가현설은 육체와 영에 대한 이원론(Dualism)을 믿는 영지주의(Gnosticism)의 교리인데, 육체는 악한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예수가 인간의 몸을 가질 수 없기에, 예수의 몸은 환상일 뿐이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즉 참된 혈과 육의 사람이 아니라면서 예수의 인간성(성육신)을 부정하는 교리이다. 따라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고 고난받은 것은 환상일 뿐이며, 그가 죽고 부활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영지주의자들은 주장하였다. 가현설은 일부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발생한 극단적인 교리로서,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성육신(肉化) 사상 (요한복음 1장 14절)을 통해 이를 반박하였다. 따라서 성육신 예수님의 인성이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우리와 같은 “죄 된 (죄로 기우는)” 인성을 취하셨다는 입장보다, 예수님이 죄를 지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죄 없는” 인성을 취하였다는 반하우스의 칼뱅주의 신조가 이 가현설의 입장에 더 근접해 있음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전화 통화는 여러 가지 점들을 밝혀주고 있다. 복음 주의자들과 재림교인들 모두가 토론에서 동일한 기본 언어를 사용했지만, 그들이 생각한 그것만큼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전제는 많은 경우에 달랐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느꼈지만, 종종 그렇지 않았다. 칼뱅주의적 전제와 아르미니우스 전제는 어떤 면에서 융합될 수 없다. 또 분명한 것은, 양쪽이 “죄 없는(sinless)”이란 단어의 사용에 동의는 했지만,  반하우스의 그리스도는 재림 교회와 엘렌 화잇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가지 다른 서평들

「이터니티」지는 월터 마틴의 책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관한 진실」의 서평을 1960년 5월호에 게재했다. 평론가의 주요 논점은 이 책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대표자들의 지지를 얻었다는 것이었다. 화잇 부인의 글에 대해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지 않으며 단지 재림교단을 위한 이차적인 영감의 성격을 지닌 권위를 가지고 있다”라고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부단히 역설해 왔음을 강조했다. 재림교회의 신학에 관해 평론가가 마틴의 책에서 얻은 분명한 메시지는,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서 과거에 진전된 좀 엉뚱한 해석을 버리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평론가는 재림교인들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주요한 장벽은 교단의 개종 활동에 관한 정책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만약 그들이 일반적 복음주의 세력의 일원으로 여겨지고자 한다면, 재림교회는 다수 사역자들의 분열적인 영향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다른 서평들도 간혹 잡지에 발표되었다. 1960년 7월 4일자 「오늘의 기독교(Christianity Today)」지는 한 서평을 실었는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현 지도자들과 인터뷰한 결과 “재림교회의 교리가 바뀌었다”라고 마틴이 결론지었음을 말했다. 평론가는 계속해서 “제임스 화잇, 얼렌 화잇, 베이츠(Bates) 및 벤덴(D. E. Venden) 복음 전도자 등이 한 경멸적인 초기 진술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최근 서적 「교리에 대한 질문」의 진술과 대조해 보면 이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것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밖 다른 교회들에 진실한 신자들이 있는지에 관한 재림교회의 견해를 담은 내용을 두고 한 평가였다.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해서, 마틴은 “철저한 연구에 기초하여, 그들이 그리스도가 타락한 인성을 취했다는 개념을 포기했다”라고 주장함을 언급했다.

1960년 11월 21일자 「오늘의 기독교」지에서, 월터 마틴은 존 거스트너(John Gerstner) 박사의 서적 「주요 분파의 신학」에 대한 서평을 기재했는데, 마틴은 거스트너의 책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었다. 예를 들어, 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관한 장에서. . . . 거스트너 박사는 그리스도의 ‘타락한 인성’에 대해 그들이 이미 공개적으로 거부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비난한다. 저자는 자신이 사용한 진술이 15년 전에 삭제된 책을 아직도 인용하고 있으며, [재림교회의] 1957년 연감을 ‘최신 공식 성명서’로 인용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본성이 죄 없다는 진술을 재차 단언하는 권위있는 서적 「교리에 대한 질문」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고 반박하였다.

마틴과 린젤의 기사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걸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1960년 12월 19일자 「오늘의 기독교」지에 실린 월터 마틴의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기사를 포함한다. 이 기사에서 마틴은 「이터니티」지에 실렸던 자신의 기사에서 다루었던 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내용을 다루었는데, 아마도 이 기사에 담긴 유일하게 새로운 자료는 조사심판에 대한 다음과 같은 주장이다: “’조사심판’은 지금 하늘에서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것은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영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하기 위한 심판이라는 이론이다. 이 견해는 내가 반박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우아하게 제임스 화잇에 의해 거부되었다. 하지만 자기 아내의 계시와 그를 둘러싼 상황에 못 이겨 재림교회에 의해 승인된 이 입장에 대한 거의 완벽한 논박을 그가 나중에 철회했음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히브리서 9장 12절을 언급하면서, 마틴은 “그들의 책 「교리에 대한 질문」의 385페이지 각주에는 이미 인용된 히브리어 구절에 대한 해석을 언급이 있고, 이는 오래된 에디슨-크로이저-화잇의 신조를 지지하는데 언어학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인식을 나타내 보인다” 고 말했다.

풀러 신학교의 학과장이었던 해럴드 린젤(Harold Lindsell)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어쨌단 말인가?”라는 제목의 두 부분으로 된 기사를 1958년 3월 31일과 1958년 4월 14일자 「오늘의 기독교」지에 연재하였다. 첫 번째 기사에서 그는 성소교리와 구원론에 대해 재림교회를 비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300년을 포함하는 1844년의 날짜와 성소 정결은SDA 신앙의 중추적인 요소이다. 이것들을 파괴하면 어떤 결론에 이를지는 자명하다. SDA의 존재를 위한 충분한 근거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이 점에서 SDA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구절이 없다. 그들의 결론은 화잇 부인의 가르침에서 파생되었으며, 그것은 그녀의 성경 해석에서 나온 한 결과다.”

구원론에 관해서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로마 카톨릭교도 구원이 믿음과 더불어 행함의 결과라고 가르친다. 개혁주의 신학은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SDA에게 일관되게 제기되는 혐의는 그들이 은혜와 더불어 행함을 통한 구원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 . . 즉, 율법주의라는 비난이다. 이 비난은 안식일 문제와. . . .다른 계명들의 준수와 관련이 있다. 만일 SDA가 바울이 반대하며 기술했던 갈라디아 오류에 연루되어 있다면 그것은 복음주의가 아니다.”

그의 두 번째 기사에서 린젤은 재림교회 구원론을 계속 검토하면서, 기사의 초반부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SDA가 은혜와 행함을 혼합하여 바울이 반대한 갈라디아주의의 오류에 빠져있다는 것이 이 저자의 견해다.” [10] 그는 계속하여 재림교인들이 안식일 준수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리고 마지막 때에 안식일을 부인하면 영생을 잃는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린젤의 안목으로는, “이 모든 것으로 판단할 때 안식일 문제는 그 필요성 또 결과적으로 율법주의와의 연관으로 인해 이 운동을 평가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다. . . .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단순히 계시된 도덕법이 영구적인 타당성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칭의가 계명을 지키는 것에 어떤 식으로든 좌우되는지, 그리고 안식일-일요일 문제가 우선 순위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이다.”

린젤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 안식일의 가르침을 그들의 기준 체계와 관련시키면, SDA 시스템에서 구원이 은혜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으로 되는 것임이 논란의 여지없이 드러날 것이다. SDA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들은 구원을 상실할 수 있고 또 상실한다. . . .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답한다:  지금이나 나중에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킴으로 구원받음을 증거하거나 구원의 상실을 막아야 한다면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다. 오히려 은혜로 구원받고 행위로 그 구원을 지탱한다는 주장이다.”

마틴-반하우스와의 대화에서 보았듯이, 이러한 린젤의 비판은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사이에 존재하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마틴 및 반하우스와 더불어, 린젤은 구원에 대한 모든 책임을 하나님 께 맡기고 있다. 개인의 예정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은혜라는 개념이 결합되어 사람의 구원을 믿음에 의한 칭의의 시점에 고정해 영구화하고 있다. 십계명에 대한 순종의 강조는 은혜를 약화하므로 사실상 “비기독교적”으로 간주한다. [11]

[10] 역자주: 이러한 견해는 믿음과 순종을 분리해 순종을 구원의 영역에서 축출한 개혁주의 신학 구원론의 전형적인 산물이다. 반면 재림신앙이 속한 아르미니우스 주의의 구원론은 참된 믿음은 당연히 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로 순종(행함)으로 나타나고, 따라서 순종은 진실로 구원받은 자의 징표임을 가르친다. 즉,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 2:17)

[11] 역자주: 바로 이러한 구원론에 기초한 원죄론, 예정론,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불공평하고 이치에 맞지 않고 신자의 세속적인 신앙 생활을 정당화하는 신조들 때문에 역자는 장로교 신앙을 접었던 바이다. 재림교회를 이단의 범주에서 제외하고자 복음주의자들과 대화를 한 그 당시 재림교회 지도자들의 선의를 의심치 않지만, 결과적으로 그 대화를 통해 일부 이러한 사조를 재림교회로 불러들인 그들의 잘못과 기만적인 방법에 대해 역자는 적지 않은 분노의 감정을 느껴왔다.

린젤 박사는 기사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SDA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도나 여호와의 증인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절대 신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갈보리에서의 그의 속죄 희생을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SDA는 구원의 교리에 잘못이 있으며 로마 카톨릭교와 같은 오류에 빠져있다. 아마도 그들은, 인간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 죽음의 충분성에 대한 부인으로 인해, 바로 이 그룹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물론, 그들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안식일을 변경한 책임이 로마 카톨릭교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말이다.  내 판단으로는, SDA는 복음주의자가 아니며, 그들 가르침의 이 심각한 오류가 바로잡힐 때까지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상 재림교인들이 복음주의자로 간주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전제를 칼뱅주의의 전제로 대체하고, 구원의 전 과정이 십자가에서 끝났으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는 설교를 중단하는 것이다.

그 후 프랭크 요스트(Frank H. Yost) 박사는 1958년 7월 21 일자 「오늘의 기독교」지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 대답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린젤의 기사에 답변하였다.

마틴 책의 출간

1960년 드디어 월터 마틴의 책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관한 진실」이 반하우스 박사의 추천서와 함께 출간되었다. 이 추천서에서 워싱턴 D.C.에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지도자들과의 대화와 그 결과로 출판된 「교리에 대한 질문」에 대해 설명한 후, 반하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재림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마틴의] 책이 그들의 신학적 입장을 공정하게 제시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 책은 기독교 변증론에서 이정표적인 하나의 업적이다. . . . 현재 상황에서 [복음주의와] 재림교회의 교리적 차이에 대한 마틴의 예리한 논박이 흔들리는 영혼들로 하여금 그러한 오류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하더라도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그것을 잘못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마틴은 서문에서 부분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이 책의 포함된 정보는 또한 권위 있는 재림교회와 비재림교회 출처 자료와 점검되고 교차 점검되어서 그 타당성에 대해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신학, 역사 및 예언적 해석과 관련하여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진정한 입장에 대한 오해를 제거하기 위해, 저자는 재림 교회의 저명한 저술가들과 재림교회 신학에 관해 가장 최근에 출간된 권위 있는 저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교리에 대한 질문에 답하다 (교리에 대한 질문)」를 아주 많이 참고하였다. 이 책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진정한 입장을 제시하는 이 결정적인 저서로서 그들의 신학과 교리에 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책의 제목이 바로 복음주의자들을 중간에서 기꺼이 만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교리에 대한 질문」 8페이지와 9페이지의 일부를 인용했다: “이 답변은 교회 교리와 예언적 해석 분야에서 우리 교단의 입장을 대변한다. . .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한 저자와 조언자 및 편집자들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신조를 정확하게 진술하기 위해 양심적으로 노력해왔다. . . . 그러하기에 이 저서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신앙과 신념을 진정으로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틴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본 저자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단의 역사와 신학을 정확하게 제시하기 위해 양심적으로 노력해 왔다. 저자는 재림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들 교회의 진정한 현재 입장이라고 제시한 내용을 정확히 근거 삼아 그의 결론을 유추하였다. 저자는 또한 그리스도인의 협력과 교제를 나눈 지도자들의 기본적인 정직성을 믿었다. 대총회가 「교리에 대한 질문」을 출간하였고, 그 기관이 재림교회의 생각하는 바를 대표할 수 있는 권한을 충분히 부여받았기 때문에, 이 책은 확실히 재림신학에 대한 평가의 기초로 삼을 수 있는 주요 원천 자료이다.”

복음주의자들과의 대화와 그 결과 출간된 「교리에 대한 질문」과 마틴의 책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 관한 진실」에 대한 이러한 논평들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반하우스와 마틴이 재림교회가 변화와 과도기 중에 있다고 여겼다는 점이다. 그 결과 그들은 특히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신조가 100% 수정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들의 생각에는] 이러한 주제에 대한 이전의 견해가 부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헌에서 “오래된”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이는 진술을 삭제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니스트리 기사들

이제 대략 동시대인 1956년에서 1959년 사이 「미니스트리」지에 실린 기사들을 살펴보자. 1956년 9월호 미니스트리」지의 “육적이 아닌 인간 (Human, Not Carnal)”의 제목으로 된 사설에서 앤더슨은 구원론에 대해 다루었다. 그는 잡지의 17-24페이지에 포함된 성육신에 관한 엘렌 화잇의 진술문 리스트에 주의를 환기하면서 “이 사설은 모든 독자에게 이 명료한 문장들을 기도하며 신중하게 연구할 시간을 갖도록 촉구하기 위해 작성되었다”라고 적었다. 계속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교단의 역사를 통해 이 주제에 대해 도움이 되었을 만큼 우리의 이해는 항상 명확하지 못했다. 사실, 재림 신학의 이 특별한 입장은 교회 안팎의 여러 뛰어난 성서 학자들로부터 심각한 비난을 받아왔다. 오랫동안 설교들을 통한 진술과 때로는 인쇄물에 등장한 글들이, 액면 그대로 보게 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폄하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그분을 완전히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12]

앤더슨 목사는 계속하여 기술하였다: “그러한 의견은 「시대의 소망」에 있는 두세 개의 표현들에 의해 주로 형성되었다. . . .다른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균형을 잡아주는 진술의 고려없이 「시대의 소망」에 포함된 두세 개 진술들의 성급한 독서에 기준해, 혹자들은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셨을 때 우리의 부패하고 육욕적인 본성을 취하셨고 그로 인해 그분이 어떤 다른 인간과도 차이가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공식 입장인 양 결론지었다. 사실, 소수의 사람들은 그분이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가 되기 위해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잃어버린 바 된 인류를 동정하고 우리의 필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분이 우리의 부패된 죄 된 본성을 공유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앤더슨 목사는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인성을 취하셨다는 입장이 왜 중요한지 강조한 후, “이 모든 영감의 권면들 가운데 오직 서너 곳에서만 우리는 ‘타락한 본성’과 ‘죄 된 본성’과 같은 표현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것들은 저자의 생각을 드러내는 다른 많은 진술로 균형이 잡히고 명확히 설명된다”라고 주장하였다. [13]

[12] 저자주: 우리는 이러한 진술이 인쇄물에서,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발표되는 걸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재림교인들은 항상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확실히 인정해 왔다. 문제는 그분의 신성이 아니고, 성육신 하셨을 때 그 분의 신성에 죄 없는 육신을 취하셨는지 아니면 죄 된 육신을 취하셨는지에 관한 것이다.

[13] 저자주:  「시대의 소망」에서만 적어도 네 곳에 그러한 말씀이 있기에, 이것은 당혹스러운 진술이다. 이 문서의 부록에 “타락한 본성”,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죄 된 본성” 등과 같은 용어를 화잇 부인이 사용한 20개의 참고 문헌을 열거하였다.

그러면서 앤더슨 목사는 1915년부터 1946년까지 「가정용 성경 봉독 (Bible Readings for the Home Circle)」에 실린 한 문장을 언급했다. 이 문장은 그리스도께서 “죄 된 육신으로” 오셨음을 언급했는데, 앤더슨 목사는 “이 표현이 어떻게 이 책에 슬며시 들게 되었는지 알기 어렵다. 그 진술이 재림교회의 전형적인 그리스도론인 것으로 비판자들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여러 번 인용되었다. 그러나 그 책이 1946년에 개정되었을 때, 이 표현은 우리의 진정한 입장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 되었기 때문에 삭제되었다”라고 기술하였다. 앤더슨 목사는 이 기사의 나머지 부분을 통틀어 그리스도는 인간의 육체를 가졌지만 아담이 에덴에서 가졌던 것과 같은 도덕적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1956년 12월호 「미니스트리」지에서 앤더슨 목사는 “재림교에 대한 태도 변화”라는 제목의 사설을 발표했다. 사설에서 그는 종교계와 세상의 많은 주요 저널들이 최근 재림교회에 관한 기사를 발표했다고 언급했다. 재림 교회에 대한 이 새로운 관심에는 신성한 목적이 분명히 있다고 선언한 다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특정한 기독교 단체들이 대체로 완전한 정보가 부족한 가운데 우리를 복음의 근본적인 요소들을 믿지 않는 단체들과 같이 분류했다는 것은 깊이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오해에  대한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도 있음은 충분히 가능한데 그 이유는 이러한 근본적인 이슈에 있어 우리가 믿는 바를 명확하게 기술하지 못했고 또한 강조해야 할 곳에 주된 중점을 부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때때로 교회 전체가 아닌 개인의 생각을 전달하는 특정 표현들이 교회 인쇄물에 실려서 오해에 추가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한 한 가지 예로서 그는 복음주의자들과의 대화하는 가운데 오해되지 않을 언어를 사용하여 우리의 신념을 명확하게 진술해야 하는데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개선해야 할 한 분야는 “순종의 필요성을 강조할 때”라고 제안하면서, “행함의 구원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말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역설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복음의 핵심으로 지적한 후에, 앤더슨 목사는 “재림성도들에게 있어 구원은 ‘율법의 행위없이’ 전적으로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진리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앤더슨 목사는 “순종은 구원의 결과이지 구원의 근원이 아님을” 지적하면서, 순종과 안식일 준수에 대한 훌륭한 변증을 하였다. 그런 다음 그는 사도 바울이 “순종에 관련된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주님 께서 그분의 삶과 죽음으로 우리를 위해 영광스럽게 성취하신 것에 결코 추가될 수 없다. 더욱이 그러한 준수로 공로를 쌓으려는 생각은 실제로 구원을 취소한다. 그러한 전제에서 비롯된 모든 봉사는 ‘은혜가 아니라 빚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치고 있음을 역설했다.

앤더슨 목사는 계속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교인 중 일부가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입지만 지금 그들이 선한 일과 십계명에 대한 엄격한 준수를 통해 성화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언어로 그들의 믿음을 기술해온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일부 교인들의 이러한 부주의한 강조로 인해 어떤 이들이 재림교회를 정통적이지 못한 단체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이어 그는 재림교인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의 속죄 외에 하늘에서 또 다른 속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일부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지적하면서, 하늘 성소에 대한 문제를 다뤘다. “우리가 정말로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당연히 비난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가르침은 주님이 갈보리에서 이루신 그분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우리 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재림교인들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완성되고, 충분하고 단번에 성취된 속죄를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승천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으로서 이제 그 속죄의 은사를 신자들에게 베풀고 계시며, 그분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놀라운 속죄의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가능해진 구속을 당신 백성들의 삶에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14]

[14] 저자주: 앤더슨의 이 진술이 많은 재림교인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음을 감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에서 이루신 속죄의 은사를 하늘에서 베풀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재림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은사를 베푸는 것보다 더 많을 일을 하고 있다고 항상 가르쳐 왔다. 그분은 하늘 성소에서 조사삼판에 관여하시고, 구약시대 지상 성소의 표상이 보여준 바대로 갈보리의 희생이 그 일부인 속죄의 사역을 사실적으로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속죄의 더욱 큰 의미에는 희생물의 죽임과 그 희생물의 피를 성소 안에 뿌리는 제사장의 사역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앤더슨 목사는 복음 주의자들에게 제공된 답변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교리에 추가하거나, 빼거나, 바꾸려는 시도는 전혀 없었으며 ‘우리 가운데 가장 확실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답변은 북미주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에 있는 많은 설교자, 교사 및 행정가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다.” 분명히 앤더슨 목사는 우리의 교리에 변화가 없다고 느꼈지만, 반하우스와 마틴은 이 사안에 있어 다르게 인식했다.

1957년 4월호 「미니스트리」지에 두 개의 사설이 발표되었다.  첫 번째는 “재림교회의 새로운 이정표”라는 제목하에 루이스 클루저(Louise C. Kleuser)에 의해 쓰였고, 두 번째는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하에 앤더슨에 의해 쓰였다. 첫 번째 사설은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이 재림교회를 더 이상 이단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 “재림교회 역사에서 획기적인 장”으로 묘사하면서, “우리가 개신교의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중생한’ 기독교인으로 받아 들여졌”으며, “문제의 주요 쟁점은 재림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신성함, 그의 속죄 희생,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완성된 사역을 믿는지였다” 고 그녀는 기술했다.

앤더슨 목사의 사설은 처음 부분에서 정확하게 말했다: “우리가 옹호하는 신학이 우리의 무엇인지 말해준다.” 사설의 나머지 부분은 그리스도가 죄 없는 인성을 취했음에 대해 설득력 있게 주장하였다. 사설에는 “죄 없는 자로서의 그리스도, 죄의 환경에 있는 현존의 인간, 죄 없는 환경에 있는 아담”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흥미롭고 가치 있는 도표가 수반되었다.

1957년 6월호 「미니스트리」지에 앤더슨 목사가 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교리에 대한 질문에 답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에서 그는 「교리에 대한 질문」에 관해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출판한 모든 책 가운데 그 어느 책도 이보다 더 세심하게 검증을  거쳤던 책이 없었다.” 그는 “모든 답변은 지도적인 대총회 임원을 포함한 많은 대표 지도자들에 의해 신중하게 검토되었다”라고 말하며, 이 책에 좀 더 큰 권위를 주고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원고는, 이곳의 큰 그룹에 의해 세심하게 연구된 후, 전 세계의 모든 지회에 있는 우리 지도부로 보내졌다. 더불어 그 원고는 우리 상급 대학의 성경 교사들과 우리의 주요 저널의 편집자들에게도 보내졌다. 사본은 또한 북미 지회의 연합회 및 지역 합회 지도자들에게 보내졌다. . . . 어떠한 원고도 이처럼 더 주의 깊게 준비된 적이 없었으며, 어떠한 다른 책도 이보다 더 열렬한 기대감으로 기다려졌던 적이 없었다.”

「교리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이러한 지지를 재청하며, 대총회장인 피규어(R. R. Figuhr)는1958년 1월호 「미니스트리」지에 실린 “교리에 대한 질문”이라는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도 이 교단에 의해 편찬된 다른 어떤 책도 출판 전부터 이보다 더 많은 교단의 책임 있는 사람들에 의해 그토록 신중하게 검토된 책은 없었을 것이다. 미국과 다른 나라에 있는 약 25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책이 출판되기 전 그 원고 사본을 받았다. 약 14명의 사람으로 구성된 그룹에 의한 예비 원고 작업은 매우 조심스럽게 준비되어 단지 극소수의 개선 제안만 제출되었다. 그에 반해 주목할만하게 이구동성으로 찬성의 합창이 있었다.” 피규어 목사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인성과 십자가에서의 그의 속죄에 관한 엘렌 화잇의 인용문을 담은 부록에 각별한 주의를 환기하며,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책임 있는 많은 지도자들로 구성된 큰 그룹의 신중한 작업을 대변하고 예언의 신으로부터 귀중한 인용문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독특하며, 우리의 출판된 도서 목록에 꼭 필요했던 한 자리를 채운 서적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15]

[15] 역자주: 역사를 뒤돌아 보면 그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먼 일종의 프로파간다였음이 드러났다. 이 책의 원고가 이들의 주장처럼 여러 사람에 의해 자세히 심사되며 준비되지도 않았고, 주로 프룸 (L. E. Froom), 앤더슨 (R. A. Anderson), 리드 (W. E. Read)의 삼인방에 의해 준비되었으며, 교정 자문을 받은 리뷰와 헤럴드 편집위원회가 문제를 반복해서 제기하자, 1957년 1월 30일 그 위원회에 더 이상 교정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지한 것만 보아도 얼마나 독단적으로 이 책을 준비했는지 알 수 있다 (Unruh, Adventist Heritage, fourth quarter, 1977); 더불어 이 책이 출간된 후 곧이어 따라온 극한 혼란과 분열의 후폭풍은 물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신학적, 교단적 분열을 돌아보면서, 이 책이 조심스럽게 많은 이들의 검증을 준비되었다는 이들의 주장에 우리는 동의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남주혁(Julius Nam) 박사는 그의 학위 논문 208-281페이지에서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음을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열성적으로 홍보하면서 피규어는 자신의 의견을 과장하고 독자들을 오도한 잘못을 범한 것처럼 보인다. 그 원고가 널리 배부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의 출판에 관계된 사람들로부터의 문서적인 증거와 그 후 증언들은 결코 절대적인 만장일치의 “찬성의 합창”이 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 . . 그것은 본질적으로 소수 인사들의 작품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Julius Nam, Reactions to the Seventh-day Adventist Evangelical Conferences and Questions on Doctrine 1955-1971, pp. 280-281)

「교리에 대한 질문」에 대한 지지는 「미니스트리」지에 계속하여 등장하였는데, 1958년 3월호에서 앤더슨은 “재림 신앙의 통일성”이라는 제목하에 한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교리에 대한 질문」 제작에 들어간 신중한 작업, 원고가 출판되기 전에 받은 광범위한 지원 및 그 책의 출판 후 받은 열렬한 환영에 관한 사실을 반복했다. 이 기사는 250명에 달하는 교단 지도자들이 원고를 검증했지만 “사소한 제안을 제외하고는 내용상의 어떠한 수정 요구도 없었고. . . .몇몇 유익한 제안들이 있었지만, 교리상의 어떤 영역에서도 그 어떤 중대한 수정이 요구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16] 저자는 재림 신학의 통일성을 이룬 공을 예언의 신에게 부여했지만, “그것은 성경에서 나왔고 성경에서만 우리의 교리를 가져왔다”라고 말했다.

[16] 역자주: 이런 주장은 한마디로 거짓임이 드러났다. 남주혁 박사의 앤드루스 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에 기록된 대로, 레이먼드 코트렐 재림교회 성경주석 부편집인은 지도자들에게 투명성과 정직성을 호소하였고 “거의 확실한 바 우리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우리가 마틴과 다른 복음주의자들과 합의에 이른 그 실질적 용어들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될 때 반대의 폭풍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경고와 함께 수정을 요청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244-245페이지); 리뷰와 헤럴드 편집인 프랜시스 니콜은 대총회장 피규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전에 마틴에게 주어진 진술과 문서로 전달된 답변들을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숙고하고 난 후에도 지지할 수 없다. . . . 대화에 참여하는 이들이 세상과 가장 구분되는 교리상 차이점들의 중요성을 감지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들과의 교제 중 합의점을 찾기 위해 본의 아니게 차이점을 흐리는 유혹에 굴복했을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253페이지); 미중부 연합회장 시어도어 칼시치는 “마틴 씨는 소위 그리스도인의 친교라는 감언이설로 가장하여 우리의 선조가 오래 전에 반박했던 안식일, 죽음의 상태, 조사심판과 예언의 신과 같은 주제을 놓고 신학적 혼란을 또 야기하려고 하고있다”라고 말했으며, 대총회장 피규어에게 「교리에 대한 질문」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기초적 교리들을 약화할 영약하고 은밀한 시도”라고 경고하였다 (346-347페이지)

예언의 신을 이용해 이 책의 특정 부분을 뒷받침하려는 이런 노력은 분명히 일선 사역자들의 비판적 반응때문에 촉발되었다. 이 문단을 주목해 보시기 바란다: “「교리에 대한 질문」을 주의 깊게 읽으면 우리 교단의 신조가 성경과 더불어 예언의 신에 의해 지속해서 확증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책의 한 부분이 「미니스트리」지의 특정한 진술과 함께 소수의 사람에 의해 명백하게 오해되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전반적으로 찬성의 반응이 있었음을 고려할 때 이것은 특별히 우리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분명히 “오해된” 한 부분은 속죄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위치를 다루는 부분이었다. 앤더슨 목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런 오해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이 이 책이나 언급된 「미니스트리」지 기사를 읽는 사람이 그렇게 명백하게 잘못된 인상을 받았다는 것에 놀라움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 . . 이미 언급했듯이, 세계 각지로부터 이 책이 담고 있는 설득력 있고 학구적인 답변에 대해 진심 어린 감사의 표현들이 쏟아졌다. . . .세계 각지로부터 온 이 책에 대한 만장일치의 승인은 우리 교단의 신조가 일치단결함을 보여주었고, 「교리에 대한 질문」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그 책이 예언의 신의 명백한 진술들과 완전히 일치함을 알게 될 것인데, 그 예언의 신은 우리의 서재에 반세기 동안 소장해 온 책들이다.”

문제의 이슈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제의 진짜 요점은 속죄에 대한 것이다.” 이 기사의 나머지 부분에서 그는 「교리에 대한 질문」에서 제시된 견해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속죄가 실제로 십자가에서 완결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교리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지지를 덧붙였다: “이 점에 관해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고 아마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단순히 이러한 주제들이 너무나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는 기쁨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이 위대한 교리들이 예언의 신에 있는 모든 인상적인 진술들과 함께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만족의 원인이다. 이 책에 대한 호응으로 대량의 주문이 쇄도하여서, 현재는 처음 출간 시의  5달러가 아닌 1.5달러에 출간되고 있다.”

이 기사는 「교리에 대한 질문」에 명시된 것 이외의 견해를 가진 사람은 소수에 속하거나, 그 책에 명시된 명확하고 강력한 진리의 설명을 이해할 능력이 없거나, 혹은 예언의 신을 믿지 않는다는 분명한 신호를 주고 있었다.

그다음 달인 1958년 4월호에서 편집자는 “행동 촉구”라는 제목하에 재림 신조의 일치성에 관한 두 번째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재림 교인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특정한 교리들에 관해 취득한 증가된 이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1888년 대총회의 문제에 관하여 앤더슨 목사는 “논쟁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보다 더 큰 주제들을 수반하였다. 신격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 그리스도의 신격, 성령의 인격, 성육신의 본질, 그리고 그리스도인 삶과의 관계에서의 도덕률,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 계시 된 신격의 충만함 –  우리가 되돌아 볼 때, 이것들이 실제로 1888년의 주요 고려 사항들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추가하여 “신격,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격, 성령의 본성과 역사라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우리 지도자들은 아직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라고 기술했다.

속죄의 주제에 대해 일선 사역자들로 부터 비판이 계속되고 있었음이 분명한데, 앤더슨 목사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자신의 속죄 은사를 제자들에게 베풀어 준다”는 「초기문집」 260페이지의 진술을 다시 인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화잇 부인이 1888년 이 후 많은 책을 저술하였으며, 그녀가 “그리스도의 신격, 성령의 인격, 십자가에서의 완전한 희생 속죄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함축된 모든 주제”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그 책들에서 피력했음을 언급하였다. 그런 다음, 앤더슨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재림 교회 사역자들의 전도단을 구성하는 세대는 대부분 이 책들이 쓰인 후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진리가 이 책들에 너무나 명확히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역사의 초기에 이러한 점들 중 일부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었음을 깨닫는 것은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이것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우리의 신조를 바꾼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가 모습을 드러냈고, 교단의 신념이 결정화되었으며, 우리가 선언한 진리의 이해에서 연합되었다고 말함이 더 나을 것이다.”

이 기사는 단결에 대한 호소와 함께 다음과 같이 첨부하였다: “우리의 교리가 수년 동안 점점 더 분명해졌기 때문에 아무도 염려하지 말고 성령의 연합 안에서 계속 나아가자. 우리 과거가 어떻게 기록되었든 간에, 지금은 분열된 증언이나 비판적 태도를 가질 시간이 아니다. . . . 이제 재림교회 행동의 일치를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의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군대의 영적 사기를 강화하고, 단결된 대열로, 우리의 하나님이 주신 과업을 끝내고, 그의 영원한 평화의 왕국을 재촉하기 위해 승리의 주체로 전진하자.” [17]

[17] 역자주: 앤더슨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의 일탈적 행동으로 인해 재림교회 안에 분열이 초래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앤더슨의 호소는 지극히 자기 고양적 (self-serving) 발언이라고 평할 수 있다.

아무도 연합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으며, 재림교회의 오늘이 있게 한 진리에 대해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함에 확실히 그 어떤 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게 역사적인 재림 신학으로부터 두드러지게 벗어난 그 무엇을 믿도록 요구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더불어 그들이 이전의 견해를 고수할 때 “이류 시민”으로 분류될 것이라고 느꼈다.

「미니스트리」지 1958년 6월 호에는 로우(H. W. Lowe) 의 「교리에 대한 질문」에 대한 서평이 실렸는데, 이 서평은 복음주의자들과의 대화의 결과로 교회 지도자들이 기본 교리를 타협하거나 변경했다고 느낀 교회 안의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서평을 시작하면서 로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책은 특정 복음주의파 지도자들이 우리 본부로 가져온 질문 목록에 답하려고 시도한 재림교회 지도자들의 특별위원회에 의해 준비된 많이 예고된 책이다. 이 책의 출판 전에 특정 기독교 저널에 우리 신학의 변화를 지적한 여러 소개서들이 실렸다. 그 한 예로, 미시간 주 그랜드 래피즈에 있는 유명한 교사이자 라디오 설교자로 재림 교회의 극한 비판자인 디한(M. R. DeHaan) 박사가 「왕의 사역 (King’s Business)」지 3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그 책이 옛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입장을 180도 바꾸고 그들의 여러 불쾌한 교리들을 부인하는 책이 될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확약 받았다.’”

로우 목사는 계속 말했다: “그 책을 읽은 다음 디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에서 재림교회의 역사적인 입장에 기본적으로 변경된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실망은 매우 심했다.’ 그는 같은 선상에서 훨씬 더 많은 평을 덧붙였다. 나 자신의 독서 결과 나 또한 한마디로 기본적인 변경이 없다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이 책에는 교리나 예언적 설명에서 180도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는 없으며, 교리적인 변화를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로우 목사는 속죄 문제에 대해 간략하게 다루었다: “우리 모두가 언어적 의미를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추정된 의견의 불일치가 줄어들 것이다. 예를 들어, ‘속죄’라는 단어는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성경에서 하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기독교 신학에서도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속죄와 관련하여 십자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하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화잇 부인은 그 용어를 어떻게 사용했는가? 이 모든 것이 우리 교인들을 신앙안에서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 책에서 논의되고 있다.”

로우 목사는 계속해서 십자가에서 속죄가 완료되었다고 여기는 것이 그리스도가 지금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 하는 일의 중요성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확신하기 보다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더 두려워하는 몇 사람을 알고 있다.  이 책의 이 부분은 그것에 대해 진정한 빛으로 제시한다.”

서평은 이 문장으로 끝맺었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많은 가치가 포함된 책은 많지 않다. 이 책은 모든 재림교인 가정과 교회, 공공 도서관, 그리고 문의하는 친구들의 손에 배포돼야 한다.” 이 서평이 전하는 인상은 분명했다. 이 책이 재림 교리에 대한 최종적인 진술은 아닐지 몰라도, 그것은 권위 있고 정통의 새로운 표준이라는 인상을 주었으며, 교회의 최고 지도자들은 모든 재림 교인들이 이 책을 구하도록 촉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로 부터 1년 후인 1959년 5월호 「미니스트리」지에서 앤더슨 목사는 “어느 비재림교 지도자가 우리 신조를 검토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는데,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교리에 대한 질문」에 대한 서평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한두 명의 편견을 가진 평론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호의적이었고, 일부는 예외적으로 그러했다.” 앤더슨 목사는 「생활의 종교 (Religion in Life)」 1958~1959년 겨울 호에 실린 프랭크 미드 (Frank S. Mead) 박사의 서평에서 자유롭게 인용했다. 미드 박사의 호의적인 서평을 인용한 후, 앤더슨 목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미드 박사가 우리 신학의 일부 영역에 관해 유보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지만, 재림교회가 지금까지 믿어 왔던 것보다 보수적인 기독교와 더 공통점이 있다는 그의 솔직한 진술은 중요하다. 우리는 독자들이 이 솔직한 평가와 이 책이 결코 우리의 신앙을 손상하지 않는다는 평론가의 인식을 환영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을 비판하는 사람은 누구나 “편견적”으로 규정하는 사고방식과 “이 책은 결코 우리의 믿음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라는 지속적인 논조에 주목해야 한다.

앤드리어슨의 항의서들

대총회 본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조장된 「교리에 대한 질문」에 대한 끝없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인들은 계속하여 이 책과 마틴 및 반하우스와 가진 대화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 비판의 일부는 은퇴한 대학 및 신학 대학원의 교수였던 앤드리어슨(M. L. Andreasen) 목사에 의해 명맥을 이어갔다. “교회에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하에 발표된  여섯 편의 간행물에서 그가 보기에 역사적인 재림 신학을 변경하려는 음모와 일반 교인들에게 마틴과 반하우스와의 대화에서 복음주의자들에게 양보가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 여섯 편의 편지는 오리건 주 베이커에 사는 허드슨(A. L. Hudson) 에 의해 출판되고 배포되었다. 이 편지들은 더 많은 관심을 받아 시리즈 B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하에 우선 시리즈 A로 지정되었다. 1호는 “성육신: 그리스도는 면제되었는가?”, 2호 “조작의 시도”,  3호 “화잇 부인의 격하”, 4호 “한 이력서”, 5호 “청문회를 왜 열지 않는가? 물려받은 욕정“, 6호 “속죄” 의 제목으로 배포되었다.

편지 1호에서, 앤드리어슨 목사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인간이 직면해야 하는 어떤 것에서도 면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히브리 4:15, 5:2, 2:17; 마태복음 8:17과 같은 본문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러한 반증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는 슬픔이 뒤섞인 놀라움과 당혹감과 함께 ‘그리스도는 아담의 자연적 후손들을 타락시키는 유전된 욕정(passions)과 오염(pollutions)으로부터 면제되었다’라는 「교리에 대한 질문」 383페이지에 있는 잘못된 진술을 접하게 된다.” 그는 계속해서 면제됨(exempt)과 욕정(passion) 이라는 단어들을 정의하고 인간 가족과 연관된 그리스도의 동질감의 완전성을 말한 엘렌 화잇의 진술을 마음껏 인용했다. 그런 다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증언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욕정에서 면제되었다는 새로운 신학을 믿는다고 그 누구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은 물론 자명한 일이다. 둘 중 하나이다. 교단은 지금 결정을 내려야 한다. 「교리에 대한 질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주신 선물에 대한 믿음을 포기해야 한다.”

앤드리어슨 목사는 이 편지의 후반부에서 복음주의자들과의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교리에 대한 질문」 책이 어떻게 제작됐는지, 그리고 “새로운 신학”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검토했다. 그런 후 앤드리어슨 목사는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히는 교리가 우리 교단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가? 몇 해에 걸쳐 유능한 사람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연구한 결과인가? 그리고 그런 최종적 결론이 공개적인 대표들의 회의를 통해 교단에 제출되었는가? 더불어 교단이 적절한 절차로 투표한 바대로 어떠한 변화가 고려되고 있는지에 대한 세부 사항을 리뷰지에 사전 공표했는가? 이런 일들은 하나도 이행되지 않았다. 오직 익명의 책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심판을 받고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제동을 걸었다.” [18]

[18] 역자주: 앤드리어슨의 이 평가는 정확하다. 재림교회의 교리 수정은 세계의 교회 대표들이 참가하여 5년마다 개최되는 회기중의 대총회(General Conference in Session)에서만 허용된다. 이 명확한 사실을 인식한다면, 복음주의자 대표들과 대화를 거친 후 그들의 요청에 의해 출간된 「교리에 대한 질문」을 통하여 재림교회가 그전까지 변함없이 유지해 왔던 그리스도의 인성 및 성소봉사에 대한 가르침에 일련의 방향 수정을 변칙적으로 시도했던 그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잘못을 우리가 직시할 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 재림교회의 일련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에 의해 이 책이 마치 재림교회의 정통적인 교리를 대변하는 일종의 공식 문서인 것처럼 일반 성도들에게 제시됐는데, 우리가 교리 수정에 필요한 올바른 절차를 알고 있으면, 그러한 일부 인사들의 사견은 지극히 근거가 없는 주장임을 쉽게 파악하게 된다

앤드리어슨 목사는 또 본 조사 문서에서 언급된 출판물들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즉 마틴과의 대화 중 대총회 대표들이 “광기 있는 무책임한 자들”과 “광적인 소수 분파”를 제외한 모두가 믿고 있는 것과 다른 교리적 입장을 가르치는 출판물들을 교정하기로 그에게 약속했음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다른 교파의 한 목사가 우리 신학을 교정하게 하고,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리에 관한 교단의 가르침에  변화를 조장하며, 심지어 안식일 학교를 침범하여 요한 계시록 13장의 중요한 교훈을 보류하도록 지도자들에게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분명히 이례적이다. 우리 지도자들이 이러한 것을 받아들임은 그들의 지도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앤드리어슨 목사는 반하우스 및 마틴과의 대화 결과로 요한계시록 장을 차례로 공부하는 1958년 제 2기 안교 교과에서 짐승의 표에 대한 논의가 생략되었다고 추정하였다.

엔드리어슨 목사는 우리 교단의 대다수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실 때 죄 없는 본성을 취했다고 항상 믿어왔고 다른 어떤 견해도 “전체 교인들에게 완전히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한 우리 지도자들의 진술을 언급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지도자들이 마틴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그들은 가장 큰 거짓을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교단은 이 편지에서 사용된 인용문들에서 화잇 부인이 밝힌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견해도 결코 견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지도자들 또는 누구에게도 그들 주장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라고 도전한다. 더불어 어떤 저자들이 ‘교회 전체에 완전히 혐오스러운’ 견해를 인쇄물에 실었다는 진술은 얼마나 심각한 거짓인가!  화잇 부인이 바로 그렇게 인쇄물에 올려진 저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앤드리어슨 목사는 「가정용 성경 봉독」을 인용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교단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앤드리어슨 목사는 편지에서 다섯 가지 주요점을 요약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교인들은 대체로 지금 존재하는 상황을 잘 모르고 있고, 그들이 이것에 대해 무지하게 남아있도록 모든 노력이 총동원되고 있다. . . . 우리 임원들은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는데, 그 결과로 발생하는 화재는 다가오는 오메가의 속임수가 ‘가장 놀라운 성격을 띠고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을 성취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앤드리어슨 목사는 다음과 함께 그의 편지를 끝마쳤다: “일곱 번이나 나는 청문회를 요청하였다. . . . 나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며, 오랫동안 설교해온 이 기별을 사랑한다. 나는 기초 기둥이 파괴되고, 우리를 만든 축복받은 진리들이 버려짐을 보면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

“조작의 시도”라는 제목으로 배포된 편지 2호에서, 앤드리어슨 목사는 「교리에 대한 질문」 원고를 준비하고 있던 두 명의 위원이 1957년 5월 화잇 유산관리 재단 이사회에 한가지 제안을 했는데, 그것은 속죄가 지금 하늘 성소에서 드려지고 있음을 설명하는 화잇 부인의 글들에, 이것은 속죄가 십자가에서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각주를 추가해 달라는 제안이었다고 보고했다. 앤드리어슨 목사는 그가 보기에 화잇 부인의 글들을 조작하려는 시도에 소름이 끼쳤고, 우리의 영적 선조들이 항상 십자가에서 속죄가 완성되었음을 가르쳤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는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우리 선조들은 그런 것을 믿지도 선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십자가에서의 사역이 완전하고 충분하다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대속물이 지불되었고 이 희생이 충분하였다고 믿었다. 하지만 마지막 속죄는 1844년 그리스도가 지성소로 들어가심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을 재림 교인들이 항상 가르치고 믿어 왔으며, 이는 우리의 존경받는 선조들이 믿고 선포한 오래되고 확립된 교리이다. 그들은 십자가에서의 속죄가 최종적이고, 완결되고, 충분하였다고 믿으면서 동시에 1844년에 또 다른 최종적인 속죄가 있었다고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은 터무니없고 무의미할 것이다. 우리 죄에 대한 형벌을 지불하는 것은 참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중요하고 필수적인 부분이었지만 결코 모든 것이 아니었다. . . .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갚으셨다.’ 그러나 그 귀중한 보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사용하실 때 우리에게 효력이 있고, 이것은 각자가 세상으로 올때를 기다린다. 그러므로 속죄는 사람들이 태어나는 한 계속된다.”

“화잇 부인의 격하” 라는 제목으로 배포된 편지 3호에서,  앤드리어슨 목사는 「미니스트리」지에 날카로운 공격을 가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리뷰」지를 안심하고 읽으며 즐긴다. 나는 「시조」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목회자들의 저널인 「미니스트리」지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 잡지의 일반적인 기사들은 「리뷰」지와 같은 종류와 품질이지만 특별기사나 사설들은 항상 그렇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신중하고 비판적으로 읽는다. 때때로 그것들은 내가 이단적이고 위험한 진리의 왜곡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심한 비판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그것은 내가 의도한 바다. 나는 한 구체적인 예를 제시함으로써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지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1957년 2월호 「미니스트리」지에 실린 “제사장적 적용 (The Priestly Application)” 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주의를 환기했다. 그는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저자의 설명에서 다니엘 8:14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그와 관련된 본문이나 날짜도 언급되지 않았으며, 속죄에 관한 화잇 부인의 글 리스트에는 「각시대의 대쟁투」책의 429, 442 및 480페이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재림교회의 속죄 개념을 독특하게 하는 이러한 본문과 참고 문헌들이 의도적으로 누락되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19]

[19] 역자주: 이 「미니스트리」지에 실린 프룸(L. E. Froom)의 기사는 곧 출판될 예정이었던 「교리에 대한 질문」에 대해 독자들을 준비시키도록 계획된 글이었다.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대해 복음주의자들에게 준 모호한 설명에서 우리 교리를 설명할 때마다 빠짐없이 사용되는 성경 본문과 화잇 부인의 글들을 빠뜨렸고, 그것의 요약된 내용을 재림교회 목회자들의 저널에 실어 여론을 호도하려고 했음을 앤드리어슨 목사가 제대로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앤드리어슨 목사는 프룸 (L. E. Froom)이 1957년 2월호 「미니스트리」지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음을 주지했다: “우리에게 온 교리적 진리나 예언적 해석 중 어느 한 가지도 애초 예언의 신을 통해서 주어지지 않았다.” (밑줄은  프룸의 강조) 그리고 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들은 대담하고 거의 믿을 수 없는 말로서 전적으로 진실하지 않은 말이다. 화잇 자매가 단 한 건의 경우에도 처음부터 어떤 교리적 진리나 예언적 해석에도 결코 기여하지 않았다고 주장은 그녀의 글들에 의해 유익을 입은 수천, 수백만 독자들은 모두 믿지 않는다.” 앤드리어슨 목사는 프룸의 주장을 반박하는 교회를 위한 증언 시리즈 B, 2번, 56과 57페이지를 인용하였다: “나는 계시를 받게 되었고 우리가 연구하여 오던 성경절에 대한 뚜렷한 설명을 나에게 주셨고 이에 따라서 우리가 일해야 할 방법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교훈의 말씀을 주셨다. 이처럼 빛을 주심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명과 제사 직분에 관한 성경절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셨다. 그때로부터 우리가 하늘 도성에 들어가게 될 때까지 이르는 일련의 진리를 나에게 밝혀 주셨으며 또한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교훈을 전해 주었다.” (「가려뽑은 기별」 1권, 206-207페이지; 밑줄은 엔드리어슨의 강조) 앤드리어슨 목사는 이어서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가르치고 믿었던 성소 교리의 저자는 바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계시를 통해 왔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른 어떤 교리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속죄의 의미를 설명하는 화잇 부인의 글들에 각주를 추가하려는 모든 시도는 “화잇 자매가 말한 것은 그 뜻이 아니다!”(앤드리어슨의 강조)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앤드리어슨 목사는 잘라 말했다. 더불어 “혹자가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속죄를 드리고 있다는 엘렌 화잇의 글을 재림교인에게서 듣거나 재림교회 서적에서 읽게되면, 그것은 단순히 십자가에서 드려진 희생 속죄의 은사를 그리스도께서 베풀고 있음을 우리가 뜻하는 바로 이해되어야 한다”라고 제시한 「교리에 대한 질문」의 개념을 그는 완전히 거부했다.

앤드리어슨 목사가 느낀 우려는 이 문장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지도자들이 거짓 교리를 강요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려고 할 때 이 교단에서 우리는 위기에 도달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체적인 프로그램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이 이제 여러 세대를 통해 이루어진 기초를 제거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예언의 신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건전한 교리로부터의 이탈과 우리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심각한 상처를 입힐 오메가의 출현을 우리가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이력서”라는 제목의 편지 4호에서, 앤드리어슨 목사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자료를 담지 않았다. 그는 반하우스와 마틴이 지금의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재림 운동의 초기에 가르쳤던 하늘 성소와 속죄에 대한 특정한 개념들을 완전히 부인했다는 주장을 반복하여 환기했다. 그는 또한 일부 인사들이 엘렌 화잇의 저서들에 각주를 삽입하려고 한 시도에 대해 논하고, 대총회 본부의 지도자들과 자신사이에 있었던 서신 교환을 포함했다. 그는 자신이 “건전한 지도부”에 의해 제제를 받게될 광적인 소수 분파와 광기있는 무책임한 자들의 일부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 교단은 이미 오래전에 예언된 배교에 직면해 있다. . . . 이러한 위기 속에서. . . . 주님의 편에 서서 도움을 드리지 않는다면 비겁한 일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청문회를 왜 열지 않는가? 물려받은 욕정“ 이라는 제목의 편지 5호에서, 앤드리어슨 목사는 총회 지도자들에게 청문회를 구하는 그의 요청에 대해 논하였다. 그는 그 청문회를 위한 약속을 정하는 문제와 청문회의 진행을 기록하는 방법에 있어서 대총회 사람들에게 상당한 이중성이 있다는 인상을 분명히 주었다. 편지의 두 번째 부분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본성과 이 주제에 대한 역사적인 재림교회의 가르침이라고 그가 생각한 바를 다루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유전 법칙에서 면제하는 새로운 신학은 “성육신을 하나의 경건한 사기극으로 만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교리에 대한 질문」에 있는 진술은 속죄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이설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편지를 끝맺었다: “나는 큰 집단이 천천히 움직이고, 누룩이 ‘반죽 덩어리를 부풀리는데’ 시간이 걸리기에, 내가 말한 것들이 충분히 이해되도록 시간을 주려고 한다. 하지만 누룩은 발효하고 있고, 때가 되면 예상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 . .시간은 진리와 함께 있고, 진리는 스스로 길을 만들 것이며, 그 어떤 인간적인 수단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나는 많은 격려 편지를 받고, 그들에게 감사하지만, 내가 그들 대부분에게 답장하지 못함을 미안할 뿐이다. 워싱턴 본부에 있는 다소 저명한 한 사람의 편지는 그곳에 존재하는 혼란에 대해 알려 주면서, ‘우리는 사건을 주시하고 있으며, 때가 되면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시기가 꽤 무르익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거의 그렇다고는 생각한다. 우리가 당신과 함께한다. 우리를 믿어도 된다’ 라고 하였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지 6호는 속죄에 대해 다루었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자료를 포함하지 않았지만, 하늘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일한 일은 속죄의 은사를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것이라고 제시한 「교리에 대한 질문」의 견해를 계속 문제 삼았다. 그는 속죄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는 엘렌 화잇의 언급은 7건이 있지만, 최종적인 속죄가 하늘에서 이루어진다고 한 언급은 22건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 편지서의 중간 부분에서 앤드리어슨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벌어지는 일에 찬성하지 않는 한 임원은 나에게 ‘우리가 강 아래로 팔리고 있다 (우리가 배신당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 얼마나 경천동지할 광경인가! 하늘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고 바벨론으로부터 사람들을 불러 나오게 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가, 지금 이 교회들의 문 앞에 서서 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 들어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하고 있다. 강력한 자들이 어떻게 넘어갔단 말인가! 그들의 계획이 성공했더라면, 우리는 비밀리에 ‘강 아래로 팔려서’ 지금 쯤 독특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아닌 어떤 복음주의자 교회 협회의 일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배교 그 이상으로 재림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고 온 백성을 범하는 짓이다.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 편지를 마치면서 앤드리어슨 목사는 하나님께서 “아담의 자연적 후손을 타락시키는 유전된 욕정과 오염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면제하셨다”는 “새로운 신학”은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을 무효화시킨다고 선언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이 계속 죄를 범치 않도록 해주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준 우리 중 하나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선처해주신 사기꾼이었으며 인간들처럼 물려받은 욕정에 시달리지 않았다. 사탄은 사람들이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거의 어려움이 없다. 카톨릭 교회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때가 되어 복음주의자들도 동의했으며, 1956년에 재림교회 지도자들도 이 견해를 채택했다. . . . 그들은 그것이 단지 의미상의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 . .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면제’된 그리스도라는 괴물 같은 교리에 항복하면서, 사단의 마지막 반대자가 항복한 것이다. 우리는 다시 기도한다.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백성을 구하소서.”

앤드리어슨 목사의 「교리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항의는 캘리포니아 주 로마 린다 지역의 한 위원회로부터 지지받았다. 그 지역의 교회들 대표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성명서를 작성하여 대총회에 제출하였다. [20] 이 성명서는 「교리에 대한 질문」이 “특정의 중요한 기본교리들과 우리 신앙의 다른 신조들을 호도하였다”라고 비판했다.

이 문서에서 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의 특정 진술과 가르침들은 우리 중 상당한 수의 사람들에 의해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사실, 반세기 전에 있었던 켈록 (J. H. Kellogg)의 범신론 논쟁 이래로 이 책의 출판 만큼 우리 교인들 사이에서 그와 같은 동요와 불화와 분열을 일으킨 것은 없었다고 우리는 확신하는 바이다.”

항의의 주요 포인트 중 하나는, 교단의 문헌이 일관되게 인성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유전의 거대한 법칙의 지배를 받아 타락한 죄 된 인성을 취했다고 말해왔는데 「교리에 대한 질문」은 이와 반대되는 견해를 취했다는 것이다. “이 영감의 글[Medical Ministry, 181]과 완전히 반대로 이 책은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인성을 취하셨다’고하며, ‘아담의 자연적 후손을 타락시키는 유전된 욕정과 오염으로부터 그리스도가 면제되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 . . 이것은 이른바 ‘복음주의자들’에게 선사한 가장 불행한 항복이며 그리스도인으로부터 완전히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 되신 구세주’를 빼앗는 일이다.” [21]

[20] 저자주: 이 성명서는 다음 대표자들의 서명과 함께 제출되었다: A. D. Armstrong, Frank L. Cameron, Edna E. Cameron, R. F. Cottrell, Florence Keller, M.D., Scott Donaldson, Claude E. Eldridge, Pearl Ferguson, N. M. Horsman, Orville W. Lewis, Sharon Y. Lewis, Daniel A. Mitchell, Harold N. Mozar, M.D., 0. S. Parrett, M.D., B. R. Spear, Claude Steen, M.D., Willa S. Steen, W. T. Weaver, Walter L. Webb, Harry G. Willis, and Thomas I. Zirkle, M.D.
[21] 역자주: 「의료선교(Medical Ministry)」 181페이지: “He took upon His sinless nature our sinful nature, that He might know how to succor those that are tempted.” (그 분은 당신의 죄 없는 본성 위에 우리의 죄 된 본성을 취하셨다. 그리하여 그분은 시험당하는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아셨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교리에 대한 질문」과 관련된 이슈들, 특히 그리스도와 성육신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는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1962년 앤드루스 대학교의 학생인 로버트 리 핸콕 (Robert Lee Hancock)은 “그리스도의 인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핸콕은 자신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된 결론을 내렸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구체적인 문제에 관해서, 이 연구서는 다음 사실을 밝혀냈다: (1) 초창기부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하나님께서 인성을 취했을 때 타락 이전의 완전하고 죄없는 인성이 아니라, 그분이 인간을 돕고자 세상에 오셨을 그 당시에 존재했던 타락하고 죄스럽고 불쾌하고 약화되고 퇴보한 인성을 취하셨다고 가르쳐 왔다. . . .  (2) 1940년 부터 1955년 사이의 15년 동안, 그리스도의 인성과 관련하여 사용된 ‘죄된’과 ‘타락한’이라는 단어가 교단 출판물에서 거의 혹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3) 1952년 이래로 ‘죄 없는 인성’, ‘타락하기 전의 아담의 본성’, 그리고 ‘더럽혀지지 않은 인성’과 같은 용어들이 이전 용어의 자리를 차지했다. . . . 이 연구의 결과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가르침이 바뀌었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의미상의 차이가 아니라 개념을 포함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근거를 제공한다.”

「리뷰」지의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들의 견해는 양분되었는데, 일부는 「교리에 대한 질문」에서 제시된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가르침에 우려를 표했고, 다른 이들은 그것을 지지했다. 최근의 한 편지는 부분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최근에 성육신 교리와 관련하여 분명하게 적그리스도의 편에 선 많은 사람과 팩스턴(G. Paxton)이 쓴  보고들을 읽었다.” 또 재림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사 중 한 사람이 작성한 편지가 1978년 2월 6일 우리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우리 사람들이 마틴과 반하우스와 가진 대화에서 선의를 가진 형제들 중 일부가,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육체로 태어났다는 개념을 내세우면서, 우리를 배신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SDA를 좀 더 유리한 견지에 두고자 그렇게 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것이 실수였다고 확신한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평신도들은 “오래된 견해”를 고수하는 것처럼 보이고 교단 사역자들은 “새로운 견해”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호주에서 오는 편지들은 특히 “새로운 견해”를 강하게 옹호하고 있으며,  SDA 신학교에서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모델 인간 예수 (Jesus the Model Man)”라는 제목의 우리 안식일 학교 교과에 대한 지지는 주로 “오래된 견해”를 옹호하는 교인들로부터 왔고, 반대 의견은 거의 전적으로 “새로운 견해”를 옹호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왔다.

「교리에 대한 질문」에 명시된 교단 신학의 가시적인 변화에 대한 큰 소요는 1960 년대 후반에 가라 앉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70 년대 초 프룸의 「숙명적인 운동(Movement of Destiny)」이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그 소요가 부활하였다.[22] 이 책은 1950 년대 후반에 불거졌던 모든 우려와 논쟁을 새롭게 들추어내었다. 이 책에 기술된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죄 된 그리스도의 본성’이라는 잘못된 개념은 1949 년에 개정된 「가정용 성경 봉독」에서 유감스러운 언급을 삭제함으로써 해결되었다”(465페이지)라는 프룸 목사의 글은 역사적인 견해를 고수했던 사람들을 언짢게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오래된 견해와 관련하여 사용된 “잘못된 개념”, “삭제”, “유감스러운 언급”, “확실한 오류”, 그리고 “오류적인 소수의 입장”과 같은 단어와 표현(427,428페이지)에 분개하였다. 그리고 「교리에 대한 질문」이 제작되는 과정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장과 신격과 속죄에 대한 두 장은 교회가 이 교리들을 변경했다는 비난에 더 신빙성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1888년 미니애폴리스 회의를 신중하게 연구하고 교회가 1888년의 기별을 완전히 받아들인 적이 없다고 믿은 윌랜드와 쇼트에게 공감대를 가졌던 사람들은, 윌랜드와 쇼트가 역사를 재구성했고, 기울어진 개념을 충족하고자 진리를 각색했으며, 역사적 사건들을 조작하였고, 음흉한 태도로 행동했으며, 윤리의식의 결여를 보여주었다는 프룸의 암시(364, 365페이지)에 분개하였다. 1888년 기별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으면, 교회가 “거짓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윌랜드와 쇼트의 비판에 새로운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하여튼 「교리에 대한 질문」에 대한 철저한 지지로 「숙명적인 운동」은 「교리에 대한 질문」을 재림 신조에 대한 공식 문서로 만들려는 지난 20년간의 노력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사실상 지난 20년 동안 재림교회로 개종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리에 대한 질문」이 재림 신조들을 정확히 기술하고 있으며 정통성을 시험 할 수 있는 권위적인 책으로 간주하고 있다. [23]

[22] 역자주: 이 책은 한국에서 「운명을 결정하는 대운동」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바 있다. 
[23] 역자주: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프룸을 포함한 일부 인사들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리에 대한 질문」은 재림교회의 역사를 다루는 학술적인 영역을 제외하고는 그외의 다른 영역에서는 실질적으로 사장된 셈이다. 조지 나이트는 2003년에 자신의 주석을 단 「교리에 대한 질문 주석판」을 다시 출간하였지만, 이 책도 일반 평신도 사이에서 그리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 이 책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들 (예를 들자면 데스몬드 포드 사건 등)에 대한 반사적인 결과로 1980년 회기중 대총회에서 27개 기본교리 신조 (후에 하나 더 추가되어 28개 신조)가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채택되었다.

우리는 어떠한 결과도 원인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 보고서를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안에서 특정 교리들에 대한 잠재적인 불안감과 교단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항상 존재하는 이유를 찾으면서 그 원인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로 추적된다고 말할 수 있다:

  1. 지도자들이 마틴-반하우스와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교인들과 충분한 소통을 하지 않은 점.
  2. 「미니스트리」지를 통해 속죄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재림교회의 가르침을 수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사들을 연재한 점.
  3. 이 두 가지 점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이 광적인 소수 분파나 무모하고 무책임한 소수 사람들만에 의해 견지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점.
  4.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오래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최대한 견제를 받을 것이란 시사를 한 점.
  5. 우리의 출판물이 모두 “새로운 견해”와 일치되도록 분명히 수정이 가해질 것이라고 한 점.
  6. 속죄와 성육신에 관한 엘렌 화잇의 진술들에서 서로 상충하는 듯이 보이는 글들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교회 안의 진지한 성경 연구자들에게 충분히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 점.
  7. 교회가 성서중심의 신학에서 조직신학의 규범으로 점차 교체되는 과도기에 있음을 교인들에게 솔직히 말하지 못한 점.
  8. 집필자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로 대총회의 전적인 지지와 함께 「교리에 대한 질문」을 출판한 점.
  9. 사적으로 논의되었던 신학적 문제들에 관하여 [공적인] 논의의 여지를 제공하지 않은 점.
  10. 「숙명적인 운동」을 대총회의 전적인 지지와 함께 출간하여 과거의 불안감과 논쟁거리를 다시 불러일으킨 점.

내 의견으로는, “이렇게 해서 우리가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다.” 

부록

그리스도께서 타락하고, 죄 된 (혹은 죄스러운 또는 죄로 기우는) 인간 본성 등을 취했다고 언급한 예언의 신 참고 문헌들:

  1. SDA Bible Commentary (SDA 성경주석), vol. 1, p. 1085 — fallen nature (타락한 본성)
  2. Spirit or Prophecy (예언의 신), vol. 2, p. 39 — nature of fallen man (타락한 인간의 본성)
  3. Early Writings (초기 문집), p. 150 — fallen nature (타락한 본성)
  4. Early Writings (초기 문집), p. 152 — fallen man’s nature (타락한 인간의 본성)
  5. Review and Herald (리뷰와 헤럴드), Dec. 15, 1896 — sinful nature (죄 된 본성)
  6. Selected Messages (가려 뽑은 기별), book 1, p. 256 — fallen condition (타락한 상태)
  7. Review and Herald (리뷰와 헤럴드), July 17, 1900 — offending nature (혐오스러운 본성)
  8. SDA Bible Commentary (SDA 성경주석), vol. 4, p. 1147 — fallen nature (타락한 본성)
  9. Medical Ministry (의료 선교), p. 181 — sinful nature (죄 된 본성)
  10. Signs of the Times (시조), Dec. J, 1902 — degenerate humanity (퇴보된 인류)
  11. W-106-1896 — likeness of sinful flesh (죄 된 육체의 모습)
  12. Desire of Ages (시대의 소망), p. 117 — degenerate humanity (퇴보된 인류)
  13. Desire of Ages (시대의 소망), p. 112 — fallen nature (타락한 본성)
  14. Special Instruction to the Review and Herald Office, and the Work in Battle Creek, May 26, 1896, p. 13 — fallen nature (타락한 본성)
  15. SDA Bible Commentary (SDA 성경주석), vol. 5, p. 1081 — nature of fallen man (타락한 인간의 본성)
  16. Letter (편지), 19, 1901 — nature of fallen race (타락한 인종의 본성)
  17. GC Bulletin (대총회 회보), April 23, 1901 — nature of fallen humanity (타락한 인류의 본성)
  18. Signs of the Times (시조), Sept. 3, 1902 — likeness of sinful flesh (죄있는 육신의 모양)
  19. Desire of Ages (시대의 소망), p. 49 — nature of humanity weakened by sin (죄로 약해진 인류의 본성)
  20. Desire of Ages (시대의 소망), p. .312 — likeness of sinful flesh (죄있는 육신의 모양)


케네스 우드 (KENNETH H. WOOD, 1917-2008) 박사는 중국 상하이에서 선교사 부모로부터 출생하였다. 일선 목사로 사역한 후 1966-1982 사이 우리 교회 기관지인 Adventist Review 의 편집자로 활약하였고 1980년 부터 작고하기까지 엘렌 화잇 유산 관리 위원회 이사장으로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