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과 완전주의에 대한 다음 요약은 허버트 더글라스 저 「1957 역사의 목격자가 말하는 QOD 사건의 진실」 부록 F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책은 최근에 재림 신앙과 신학 사이트의 장윤형 부편집인에 의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이 책의 구입 문의는 본 사이트의 CONTACT 페이지를 통해 문의하시면 된다.


완전이란, 이 책에서 언급된대로 예수님의 삶을 점점 더 반사하는 사람들의 동적인 삶의 패턴을 말하는데 그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진실된 사랑을 보여주는 신뢰할만한 모본이 된다. 그들은 반역적이고 죗된 욕망들에 굴복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으며, 미끄러져 넘어지더라도 뉘우치며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와 능력을 제공하시는 주님의 자비로우신 팔에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삶의 패턴을 성경에서는 “성숙”,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 (엡 4:13), 그리고 “의”라는 용어로 묘사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는 완전이라는 용어는 우리의 완전의 모본이신 예수께서 유혹과 방종에 면제되신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에게 죄의 유혹이나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또한 그리스도 앞에 놓여진 완전은 병이 전혀 생기지 않거나 정신적 실수들이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공정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이가 많거나 혹은 병들거나 혹은 다른 재난들로 그들의 정신적 능력들이 심각하게 손상되었을 때 “걸맞지 않”게 하는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

여기서 완전이란 용어는 다음의 글귀에서 처럼 같은 문맥에서 사용되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완전하기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결코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으로 악으로 기울려는 우리의 성벽(tendencies)에 맞추기 위하여 의의 표준을 낮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품성의 불완전함(imperfection of character)이 죄가 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 . . 하늘 천사들은 단호한 믿음을 가지고 그들의 행실에까지 완전함을 나타낼 그러한 품성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협력할 것이다.” (「실물교훈」 330-332쪽)

이 용어와 연관된 절박함이 다음과 같은 글귀에 함축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품성(character)이 그분의 백성들 속에 완전하게 재현될 때 그분은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이다.” (「실물교훈」 69쪽)

“하나님의 바로 그 형상이 인간에게 재현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명예, 그리스도의 명예는 당신 백성의 품성(character)을 온전케 하는것과 관련되어 있다.” (「시대의 소망」 671쪽)

이미 열거한 인용문들 속에서 이해되었듯이, 이러한 완전(perfection)은 진실로 중요한 신학적 및 실용적인 차이점들에 있어서 완전주의(perfectionism)라는 개념과 대조된다.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지점을 강조하는 완전주의라는 후자의 용어는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그리스의 철학에서 파생된 것이다. 성서적 의미의 완전은 단순히 ‘그리스도와 닮은 것’(Christ-likeness)인데, 이는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것과 같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예수께서 나타내셨던 품성의 특질들과 하나로 보는 것이다. 그와 같은 관계는 계시록 3장 21절의 성취로 이끈다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비록 ‘완전’이라는 용어가 영어성경에서 자주 그와같이 번역되는 단어가 아니지만 그 도덕적인 완전의 개념 (즉, 도덕적인 나약함[죄]들을 극복하는 계속 증가되는 습관들과 함께 성령으로 능력받아 성숙해지는 삶, 그리고 성령의 열매가 계속적으로 더 많이 익어가는 삶을 사는 것)은 구약과 신약 그리고 엘렌 화잇의 글 모두에서 지지를 받는 유일한 목표인 것이다. 그 목표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다.

성경의 저자들은 ‘방향’을 강조한 것이었다. 완전으로의 추구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창조주를 더 완전하게 아는 지식에서 항상 자라나며 우리의 창조주를 더 완전하게 반사하는 목표에 항상 가까워지는 것이다. 다른 말로 “끝나는 지점이 없다”는 것이고,  “완전으로의 끊임없는 추구” 라는 렉서스 자동차 광고의 적절한 모토와 같은 의미다. 내 컴퓨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완전을 추구하면서도 우수함을 받아들이라.”

한 가지 주의할 점: 개인적인 완전을 자신들의 삶에서 최우선적인 목표로 집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자신들의 최우선의 관심으로 삼는 사람들보다 그 완전을 덜 경험하기가 쉽다. [1]

성경의 저자들과 엘렌 화잇이 말하는 완전의 개념이 무엇인지 옳게 알려고 할 때 (완전이란 용어가 실제로 사용되었던 아니되었던간에) 기본적인 해석학적 원칙에 따르는 것은 항상 필수적인 일이다. 그 원칙은 문맥에서 의미를 찾도록 하라는 것이다.

각 주

[1] 나는 이 문제에 관해 데이빗 라슨(David Larson)에게 배웠다.


허버트 더글라스 (HERBERT DOUGLASS, 1927-2014) 박사는 메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나 15세에 장막전도회를 통해 재림교인이 되었고, 그 후 부모님과 네 동생들을 신앙으로 인도하였다. 에틀랜틱 유니온 대학(AUC)을 졸업하고 1947년에 목사가 된 후 1953년에 퍼시픽 유니언 대학(PUC)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4년에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AUC에서 교무처장과 총장을 역임하였다. 1970년 리뷰와 헤럴드지 부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주님의 메신저」와 같은 여러 중요한 서적들을 집필하였다. 87세의 일기로 주님 안에 잠들기까지 재림신앙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헌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