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종교자유에 관한 여러가지 이슈를 취급하는 격월간지인 리버티(LIBERTY) 잡지의 2006년 7/8월호에 실린 “Coercion or Conversion“이라는 케빈 폴슨 목사의 글이다. 이 잡지는 대총회의 종교자유부에서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로서 각계의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가들 및 법률 전문가들에게 분포되어지고 있다. 이 기사에서 폴슨 목사는 극우파 기독교 단체들에 의해 미국의 정교분리 원칙이 침해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복음주의파 기독교인들의 정치활동의 배경에 깔려있는 복음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또한 만연되고 있는 도덕성의 붕괴가 바로 그 복음주의파 기독교인들이 가진 잘못된 복음관에서 기인된 것임을 그는 지적하고 있다. 이 비교적 짧은 기사가 여러 재림성도들에게 일반 개신교회들의 정치적인 안목과 한쪽으로 기울어진 그들의 복음관 사이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제공하리라 생각된다.


1984년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기간 중 노트르담 대학교의 학생들에게 한 연설에서 마리오 쿠오모 뉴욕 주지사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이슈와 그 당시 가열되고 있던 소위 극우파 기독교인들의 정치활동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주지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자신들이 죄짓는 행위를 그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도덕적인 죄라고 믿는 것들을 세상 정부가 형사적인 범죄로 규정해 주도록 요청하고 있지나 않는가? 이 문제에 대한 실패는 가이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이 실패는 우리,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실패일 뿐이다.” [1]

매주 두 곳의 기독교 회중들 앞에게 성서적 도덕규범을 떠받치며 장려하려고 애쓰는 한 보수적인 기독교 목사인 필자에게 있어서 한 정치가가 던진 위의 질문은 감동과 동시에 일종의 동요감을 가져다주는 말이다.

세속화인가 위선인가?

극우파 기독교인들의 주된 주장은 아마 미국이 처해 있다고 보이는 세속화 현상에 관한 그들의 우려에서 기인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세속화라는 용어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정의들이 부여될 수 있겠지만, 세속화 현상을 종교의 기본요소들에 대한 공공연한 배척으로 우리가 이해한다면, 이 세속화라는 용어를 미합중국에 적용한다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생각된다.

5년 전 US News & World Report 잡지에서 주도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96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표하고 있었다.[2] 그리고 근간에 발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열 명중 네 명이 매주 적어도 한 번씩 교회나 유대회당에 참석하고 있음이 집계되었고[3], 66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한 달에 한번은 교회나 유대회당에 참석하고 있음이 또한 밝혀졌다.[4] 이들 중 한 여론조사는 또한 59퍼센트의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에 있어서 종교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함을 밝히고 있으며[5],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90퍼센트의 사람들이 그 어떤 종교단체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함을 보고하고 있는 바이다.[6] 더불어 이 여론조사들 중 가장 최근의 것인 2004년 12월에 실시된 뉴스위크지의 조사에 따르면, 84퍼센트의 미국인들이 자신들을 기독교인으로 표명하고 있으며, 82퍼센트가 예수님을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있고, 79퍼센트가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동시에 67퍼센트의 사람들이 신약성경에 기록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건으로 믿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7]

따라서 “기독교를 정부로 부터 분리시킨 최초의 국가가 이 세상 중 가장 종교적인 국가가 되었다”라고 보수 역사학자인 개리 윌즈씨가 평한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님을 우리가 알 수 있다.[8]

그런데 어찌하여 성서적 도덕규범이 지금 사방에서 무너지고 있는가? 문화적 보수주의자들, 특히 그들 중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이 모든 경향들에 대한 책임을 일반 방송매체와 특히 할리우드 영화 산업체에게 지우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다른 산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유흥산업도 “금을 가진 자가 모든 걸 좌우한다”라는 철칙에 준하여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객이 구입하기를 원하는 종목들을 상인들이 판매할 뿐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만일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미국인들의 대다수가 지금 당장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쓰레기 같은 부도덕한 영화들을 관람하기를 일말로 거부하게 된다면, 오늘날 흥행되는 영화들이 지금과는 아주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이지 않은가!

2004년 11월 28일에 방영된 NBC 방송의 “Meet the Press”라는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인 팀 루서트씨가 일련의 보수적인 기독교 목사들과 좌담회를 가졌는데, 그 때 그는 이 목사들에게 교외지역에 거주하는 부인들의 부도덕한 혼외정사를 묘사한 “무모한 가정주부들”이라는 연속극이 근본주의적 기독교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미 남중부의 성서지대(Bible Belt)에서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이 목사들이 왜 그러한지에 대한 별 그럴듯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나는 오래전인 1980년대에 열렸던 외설물에 대한 미즈 위원회(Meese Commission)에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법무장관이 출석하여 한 증언을 회상하게 되었다. 그가 말하기를,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80퍼센트에 해당하는 주민들이 보수적이며 교회에 출석하는 기독교인들인데 그와 동시에 노스캐롤라이나가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서 외설물을 판매하는 소매점들이 가장 많이 산재해 있는 주라고 증언하였던 것이다.[9] {*Liberty지 편집자 주: 우리가 이 사실을 재확인할 수 없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노스캐롤라이나 주 법무장관이 언급한 “외설물 판매소” 밖의 다른 통로를 통해 쉽게 구입되는 외설물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증언을 제공하면서 이 법무장관은 더불어 “그렇다면 이 외설물들의 수요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보수적인 교인들인가, 아니면 그 외의 20퍼센트에 속한 사람들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10] 그 때 같은 주에서 온 한 검사관이 “우리 노스캐롤라이나 주 사람들 사이에 통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 그건 우리가 술에 만취되어 갈지자로 걸으며 투표장에 갈 수 있는 한 맑은 정신으로 모두 투표를 던질 것이라는 속담이 있다”라고 그 질문에 짓궂은 말투로 응수하였던 것이다.[11]

이러한 모순이 참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참으로 비극적이며 동시에 경악스러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공생애중 나타난 바리새인들의 모습에서 목격된 바대로 위선은 종종 불관용의 쌍둥이 자매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중단치 못하는 죄들을 형사범죄화 해주기를 정부에다 바라는 기독교인들의 사고방식을 지탄하던 쿠오모 뉴욕 주지사의 말이 다시 생각나게 될 뿐이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생각을 정리해 보면서, 우리는 “우리 미국의 문제가 진정 세속화의 문제인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바이다.

무력한 은혜

전임 행정부의 대통령이 관련된 성 스캔들이 있었을 때, 뉴스위크 잡지의 종교 편집자인 케네스 우드워드씨는 그 전임 대통령의 신학적 양육을 검진한 “성, 죄, 그리고 구원”이라는 논설을 그 주간지에 개제한 적이 있다.[12] 주류적 개신교 신학의 전반에 가해지는 타격적인 논지를 함축하고 있는 이 논설이 개신교인들 사이에서 그리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되는데, 사실 그 논설은 널리 통용되고 있는 은혜와 구원에 관한 복음주의파 교리에 대해 아주 지당하고도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논설에서 일반적 개신교의 은혜와 구원의 교리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우드워드씨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번 거듭난 후에는 그의 구원이 확정되었으며, 그 후에 범하는 죄가 (그 죄를 계속적으로 짓더라도) 그의 영혼이 하늘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을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믿으며 성장했다고 서술하였다.[13] 그러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인생관은 토요일 밤중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주일 아침 교회에서 형성되었다”는 결론으로 우드워드씨는 그의 논설을 종결하였다.[14]

어처구니없이 기형적인 모순이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간과된 한 아이러니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클린턴 전임 대통령과 그의 정치적 피흘림을 추구하던 극보수 복음주의파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신학사상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을 추구하던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며, 순종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구원이 주어진다는 신학사상을 견지한 주류파에 속한 “은혜 중심적”인 복음주의파 개신교인들이었던 바이다. 그런데, 그들의 신학이 가르치는 바대로, 만일 이러한 죄들이 전임 대통령의 하늘 입장권을 박탈하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그러한 죄 때문에 그의 대통령직이 박탈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단 말인가?

이러한 무력한 은혜의 교리가 불러오는 딜레마는 한 베스트셀러 기독교 저자의 인기 있는 책에 또한 너무나 적나라하게 잘 나타나 있다. 그 책의 한 부분에서 이 저자는 극우파 기독교인들의 방법론에 대해 아주 적절한 비평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음을 본다:

“국가 체제는 항상 예수님의 계명이 지닌 절대적인 본질을 희석하여 그 계명들을 은혜의 복음이라는 개념과는 상반된 일종의 형식적 도덕법칙으로 변질시켜 버린다. . . .하지만 신약성경은 먼저 우리의 거듭남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런 다음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명하고 있다. 산상보훈을 읽으며 이 세상의 그 어떤 정부가 그러한 법들을 과연 제정할 수 있을까 한번 상상해 보기 바란다.”[15]

지극히 옳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동일한 저자가 그 책의 다른 부분들에서 예수님께서 명한 그 온전함(perfection), 즉 거듭남을 통하여 성령의 능력에 의해 가능하다고 성경말씀이 말한 그 온전함 (롬 8:13, 고후 7:1, 빌 4:13, 살전 5:23) 을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16] 불행하게도 성경말씀을 경외한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 성경의 가르침으로 부터 분명히 벗어나간 이러한 논조를 신봉하여 왔다. 그 결과, 이러한 신조를 견지한 사람들은 결국 그들 자신에게서 끈질기게 표출되는 도덕적 결함들에 대해 일말의 안위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러한 사고방식이 우리 현대 문화의 넓은 차원으로 확대 적용됨으로 해서 당연히 그 결과로 도덕적 문란함이 도처에 횡행하여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과학 및 통신 기술의 발달과 점점 더 빨라진 템포의 현대 생활양식이 한 때 안전하게 여겨졌던 교회라는 소문화권 안으로 죄악의 물결이 침투되도록 조장하였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이 잘못된 죄악의 물결로 부터 자신들과 자신들의 가족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한 방편으로 궁지에 몰린 코브라가 맹렬하게 공격을 감행하듯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관심을 정치적 활동으로 돌리게 된 것이다. 사실 그들의 의도는 결코 악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최선을 원하는 것이 그들의 동기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신앙의 중심을 이루는 “복음”이 오랜 전에 이미 지금 그들이 반발하고 있는 죄악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 주었으며,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도 그 구성원들이 또한 그들과 비슷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죄에 대한 타협을 반영하고 있게 된 것임을 그들이 자각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베스트셀러 저자는 “의로움을 입은 자”와 “정죄된 자”를 구별하는 범주를 “죄를 인정하는 죄인” 과 “죄를 부인하는 죄인” 으로 대체시키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17] 슬프게도 성경의 요한 계시록의 말씀 (2;7, 11, 17, 26; 3:5, 12, 21; 12:11ㅣ 21:7) 과는 달리 이 저자는 “죄를 극복한 죄인”의 범주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의 책 다른 부분에서 또 이 저자는 과거에 기독교인들이 정치의 매력에 빠져 “권력의 추구로 은혜를 져버리게 되었다”고 올바른 비평을 제시하고 있기도 한다.[18] 그러나 그러한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듯이 보이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기독교가 가르치는 은혜에서 죄를 이기는 능력을 제거하게 될 때, 세속적인 권력의 추구가 반드시 그 은혜를 대체시키고 만다는 사실인 것이다.

강제인가 거듭남인가?

죄와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 10:4,5)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선택하여 우리 삶속에 영접할 때 그 능력이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자명한 성경말씀을 읽게 된다. 이 하나님의 능력이 부재할 때, 인간들이 애지중지하는 끈질긴 죄들에 대해 어느 정도의 용납됨이 허용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는 죄의 파괴적인 결과가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정 및 사회에 표출될 때,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진실성이 세상 앞에서 시험받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럴 때, 이들은 영적인 병기가 아닌 육적인 무기로 이 죄악들을 물리치고자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파산 상태는 바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딤후 3:5) 것으로 성경에서 묘사된 마지막 시대의 상태인 그들이 믿고 가르친 “무력한 은혜”의 소산일 뿐이다. 교회가 이 경건의 능력인 하나님의 권능이 자신에게 부재함을 발견하면서 그 어떤 다른 종류의 힘을 도입하게 될 때, 바로 강제성의 권력(coercion)이 자발적 거듭남(conversion)의 위치를 찬탈하게 되고마는 것이다.

각 주

[1] “Abortion Not a Failure of Government, Cuomo Says,” Los Angeles Times, Sept. 13, 1984, p. A1.

[2] “Divining the God Factor,” U.S. News & World Report, Oct. 23, 2000, p. 22.

[3] “Hollywood vs. America,” interview with Michael Medved, Christianity Today, March 8, 1993, pp. 23‐25; survey reported by Bruce Morton on CNN’s Inside Politics, Feb. 27, 2000.

[4] Karen S. Petersen, “Poll: 59% Call Religion Important,” USA Today, April 1‐3, 1994, p. 1A.

[5] Ibid.

[6] Survey conducted by City University of New York, reported in the San Bernardino Sun, April 10, 1991, pp. A1, A14.

[7] Newsweek, Dec. 13, 2004, p. 51.

[8] Garry Wills, quoted by Philip Yancey in, What’s So Amazing About Grace? (Grand Rapids, Mich.: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p. 235.

[9] Philip Mobile and Eric Nadle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vs. Sex: How the Meese Commission Lied About Pornography (New York: Minotaur Press Ltd., 1986), p. 58.

[10] Ibid.

[11] Ibid.

[12] Kenneth L. Woodward, “Sex, Sin, and Salvation,” Newsweek, Nov. 2, 1998, p. 37.

[13] Ibid.

[14] Ibid.

[15] Philip Yancey, What’s So Amazing About Grace?, pp. 250, 251.

[16] Ibid, pp. 203, 204, 210, 273.

[17] Ibid, p. 82.

[18] Ibid, p. 234.


케빈 폴슨(KEVIN PAULSON) 목사는 퍼시픽 유니온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로마린다 대학원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학위, 앤드류스 신학원에서 목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뉴욕합회에서 성경교사, 전도목사, 목사로 목회에 역임한 바 있다. 지금은 재림교회의 종교자유 전문지 리버티(Liberty) 등에 기고하는 작가로 활동하며 미시간의 베리언 스프링즈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