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열렸던 대총회에서 여성목사안수를 허용하자는 안건이 세계대표들앞에 상정되어 부결되었다. 그 후 재림교회의 최고 결정기구인 대총회의 결의를 무시하며 북미주와 유럽의 몇 연합회가 여성목사 안수를 강행하는 반란을 일으켰는데, 대총회 지도자들이 그러한 연합회들에 대한 행정조치를 고려하여 왔다. 그러한 와중에 한국인 재림교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조지 나이트 박사(은퇴 신학교수)가 그리스도의 정신에 위배되는 언어를 사용하며 대총회 지도층을 공격하는 글들을 자유주의적이고 반교회적 성향을 강하게 표출하는 “스펙트럼”이라는 잡지에 기고를 하였다. 다음은 그 잡지에 실린 조지 나이트의 “The Adventist FBI and the Sticky Wicket Thicket” 라는 기사에 있는 주장을 조목 조목 비판하며 대응한 알베르토 트레이어(ALBERTO TREIYER) 박사의 글이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일부 신학자들은 조지 나이트가 핵심 쟁점에 관해서 종잡을 수 없이 그려대는 그의 신학적 전개에 의문을 제기해왔었다. 오늘날, 그러한 관찰은 옳았던 것 같은데, 조지 나이트는 그의 은퇴 이후 교회 내의 반체제 인사들의 목소리를 강하게 편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자유주의자들의 잡지] 스펙트럼에서 그가 대총회를 계속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온라인 잡지와 블로그는 진화론, 여성목사 안수, 동성애(LGBQT+) 등을 옹호하며 교회의 대총회와 지도자들을 향해 많은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지 나이트는 현 대총회장을 제2의 히틀러 또는 교황으로 묘사하였다. 또한 그는 대총회가 중세 교회의 방식으로 돌아가려고 한다거나 또는 나치 정권의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교회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음모론적인 상상에서, 이제 그는 우리 교회안으로 FBI 유형의 조직이 도입되는 계획을 보고 있다.

내가 어린 소년이었을 때 나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에 관한 비슷한 음모설을 들었다. 할아버지께서 외국인 선교사들이 CIA의 요원이라고 말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아르헨티나로 간 개척 선교자들의 편지를 대총회 기록보관소에서 다 읽고 그런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정부의 정치에 관한 어떤 것도 그 편지들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목사가 된 후, 여러 평신도들이 그들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반박되거나 그들의 심기를 상하게 하는 어떤 일에 직면했을 때, 교회 곳곳에 예수회가 침투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신학 박사라는 한 사람에게서 보고 있다! 이 정도의 교육 수준을 가진 사람에게서 이런 유형의 의심에서 벗어난 최소한의 객관성을 우리가 기대할 수 없단 말인가?

나이트의 문제는 무엇인가? 본질적으로 적법한 절차를 통해 “결사의 권리”를 행사하는 어떤 종류의 조직에 대한 그의 불편함이라는 한 요점으로 줄일 수 있다. 종교 자유의 신조 중 하나는 종교 단체들이 그들의 통일성, 사명,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자유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자유 의지로 교인이 되기로 선택한 성도들에게 전체 교회 가족의 가르침과 방침을 준수하기를 기대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2015년에 있었던 대총회 회기의 투표가 조지 나이트의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대총회가 취하는 조치에서 나치, 교황, FBI 요원들의 환영을 보고 있다. 성경과 예언의 신과 교회의 교리에 따라 재림교회가 연합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들, 여러번에 걸쳐 전 세계 교회 대총회기에서 결정된 조치들, 전 세계에서 정당하게 선출된 2천 명 이상의 교회 대표들이 결의한 조치들에 대해서 그가 이런식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는 2018년 10월의 연례회의에서 시행하기로 결정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각종 음모설로 불안을 조성하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이 그분의 교회를 위해 설계하신 것을 감독하고 유지하는 기능의 상실이 무정부상태와 자멸의 초래가 될 것을 개의치 않는다.

엘렌 화잇이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교회의 교수들과 영적 지도자들이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두를 검증하라고 촉구하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FBI의 방법을 우리 교회에 도입하려고 한다고 우리도 그녀를 비난해야 한다는 것인가? 화잇 여사의 다음 글을 함께 읽어보자:

“우리 학교의 교사들은 그들을 면밀히 연구하도록 하여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준비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교사들은 능력 있는 심사자들에 의해 그들의 능력을 시험받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할 때까지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목회자들의 시험에는 적지 않은 주의가 필요되며, 세상에 성경 진리를 가르치는 성업에 입문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신실하고 경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주의 깊이 심사되어야 한다. . . . 목사들은 이 시대를 위한 진리에 대하여 지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특별히 조사를 받아야 하며, 그래서 그들이 예언들이나 실제적인 주제에 관해 연관된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4 증언, 406-407)

왜 조지 나이트와 그와 동조하는 다른 지도자들은 우리 교회가 사명감을 잃지 않도록 필요되는 교회의 권위와 통제력의 행사에 대한 엘렌 화잇의 분명한 증언을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이 글의 마지막에 엘렌 화잇의 몇 가지 진술을 포함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예언의 신에 있는 잘 알려진 다음 글을 주목하기 바란다.

“어떤 사람의 판단도 다른 어떤 사람의 판단에 굴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땅위에 갖고 계신 최고의 권위인 대총회의 판단이 행사될 때, 사사로운 독자성과 사사로운 판단을 유지하는 대신에 굴복시켜야 한다. 그대의 잘못이란 땅위에 주님께서 갖고 계시는 최고의 권위의 음성을 대항하여 그대의 의무에 관한 그대 자신의 사사로운 판단을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3 증언 492)

조지 나이트는 그의 문서 첫머리에서 그가 원칙이라고 부르는 것에 자신의 온갖 추측과 비난을 뒤섞어 놓고 있다. 그는 이것들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해서 마지막에 다시 반복하고 있는데, 이러한 비난, 주장, 추측을 담은 그의 소위 “원칙”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주고자 한다.

나이트의 비난: "역사를 통틀어 교회가 단합을 이루기 위해 무력이나 무력의 위협을 사용해야 했던 유일한 시기는 주님의 명확한 말씀이 부족했을 때이다. 2018년 재림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런 안타까운 경우다."

답변: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주었을 때 주님의 명확한 말씀이 부족했었던가?

“어떤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고전 4:18-21)

또한 사도 바울은 장래에 닥칠 문제들을 예견하고 경고했었다: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29-31)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매우 열심인 것처럼 보일 것이며, 그들은 그들의 이론들을 세상과 교회 앞에 제시하기 위해 자금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진리에 오류를 섞어 놓을 때, 그들의 기별은 기만적인 것이 될 것이며 영혼들을 거짓된 길로 인도할 것이다. 그들을 대항하고 반대하여야 한다.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은 거짓을 가르치는 교사요, 거짓 것에 진리의 도장을 찍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권면, 55)

교회 역사의 전문가인 조지 나이트 박사는 우리 교회의 알파 위기 당시 “그 문제에 대처하라”는 글에서 대총회장인 A. G. 다니엘스와 엘렌 화잇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잊었는가? 그당시 켈로그는 의사 사역자들의 70% 가까이를 통제하며 우리 교회의 이미지를 바꾸려고 하였다 (The Early Elmshaven Years, 262).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반란을 막는 임무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런 하나님의 부름을 무시해야 되겠는가?

“나는 우리 역사의 이전 어느 때보다도 바로 이 때에 현명한 지휘력이 있어야 한다는 빛을 주님께로부터 받고 있다.” (Letter 27a, 1892)

“마지막 위기에 가까워질수록 행동의 질서나 조화의 필요성이 덜하다고 느끼는 대신 이제까지보다 더 조직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사업은 분명하게 규정된 계획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 (MR 311 14.3)

나이트의 주장: "엘렌 화잇이 '큰 배교의 발단은 바로 하나님의 권위에 교회의 권위를 첨가하려고 시도하는 데 있었다'(대쟁트 289-290) 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역사적으로 옳았다.”

답변: 여기서 우리는 역사의 한 상황을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다른 상황으로 자주 추론하여 적용하는 조지 나이트의 전형적인 수법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사실, 이 친구는 여기서 엘렌 화잇의 진술을 모두 인용하지 않고 있는데, 다음이 그 전체 진술이다.

“큰 배교의 발단은 바로 하나님의 권위에 교회의 권위를 첨가하려고 시도하는 데 있었다. 로마교는 하나님께서 금하지 아니한 것을 하라고 명령함으로 시작되었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명령하신 것을 금지함으로 끝을 맺었다.” (대쟁투 289-290)

우리가 나이트에게 묻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로마교와 대조적으로, 세번에 걸친 대총회 회기의 투표가 성경에서 하나님이 금지하신 것을 금지했는가? 그렇다. 대총회 회기에서 성경을 반영하고 하나님이 아니된다고 하신 것을 금지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고 있지 않는가? 오늘날 대총회가 하나님이 명시적으로 명령하신 것을 금지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성경과 예언의 신과 교회의 역사 어디에서, 하나님이 교회를 감독하도록 여성에게 목사안수를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가?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대총회 회기를 통해 자신을 뜻을 나타내셨을 때 교회는 그 뜻을 이행할 권위가 없단 말인가? 지금 누가 하나님의 권위를 대변하고 있는가?  반란을 도모하는 자들인가, 아니면 모든 성도들의 대표들인가? 오늘날 “엄청난 배교”를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성도들의 대표기관인가, 아니면 모든 성도들의 대표들이 자유롭게 내린 결정에 따르지 않으려는 자들인가?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사 5:20-21)

“그들은 모든 악을 선으로 믿는 것이 옳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필연적인 결과로서 그들은 마침내 모든 선을 악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대쟁투 571)

나이트의 비난: "슬프게도 나는 재림교회의 현재 위기에 대한 또 다른 기사를 써야만 하게 되었다. 교회로서 우리는 교단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해야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도자들은 그 문제를 단호히 직면할 수 있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답변: “우리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단호히 맞서기 위해 선지자와 사도들의 용기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데 우리가 동의하지만, 그것은 반란으로 그 위기를 도입하는 자들을 마주하기 위해서이다. 분명히 하자. 이 위기는 대총회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복음 질서와 상호 존중을 반대하려는 조지 나이트와 같은 자들에 의해 도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전 14:40). 이 반란이 교회의 통제권을 빼앗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현대의 부패한 사회의 문화를 통해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은 위험하다. 이미 문화의 영향으로 일부 교회와 학교 지도자들이 동성애(LGBTQ+) 옹호자들의 아젠다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고 있다. 일부 서구지역의 지도부는 회복이나 전환 치료 없이, 즉 거듭남의 호소가 부재한 동성애 돌봄을 권장하는 성공적인 비재림교인 강사들을 초대하고 있는 바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종교기관들은 더 이상 우리 학생들의 보호처가 되지 못할 것이다.

나이트의 주장: "연합과 순응는 같은 것이 아니다. 순응은 강요될 수 있지만 진정한 연합은 결코 강요될 수 없다."

답변: 맞는 말인데 적용이 틀렸다! 교회에서는 아무도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교회는 하나의 자원봉사 단체이다. 아무도 합류하거나 남이 있을 필요가 없다. 자원봉사를 할 때, 당신이 자원해서 순응하는 것이다.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면 자유롭게 떠나면 된다. 어떤 단체에서 투표로 의결이 된 후에 다수는 소수에게 그 의결된 바를 따를 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소수가 이를 따르지 않겠다고 고집할 경우, 그 단체는 그들을 회원 자격에서 제외할 권리가 있다. 교회의 성장과 보호를 위해서는 교회의 규율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다원주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조직은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때로는 교회에 자기들의 의지를 강요하여 혼란과 불복종, 무질서를 야기시키려는 사람들로부터 양떼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일말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교회 전체에 불화와 불협화음을 가져오게 해서는 안 된다. 조지 나이트는 연합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뒷바침하려고 제임스 화잇의 훌륭한 진술을  차용하는데, 그러나 이 친구는 제임스 화잇과 그의 아내가 그 당시 교회에 대한 반란을 막기 위해 대담하게 개입해야 했던 상황에서 그러한 진술을 남겼음을 망각하고 있다.

나이트의 주장: "기독교 연합의 유일한 근거는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 상호 신뢰,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다."

답변: 우리가 이말에 동의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신뢰와 사랑은 면죄부가 아니다. 둘 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순종함으로써 이루어 진다. 그것은 또한 적법한 절차에 따름으로 유지된다. 사랑과 신뢰라는 명분으로 반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교활한 수법이다. 물론 여성목사 안수는 “명확한 성경의  가르침”도 아니다. 그리고 연합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암 3:3)라고 했다. 교회가 큰 바벨론 행습의 도입을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우리가 진보적인 개신교처럼 “포용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프란체스코 교황에게 매료되어 자기들도 포용됨을 받았다고 느끼며 그를 따르고 있는 많은 복음주의자들 처럼 되자는 말인가? 아니면 바벨론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거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세상의 관습과 분리되는 것을 선호해야 하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다른 성경 해석학을 도입하려고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이 기독교의 연합을 위한 기본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하기에 교회에는 일정한 감독이 필요한데, 교인들을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게 하여 “상호신뢰와 하나님 사랑”을 파괴하는 비성서적인 요소들이 도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가 성도들을 보호한 것을 칭찬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2). 하지만 그분은 두아디라 교회를 다음과 같이 꾸짖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계 2:20).

나이트의 주장: "진정한 기독교 교회는 자발적인 사회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싶어하고 느끼기 때문에 그것에 동참하고 심지어 그것을 위해 일하기도 한다."

답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모든 성도의 몸된 교회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그 결정을 존중하거나 아니면 떠나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결의된 바에] 다른 감정과 양심의 주장을 들먹이며 분열을 조장하려는 이들에게 방해받지 않기를 원하는 성도들의 “자발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나이트의 주장: "여성목사안수의 부결에 비순응을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사명에 대한 헌신이 아주, 아주 강하다."

답변: 무슨 사명를 말하는가? 공통적인 신학과 성경해석관이 없이 공통적인 사명을 가질 수 있는가? 아니다! 여성목사안수의 반란이 강력한 사명의식을 띠고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들은 세계 교회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다: “우리는 당신들이 믿는 것을 믿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는 당신들이 (세번의 대총회 회기에 걸쳐 결의한) 것에 관심없다’라는 듯이 말하며 연합의 나쁜 모본을 보이는 것이 그들의 사명인가? 2017년 런던에서 열린 여성목사안수 궐기집회는 여러곳에 존재하는 불화를 조장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소집이 아니었는가? 이런 것이 하나님께서 성경과 예언의 신 말씀과 조화를 이루며 그분의 교회를 통해 결정하신 것에 반기를 드는 자들에 의해 세 천사의 기별이 세상에 전달되는 ‘아주 아주 강한 사명의식’의 예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이트의 비난: 테드 윌슨은 “안수 신학 연구 위원회” (Theology of Ordination Study Committee, TOSC)의 압도적 다수(찬성 62명, 반대 32명)와 거의 모든 세계 지회의 보고서들이 각 지회에게 여성목사안수를 부여할지 선택권을 주기를 선호한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 한 결과로 교단내의 지속적인 동요가 있으며 3년 동안 [대총회 결정의] 불순응에 대한 적절한 처벌 방법을 모색하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다.

답변: 나이트의 주장은 사기성이 농후하다. 윌슨 대총회장은 여성목사안수에 자신이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대총회 회기동안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표들의 결정을 따름으로 단결을 촉구했을 뿐이다. 또 투표 전에 대표들에게 [TOSC에서 제출한] 세 가지 입장 요약본이 낭독되어 졌다. 그리고, TOSC의 모든 정보와 문서들이 모든 대표들에게 전자 문서로 제공되었다.

조지 나이트는 우리로 하여금 TOSC 위원회에서 두 가지 입장만 논의되었다고 믿기를 원하고 있다. 아니다! 세 가지 입장이 있었고, 대다수의 위원들은 남성목사안수라는 성경적 입장에 찬성했다. 샌안토니오 대총회에서 모든 대표들에게 전달된 세 번째 제안을 여러분과 공유하겠다: “세 개의 입장 중 어느 것도 과반수의 표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3분의 2가 넘는 위원회의 과반수가 다음 사실(제안)에 찬성했다: 세계 교회는 성경이 남성들에게 맡긴 (가정의 영적 지도자로서, 그리고 교회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의 역할로서 부여되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특별한 역할을 공표해야 한다.”

그러나 그 세 번째 입장은 예외적인 경우를 위한 길을 열었고, 조지 나이트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그 세번째 그룹을 여성목사안수를 선호하는 그룹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입장은 “우리는 가정에서 남성의 책임자 위치라는 성경적 원칙과 안수 장로/목사의 직분을 포함하는 제도적인 영적 지도자로서 남성의 책임자 위치라는 성경적 패턴을 재확인한다”고 다시 강조하였다 (딤전 2:12-14; 3:1-5; 딛 1:5-6). 그러면서도 이들은 모순된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라고 말했다.

따라서 윌슨 대총회장이 TOSC 위원회에서의 투표율에 대해 대총회 회기 대표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또한 TOSC 위원회는 교회의 사안을 결정하는 대표 단체가 아니므로, 그것의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위원회는 문제를 정의하기 위해 모였고, 그렇게 하였다. 이 사안에 대한 결정은 자문 위원회가 아닌 [세계 교회 대표들이 모이는] 대총회 회기에서 내려지게 되어 있었다.

나 자신의 증언: 아직 이 주제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가운데서도 나는 목사로서 여성을 장로로 안수할 때 아주 심각한 양심의 문제를 느꼈었다. 사실 나는 안수식 중에 포함된 사도 바울의 “그러므로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 . “(딤전 3:2)라는 성경절을 어떻게 큰소리로 읽을지 몸둘바를 몰랐다. “한 남편의 아내”로 바꿔야 할까? 하지만 내 자신의 의견에 맞추기 위해 성경 말씀을 바꾸기는 결코 허용할 수 없었다!

[출처: “George Knight’s Conspiracy Theory (Part 1)” on the Fulcrum7 Blog Website ]


알베르토 트레이어 (ALBERTO TREIYER) 박사는 아르헨티나의 리베르타도르 산 마르틴에 있는 재림 마을에서 출생하였으며,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푸에르토 리코에 있는 앤틸리안 재림대학에서 교수로 봉직하였으며, 그 후 라시에라 대학과 컬럼비아 유니언 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지금은 은퇴 목사로 저술과 세미나를 통해 재림신앙의 특별한 기별을 전하는데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