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재림 교인들은 우리 재림 교회가 앞으로 도래할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이 세상을 인도하는데 분명 선봉적인 임무를 담당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이 사실일까? 이 연구 논문의 목적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하나님의 기별을 재림 교회에 준 그 분의 기별과 비교해 보는데 있다. 그리고 재림 교회로 하여금 그 잠재능력을 발휘하여 남은 무리로서의 부여된 사명을 달성하도록 하는 유일한 기별이 있다면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곧 오실 것이라고 믿는가? 바로 이 질문이 1950년에 재림 교인들에게 던져졌었다. 1910년에도 또 1890년에도 이 질문이 제기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1844년 밀러 재림 운동에 가담했던 이들에게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는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도 똑 같은 질문을 하면서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바이다. 불행하게도 무언가 잘못 진행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지금부터 50년 후 우리의 자녀들과 손자들이 이 똑 같은 질문을 되풀이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한 일이 재현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정말 곧 오신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충격적인 사실은 예수님이 곧 오신다는 보장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곧 오시지 않을지도 모르기에 나는 주님께서 다음 10년 혹은 20년 안에 확실히 오신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자신이 없다.
요한 계시록 7:1-3절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 계시록 7:1-3)
지금 네 천사가 오랫동안 파멸의 바람을 붙잡아 이 세상에 불지 못하게 막아 오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 치시는 일이 마쳐질 때 까지 이 바람을 막도록 특별히 명함을 받았는데, 이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말해 준다. 먼저, 하나님의 인 치시는 일이 아직 마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앞으로 수십년이 걸리더라도 하나님의 인 치시는 일이 마쳐질 때까지는 우리가 이 세상의 고통이 끝남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당신은 왜 예수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보장이 없는지 알 수 있는가?
재림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뜻
예수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보장이 없다고 역설한 본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한가지 추가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제 예수님께서 정말 속히 오실 가능성이 아주 많음을 본인이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세상과 교회안의 사건들을 임박하는 클라이맥스로 향하여 움직이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신과 함께 동행 하는지를 주시하며 기다리시는 특정한 시기들이 있었던 것 같다.
1844년에 하나님은 밀러의 재림 운동을 진전시키셨는데, 그에 뒤 따른 대실망후에 당신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단결하였더라면 하나님의 인 치시는 일은 생각보다 일찍 마쳐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실망후 밀러의 재림 운동은 분열의 아픔을 겪었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 치시는 일을 마칠 수가 없었다.
그 후, 모든 일은 40여년 동안 정체 상태에 처해 있다가,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교회안의 일들에 역사하심으로 1888년 당신의 백성들에게 또 다른 하나의 계기를 주셨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비전을 가지고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기를 진지하게 바라고 있는지 기대하며 주시하셨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이런 바램은 또 다시 좌절당했는데, 이번에는 이기적이며 남의 허물 찾아내기를 좋아하고 권력을 탐내는 재림 교인들에 의해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지금까지 90년 이상동안 또 다른 정체 상태를 경험해 왔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일을 마치시기 위해 세상 사건들을 다시 한번 역사하셔서 인간 역사가운데 자주 볼 수 없었던 그 어떤 분수령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있는 것 같다. 정말 또 다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영생의 비전을 가지고 이 세상에 들어온 죄의 문제를 종결짓는데 함께 참여하기를 바라시고 계심이 분명하다. 그 백성들이 이번에는 성공할 것인가? 우리가 이번에는 정말 그 일을 완수할 수 있을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 (Seventh-day Adventists) 이라는 우리의 이름에 우리가 정말 진실 되기로 작정한다면, 이 지긋 지긋한 죄의 역사는 곧 종결되고 말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계속 잠자는 상태에서 깨어나지 않고 우리의 아름다운 교회 건물들과 아주 좋은 오르간들과 북미주 밖의 타 지역들에서 생기는 침례자 숫자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자화자찬하기에만 여념이 없다면, 이 결정적인 계기는 또 다시 이전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나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낙망한 채 무덤으로 향하겠고, 이 지치고 낡아빠진 세상은 생존을 위해 계속 몸부림치며 연명해 나갈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
옛날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처지가 어려울 때 마다 자주 인용하기를 즐겨하던 그들에게는 귀한 보화 같은 하나님의 말씀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예레미야 31:35-37의 말씀이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31:35-37) 그리고 계속하여 40절에서 예루살렘 성을 지칭하는 듯한 도성이 “영영히 다시는 뽑히거나 전복되지 아니하리라” 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 자주 떠올리곤 했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에 존재하는 한 이스라엘 족속이 그의 택하신 나라로 남아 있을 것임을 유대 백성들에게 말하셨고, 아무도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 족속들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됨에서 결코 때어 버리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엘렌 화잇은 이 성결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고 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적용시켰다. 스스로 의기양양하여 하나님께서 너무나 큰 은혜와 자비를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죄악들과 불법이 그들 중에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의 선호하는 백성으로 보존하실 것이며 특별한 축복을 그들에게 계속 쏟아 부으실 것이라고 자부하였다. 각 시대 마다 하나님 백성들이 이러한 사고방식에 빠질 위험이 존재해 왔는데, 세상의 마지막을 사는 백성들에게 이러한 위험이 특별히 더 존재한다. . . .만약 그들이 유대 백성들처럼 자신들의 부패함에 눈을 감아 버리고 자신들의 길을 선택하게 되면, 주님은 그들을 자기들의 어두워지고 강팍해진 마음에 버려두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시는 것들을 분별치 못하게 하실 것이다.” (구속 사업, 1권 38-39페이지)
유대인들은 예레미야서에서 방금 읽은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 말씀에 의지하여 자기 족속이 영원히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우리 중 많은 이들도 이 처럼 “교회가 마치 쓰러질 것처럼 보일 것이나 교회는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가려 뽑은 기별 2권 380페이지) 라는 영감의 글을 읽을 때, 우리 재림 교회가 마지막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것으로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대 민족이나 우리 재림 교인들 모두가 같은 예레미야서에 기록되어 있는 다음의 또 다른 중요한 원칙을 혹시나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사숙고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케 하리라 한 선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예레미야 18:9.10)
하나님께서 한 개인이나 한 민족에게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관계나 그들의 미래에 관하여 주신 약속은 항상 당신의 공표된 뜻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려있는 조건부적인 것이다. 모세는 이 점을 신명기 28장에서 다음과 같이 상세히 설명하였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1‐2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9절)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3절)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15절)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공구와 견책을 내리사 망하여 속히 파멸케 하실 것이며” (20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네게 명하신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너를 따르고 네게 미쳐서 필경 너를 멸하리니” (45절)
이 처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들을 완악하게 불순종하게 되면 그들이 큰 파멸의 국면에 처할 것임을 준엄하게 경고하였다. 엘렌 화잇은 모세의 경고에 담긴 원칙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과 경고는 둘 다 조건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 전도 695페이지) 지금 우리 재림 교인들이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중요한 원칙을 망각할 위험에 처해 있음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경고
재림 교인들 사이에 그렇게 잘 읽혀지지 않고 있는 영감의 말씀들을 우리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상태를 생각할 때 슬픔으로 충만해 진다. . . .우리 자신의 계속적인 배교의 행동이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켰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견해는 교회가 번영하고 있다는 것과 교회의 모든 영역에는 평안과 영적 번영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 지도자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서 돌아섰고 꾸준히 애굽을 향하여 퇴각하고 있다.” (교회 증언 5권 217페이지) “잘못된 경영과 계산 착오 때문에 온 몸이 병들었다.” (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397페이지) “어떤 세력이 우리들을 영원한 바위에 정착시키는 닻의 줄을 끊어버려서 우리는 항해도나 나침반 없이 바다로 표류하고 있는 지경이다.” (리뷰와 헤랄드, 1888년 7월 24일) “그대들은 고대 이스라엘이 따랐던 것과 동일한 길을 따르고 있다. . . .빛을 따르기를 등한시하기 때문에, 그대들은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선고하신 유대인들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것이다.” (교회 증언 75-76페이지)
“교회가 자신의 배도로 지금 영향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는 한 그는 자기 스스로를 멸시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교회 증언 8권 250페이지)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일을 죄스러울 정도로 등한히 했기 때문에 그대들이 흑암 속에 덮여 있는 사실을 말하기란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대들이 오늘날 빛을 깨닫지 못함으로 순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정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들이 품어 온 의심과, 하나님의 요구에 유의하지 않은 그대들의 등한이 지각을 너무도 눈멀게 했으므로 지금은 흑암이 그대들에게 빛이 되고, 빛은 흑암이 되어 있다.” (교회 증언 5권 71페이지)
“오, 우리에게 너무나 큰 특권이 부여되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과거에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이 그들에게 주어진 빛 가운데로 행치 않음으로 해서 그들을 간과치 않으셨다면, 하물며 이 세상에 전해질 가장 고상한 진리를 알게 되고 위탁 받도록 하늘의 빛으로 축복하신 우리가 그 빛 가운데로 행치 않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간과하실 수 있겠는가? . . . .내부적인 부패는 예루살렘에 내려졌던 것처럼 하나님의 규탄하심을 이 백성들에게 불러올 것이다. . . .형제들이여,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것들을 알지 못한다. . . .노아 시대의 세상, 소돔과 고모라와 그리고 고대 예루살렘위로 하나님의 징벌을 초래한 죄들을 우리가 범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일하실 것이다.” (버틀러 목사와 하스켈 목사에게 보낸 편지, 1886년 12월 8일)
“우리의 구주께서 유대인들에게 오셨던 대로 지금 오신다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겠는가?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신 것과 동일하게 우리를 취급하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리뷰와 헤랄드, 2권 308페이지) “예루살렘은 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빛 가운데서 걸어가기를 거절할 때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표본이다. . . . 이것은 쓸데없는 이야기가 아니고 진리이다.” (교회 증언 8권 67,68페이지) “우리가 만일 그들의 범죄의 본을 따르고 하나님을 떠나면 분명히 그들처럼 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교회 증언 1권 608,609페이지) “교회가 교만하고 오만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분의 능력을 높이지 않게 되면 그 교회는 분명히 주께 버림을 받고, 땅으로 떨어져 내리게 될 것이다. 한 백성이 부와 지능과 지식과, 또한 그리스도 외의 어떤 것에 영광을 돌리게 되면 그들은 미구에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교회 증언 8권 127페이지)
이 권면들은 정말 우리로 하여금 번쩍 정신을 차리게 하는 영감의 말씀들이다. 예언의 조건부적인 원칙이 고대 이스라엘에게 적용된 것처럼 지금의 우리에게도 똑 같이 적용됨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지금 또한 시험되고 있는 것이다. 순종함으로 하나님 언약의 모든 축복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불순종함으로 하나님 언약의 약속 테두리 밖에 우리 자신을 놓아 둘 것인가?
환란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배는 바로 우리 개개인들이지, 붙잡고 있으면 우리를 날라다 줄 우리 밖에 존재하는 그 어떤 개체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전력을 다해 이 위기의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배우고 그 뜻대로 살아갈 때에만 재림 신앙의 배가 환란을 무사히 통과해 나갈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이 재림 교회가 어떻게 될지를 확정지을 것이란 말이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해 혹시 독자들이 품게 될지도 모를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한가지 언급하고 지나갈 필요가 있겠다. 본인은 여기서 조직된 교회체계로 부터 우리 자신들을 분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라고 시사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반대로 오히려 본인이 염려하는 바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모든 백성들이 교회로 부터 떠나가게 되면 교회는 정말 무너지고 말 것이며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속히 재촉할 수 있는 그 찬란한 기회를 그야 말로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실로 크게 낙담하면서 우리의 생애를 마치게 되는 슬픈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본인이 여기서 역설하고자 하는 바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재림 교회가 자동적으로 환란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것이고 우리도 그 교회에 매달려 있기만 하면 무사히 통과할 것이라는 지나친 안일무사주의적 착각을 우리가 결코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희망은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한 기도와 하나님 말씀의 연구에 있다고 본인은 말하고 싶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러면 어떻게 하여 우리가 분명히 유대인들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남은 자손으로서의 우리 위치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들이 그 환란의 경로를 무사히 통과하여 가까운 시기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고통을 종결하시도록 할 수 있을까? 이런 점들을 생각할 때, 본인이 제안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과거를 무시하며 이 교회가 과거에 저질은 실수들이 다시는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눈먼 상태에 결코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을 거역하는 인간의 역량을 극적으로 보여준 예들이 과거에 있었다.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의 마지막 남은 무리가 될 최소한의 기회라도 가지려 한다면, 1888년과 1900년 사이에 벌어졌던 이 사건들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이해를 구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그 기간이야말로 이 세상 역사가운데서 우리가 하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가장 최근의 기회가 주어졌던 때였는데, 왜 그 기회를 포착하지 못했는지 우리는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은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이 글을 읽는 재림 성도들의 기도와 연구의 우선적 대상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1888년 기별에 대해 예언의 신은 어떠한 해명을 내렸는가?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와그너와 존스 목사를 통해 그분의 백성들에게 지극히 소중한 기별을 보내셨다.” (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91페이지) “이 기별은, 그 특성이 올바로 이해되고 성령의 감동 안에서 전파될 때, 이 세상을 그 영광으로 환하게 비출 것이다.” (원고 15, 1888) 화잇 부인이 여기서 1888년 기별에 대해 설명하면서, 세째 천사의 기별 선포와 관련된 큰 소리 외침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1888년의 기별을 통해 세상을 향한 마지막 경고를 선포할 당신의 백성들을 예비하시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가?
“사단은 반대하는 정신을 자극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시고자 하신 특별하신 능력을 우리 신자들에게서 빼앗는 데 성공하였다. . . .진리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비출 빛이 거절당하였으며 우리 형제들 스스로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 세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말았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234,235) 다시 말해 얼버무림과 시기심과 공개적인 반대로 인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100여년간 미루어 버린 꼴이 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은 존스 형제와 와그너 형제에게 이 백성에게 전할 기별을 주셨다. . . .이 두 형제들에 의해 전해진 기별을 거부할 때, 그대들은 이 기별을 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이다” (서신 51-A, 1895) 라고 경고한 엘렌 화잇은 1888년 미네아폴리스의 회의 당시 맨 앞줄에 앉아서 이 두 목사들의 기별을 경청했는데, 그 때 그녀는 “아멘, 이들의 기별에는 참으로 많은 빛들이 있다” 고 누누이 언급했었다. 그리고 심지어 화잇 부인은 와그너 박사가 자신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전하고 있다고 한 때 말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와서 우리 재림 교회가 이 1888년 기별을 궁극적으로 수락했음을 입증코자 하는 한 큰 시도가 일부층에 의해 꾀해진 적이 있는데, 이들에 의하면 그 당시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1888년의 기별을 거부했지만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 기별을 받아들였고 이 반대자들조차 후에 회개하고 그 기별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 교회는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1888년 기별을 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 기별을 그 이후 우리가 계속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내재한다. 첫째로, 우리가 이 기별을 받아들였다면 우리는 벌써 하늘나라에 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아직도 머물러 있는 우리의 존재는 아직도 우리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둘째로, 역사적인 기록은 1888년이 지난 훨씬 후에도 그 기별에 대한 거부가 계속적으로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에 반해 오히려 내가 믿기로는, 교회차원에서 우리가 1888년 이후 지금까지 이 1888년 기별을 제대로 이해하며 가르치지도 않았고 그 기별대로 살아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한편으로는 율법주의 다른편 으로는 뻔뻔스러운 불의를 의로 외치는 가짜 복음의 올무에 빠져 있었다고 생각된다.
우리 교회가 1888년 기별을 수락했다는 주장의 왜곡성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있는데, 대총회장을 역임했던 다니엘스 (A. G. Daniells) 목사는 그의 저서에서 1888년 기별에 대해 1926년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적었다: “그 속에 담겨있는 측정할 수 없이 깊은 축복이 교회에 전해졌어야 했는데, 그 기별이 받아들여지지도 선포되지도 자유롭게 허용되지도 않았다.” (Christ Our Righteousness, 47페이지) 그리고 엘렌 화잇은 1898년경에도 1888년때 제시되었던 빛의 거부와 완강한 반대와 분열에 대해 언급했으며, 1902년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미네아폴리스 총회 때 겪었던 그 혹독한 경험은 현대 진리를 믿는 신자들의 역사상 가장 슬픈 사건 중 하나였음이 나에게 제시되었다.” (서신 179, 1902) 또 화잇 부인의 아들 윌리 화잇 (W. C. White) 도 그 사건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그 당시 지도자들의 불만 중 가장 큰 특징은, 화잇 부인이 그 때 제시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기별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서 그녀가 그 지도자들의 견해에 반대하여 와그너와 존스 형제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둣이 보였기 때문에, 그들의 불만이 화잇 부인의 증거들조차 거부하는 정신으로 까지 치닫게 되었다.” (A. V. Olson, Thirteen Crisis Years, 332페이지) 이렇게 볼 때, 현재 전염병처럼 퍼져있는 화잇 부인의 글들을 외면하거나 공격하는 현상이 1888년 직후에 있었던 정신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 1901년 엘렌 화잇이 기록한 다음의 글에 잘 나타나 있는 것 같다: “정말 많은 것들에 대한 증언을 계속 해 왔지만 이런 것들이 하나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입으로는 그 증언을 받아들인다고 공언하면서도 하나도 변화됨이 없이 해오던 행습을 그대로 계속하기만 한다.” (Talk in Battle Creek College Libray, 1091년 4월 1일) 믿는다고 공언하지만 변화되지 않는 상태는 천년이 가더라도 결코 하나님의 사업을 마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바로 일부 역사학자들로 하여금 말뿐인 동의를 심적인 수용으로 혼동하게 만든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바로 이 똑 같은 문제가 오늘날 우리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
영감의 말씀은 1901년에 열렸던 대총회의 지도자들이 “성령이 들어오지 못하게 마음의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으며. . . .모든 악을 쓸어 버릴 하늘의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Letter from Elmshaven, 1902년 8월 5일) 라고 말하며, “지난번에 있었던 대총회는 내 생애 중 가장 크고 비참한 슬픔의 시간이었다. 변화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Letter from Elmshaven, 1903년 1월 15일) 라고 그녀의 비애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바이다.
무엇이 1888년 기별인가?
그러면, 이 1888년 기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지구상에서의 당신의 사업을 마치시고자 했던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 때 이후 산발적인 경우들 외에는 우리가 결코 이 기별에 접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당시 늦은비 성령과 큰소리 외침을 불러올 수 있었고 우리가 받아들이면 지금도 그러한 늦은비 성령과 큰소리 외침을 가져올 수 있는 이 기별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기별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 (골로새서 1:27) 이라는 한 성경절로 요약될 수 있다. 1888년 기별은 옮기움을 받는 승천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을 준비시키는데 그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로 인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케 되어 기꺼이 유예의 기간이 끝나는 때를 맞이할 수 있는지 자세히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 기별은 흔히 언급되는 개인적인 구원의 확신에 대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옹호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존스와 와그너 목사들이 제시한 내용들을 간략하게나마 발췌해 보는 것이 이 1888년 기별을 좀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스도는 죄 없는 존재가 아닌 죄인의 육신(flesh)을 쓰고 오셨는데, 그 분은 이 타락된 육신이 지니고 있는 온갖 허약함과 죄로 기우는 성향들도 함께 떠 맡으셨다.” (Waggoner, christ and His Righteousness, 26, 27 페이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삶 가운데서 우리는 여기저기에 죄를 위한 틈새들을 남겨두면서 살아 왔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죄 없는 생애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의 지점까지 우리가 도달해 보려고 결코 시도해 본적이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믿지도 않았고 선포해 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가 충만히 선포할 수가 없는 경우라면,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Waggoner, G. C. Bulletin, 1891, 156, 159 페이지) 바로 여기서 우리는 복음주의자들이 가르치는 칭의의 개념과 1888년 기별에 담긴 칭의의 개념사이에 있는 큰 차이점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오직 1888년 기별에서만 우리는 죄로 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능력에 대해 들으며, 이 죄를 이기는 승리가 항상 그리스도께서 쓰신 타락한 인성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음을 듣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안에 계셔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성품도 우리 안에 심어져야 한다. . . .하나님이 당신과 내 안에 임재하시는 신비인, 즉 신과 인간의 협력. . . .그것이 바로 셋째 천사의 기별인 것이다.” (Jones, G. C. Bulletin, 1893, 207페이지) “죄로 물든 육신(flesh)을 쓰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이 죗된 육신을 택하여 죄를 표출하는 대신 당신 자신의 거룩한 임재와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실 수 있음을 온 우주 앞에 증명하셨다. .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우리를 택하여 사용하셔서 우리의 죄스러운 본성이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도록 역사해 보이시며, 오히려 우리 자신과 우리의 모든 죗된 본성을 극복하시고 당신의 의로우신 성품과 영광을 사람들 앞에 들어내 보이실 것이다. . .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죄스러운 육신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들어내 보이시는 하나님의 신비, 즉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 인 것이다.” (Jones, G. C. Bulletin, 1895, 303페이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셨던 육신(flesh)은 바로 우리의 육신이었고, 그 속에는 우리의 육신에 내재한 모든 요소들이 존재했다. 즉, 우리 육신에 있는 죄를 지으려는 성향이 그리스도의 육신에도 존재하여 그 분으로 하여금 죄에 동조하도록 유도코자 하였다.” (Jones, G. C. Bulletin, 1895, 328페이지) “완전함, 성품의 완전 – 즉 이 세상 인간의 육신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함 – 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할 목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육신(flesh)을 쓰시고 이 땅에 사시면서 이루신 당신의 완전함으로 인해, 모든 믿는 사람들도 그 분 안에서 완전함을 이룰 수 있는 성별된 길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셨다. (Jones, The Consecrated Way to Christian Perfection, 84페이지) “유예 기간이 끝나기 직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전적으로 완비된 한 백성들이 출현할 것인데, 이들은 죄스러운 육신을 가지고도 진정으로 죄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이 이렇게 사망의 몸으로 죄 없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육(flesh)을 다스리는 능력을 증거하신 이가 그들 속에 임재해 있기 때문이다.” (Waggoner, G. C. Bulletin, 1901, 146페이지)
이러한 내용의 강론은 요즈음 듣기 힘든 기별이라고 당신은 생각지 않는가? 이러한 기별을 연구하고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 재림 교인들은 지금 그리스도가 우리의 타락한 인성을 가지셨는가 아니면 아담이 죄짓기 전의 인성을 가지셨는가 하는 논란으로 극히 분열되어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교인들로 하여금 이 주제에 대해 논하지 말 것을 권하는 형편까지 되었으며, 완전이라는 말은 별 탐탁지 못한 단어로 여겨지고, 죄 없는 삶을 주장하면 광신적인 극단으로 취급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재림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별에 우리의 마음 문을 닫도록 사단이 아주 교묘히 일을 꾸며놓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단은 그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치는 못했다. 이 귀중한 기별을 무너뜨리려고 그가 온갖 간계를 다 발휘했으나, 이 1888년 기별은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이 기별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있는 바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다가오는 황금 같은 기회를 또 다시 놓쳐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본인은 믿는다. 우리 신자들 사이에서 각성함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는데, 마귀가 이러한 신자들을 모두 다시 잠자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한가지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각성이 소수의 신자들 가운데서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교회에 계속 출석하는 한 자신들의 구원이 보장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아직도 계속 깊은 영적 잠에 빠져있는 지경이다. 이런 대부분의 재림 교인들이 너무 늦게 자신들이 짐승의 표를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때, 그들이 얼마나 슬퍼하며 경악해 할 것인가! 당신이 이러한 비극을 피하고 싶다면,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조속히 이 세상에 재림하시는 것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당신의 생애를 재정리하기를 나는 당신에게 간구하는 바이다. 그리고 1888년 기별을 진지하게 연구하며,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것 훨씬 이상으로 기도와 하나님 말씀 연구에 정진하지 않겠는가?
영감받은 한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호소를 경청하자. “빛이 하나님의 보좌로 부터 번쩍이며 발산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위함인가? 하나님의 날에 한 백성들이 일어나도록 준비되기 위함이다. 온갖 옷치장과 집안 장식함에 시간과 재원을 쏟아온 그대들에게 한가지 묻고 싶다. ‘그리스도의 성품이 그대 안에 형성되는 것을 그대는 영광된 소망으로 여기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겐 세상의 보잘 것 없는 것들에 전념하거나 무의미한 일에 치중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업에 아주 열심인 이들을 향해 ‘당신은 너무 흥분되어 있으며, 너무 열렬하고 지나치게 독단적이다’ 라고 말하며 비난할 시간이 또한 전혀 없음을 깨닫기 바란다.” (리뷰와 헤랄드, 1890년 3월 4일)
데니스 프리비(DENNIS PRIEBE) 목사는 50년 동안 목사, 교사, 그리고 전도/세미나 강사로 활동해 왔다. 11년 동안 퍼시픽 유니온 대학에서 교수로 일한 후, 30년 이상을 어메이징 팩트 선교 기관의 전도/세미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