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로 기우는 타락한 본성을 지니게 된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삼위일체의 하나님 중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제물로 바치셨다. 우리는 그래서 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구주가 필요하다” 혹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 라고 말할 때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구주” 혹은 “은혜”의 양 측면을 간과하고 무의식적으로 오직 한가지에만 우리 생각을 집착하는 과오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을 구원해 주는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광명히 드러난 구주의 은혜에는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권능과 더불어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치 않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권능이 또한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음 한 성경절이 “은혜”에 이러한 양면적 기능이 있음을 잘 나타내 준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디도서 2:11-14)

또한 이 점은 죄를 범하지 않은 천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지에 대해 언급한 엘렌 화잇의 상반되는 듯이 보이는 두 글을 주위 문맥과 함께 고려해 보면 뚜렷해 진다.

“하나님께서는 죄없는 천사들을 사랑하시는데, 그들은 그분의 사업을 하며 당신의 모든 명령에 순종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주지 않으신다. 이 하늘 천사들은 은혜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이것을 결코 필요로 해본 적이 없는데, 이는 그들이 결코 죄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In Heavenly Places, Amazing Grace, 34페이지)

여기서 증언 말씀이 기록한 바는 죄를 범한 적이 없는 하늘 천사들에게는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 은혜의 기능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엘렌 화잇은 더불어 은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다른 기능을 언급하고 있다.

“천사들은 그리스도께 존경과 영광을 돌리는데, 그 이유는 그들도 하나님 아들의 십자가 고난을 바라봄 없이는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효능을 통해서만 하늘의 천사들이 배교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십자가 없이는 그 천사들도 사단이 타락하기 전의 천사들 보다 더 안전하지 않다. . .이 땅이나 하늘에서 범죄로부터 안전을 바라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 보아야만 한다. 구원의 계획은. . .죄를 범치 않은 세상들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도록 영원한 보호막을 제공한다. (영문 시조, 1889년 12월 30일)

즉, 죄를 범치 않고 승리하도록 권능을 주는 십자가 은혜의 기능은 죄를 범한 적이 없는 천사들에게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시 요약하자면, 하늘 천사들은 죄를 범한 적이 없기에 “용서해 주는 십자가의 은혜”는 필요치 않지만, 그들도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죄를 이기는 능력을 주는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와 같이 구원과 관련된 “구주”와 “은혜”에 대한 의미를 올바로 인식한다면, 다음과 같은 한 목회자의 주장에는 “왜 우리가 구주(은혜)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총체적이고 균형진 이해가 부재함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죄인이 아닌 사람은 구주가 필요하지 않다. 만일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 구주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그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죄인이라는 말이다. 죄인이 아니면 구주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갓 태어나서 자신들의 의지 활용으로 선택하여 범죄 하기 전까지는 아기들은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하니, 그렇다면 그 아기들은 예수님이 구주로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 . .금방 태어난 아기들에게 정죄가 없다면. . .아기들은 예수가 필요 없이 의인이 된 자들이든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자동적으로 의인이 된 자들이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건, 구원을 위한 구주 혹은 은혜의 두 가지 측면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체험하신 이 땅에서의 삶과 죽으심으로 가능해진 구원의 계획에는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권능과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치 않고 살 수 있게 해주는 권능이 또한 있음은 성경절과 증언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누가 죄를 범하면” (요일 2:1)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용서함이 제공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용서함이 필요치 않다는 말은 구주가 필요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구주의 역할은 죄를 사해 주시는 역할과 더불어 그 죄를 이기는 능력을 부여하시는 역할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생에서 타락된 육적인 본성을 지니고 사는 한, 우리를 실족하지 않게 도와 주시는 이 구주의 능력은 우리에게 계속하여 절실히 필요되기에, 과거에 죄를 지어 죄인이었는지 몰라도 회개하여 이제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더라도, 그 구주의 구원하시는 은혜의 능력이 우리는 물론 죄를 범한 적이 없는 천사들에게도 계속 필요됨은 당연한 것이다.

내가 재림교인이 된 후에 엘렌 화잇의 글들에서 감명을 받고 그녀를 하나님의 기별자로 확신하게 된 이유 증 하나는 바로 십자가 은혜에 대한 이러한 포괄적인 이해를 그녀의 글을 통해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죄론의 신학체계에 기반을 둔 장로교 신앙은, 우리를 죄 가운데 두지 않고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담긴, 이러한 십자가 은혜의 진리를 나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 알게 모르게 원죄론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서 죄에 대한 승리가 가능하다는 재림신앙의 가르침을 완전주의로 폄하하는 일부 재림교회 목사와 신학자들이여, 혼탁하고 저속한 가짜 복음의 범람 가운데서 극심한 마음의 번민을 느끼는 영혼들이 이러한 십자가의 은혜를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경천동지할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지 여러분들은 알고 있는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21)


김정대(JUSTIN KIM) 교우는 뉴저지 포트리 교회에 출석하는 평신도로 현재 재림 신앙과 신학 사이트의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