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재림교회의 세계대표들이 모인 대총회 회기 중 교회의 공식교리로 채택된 27개 기본 교리 중 제 7 신조는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우리의 믿는 바를 밝히고 있다 (그 후 2005년의 대총회에서 그리스도안에서 자라남에 대한 교리가 하나 더 추가되어 28개 기본 교리가 되었음):
"남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개성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자유를 부여 받았다. 비록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각 사람은 육체, 정신, 혼의 불가분적인 통일체로서 생명과 호흡, 그리고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 우리의 시조가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 그들은 그분께 대한 자신의 의존성을 부인했으며, 하나님 아래에 있는 그들의 고귀한 지위에서 타락했다. 그들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은 훼손되었고 그들은 사망에 예속되었다. 그들의 후손은 이런 타락한 본성과 그 결과를 물려받았다. 그들은 연약성과 악에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 통회할 때 그들 안에 조물주의 형상을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존재로서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간에 사랑하며 자신의 환경을 돌보도록 소명되었다." -기본 신조, 7.
이 신조문은 재림교회 초기부터 유지되어온 재림신앙의 가르침을 신중하게 설명한 것이다. 특히 이 신조가 1950년 후반의 「교리에 대한 질문」을 통해 칼뱅주의의 원죄론적 인간론이 재림교회로 침투한 이후 그것에 기반을 둔 죄론과 구원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및 종말론의 이설이 데스몬드 포드 사건으로 표명화된 직후에 교회대표들에 의해 채택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여기서 타락의 실제성과 그 파괴적인 결과를 강조하며 아담의 죄로 인한 인간의 “악에 기울어지기 쉬운” 타락한 본성을 기술하고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담의 죄로 인해 죄인으로 태어난다는 소위 원죄론적인 “타고난 본성적 죄인”의 개념을 배제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지금 재림교회 안에서 일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고집하고 있는 “본성적으로 태어나면서 죄인”이라는 이설적인 개념이 아닌, “연약성과 악에 기울어지기 쉬운 경향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분명히 못박고 있음을 재림성도들은 분명히 직시하여야 한다. 이러한 이해는 성경뿐만 아니라 증언말씀의 전반을 흐르는 가르침과 일치하는 이해이다. 이 신조문은 화잇 여사가 「시대의 소망」 296페이지에서 그 분의 제자들이 모두 “악에 기울어지는 선천적/후천적 경향을 지닌” 사람들로 표현한 이해와 상통하는 바이고, 다음과 같은 그녀가 견지한 중추적인 인간론과도 일치하는 기술이다:
“그리스도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요 1:9)이시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얻는 것처럼 모든 심령이 하늘의 거룩한 진리의 빛을 받는 것도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각 사람의 마음속에는 지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영적인 능력 곧 옳은 것에 대한 분별력과 선에 대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지선(至善)의 원칙들에 대항하는 힘이 우리 속에 있다. 이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결과가 모든 사람의 일상 경험 가운데서 나타나는 성악(性惡)인 것이다. 사람의 본성에는 악을 행하려는 성향 곧 인간이 자신으로서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 인간이 이러한 힘에 대항하여 싸우며, 진심으로 유일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힘으로부터이다. 그 힘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일은 이 힘과 더불어 협력하는 것이다.” (교육, 29)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조차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영적인 능력의 도움이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심을 말해주는 글인데, 이것을 요한 웨슬리는 “선재한 은혜 (prevenient grace)”라고 칭하였다. 그와 더불어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는 이에 대항하는 악을 행하려는 성향이 내존하고 있음을 화잇 여사는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악을 행하려는 성향 그 자체를 죄로 결코 규정하지 않았다. 더불어 엘렌 화잇이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로 인해 우리가 전수받은 타락된 본성 그 자체를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죄로 결부시키는 “원죄론”의 주장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전제를 용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녀의 다음 글에서 명확히 나타나 있다:
“그리스도, 우리의 유일한 소망 – 오늘날 인류의 상태를 보면서, 어떤 이들은 ‘인간이 본질상 정말 완전히 타락했는가? (Is man by nature totally and wholly depraved?)’ 라는 의문을 마음속에 품게 된다. ‘정말 인간은 절망적으로 몰락되고 말았는가? (Is he hopelessly ruined?)’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 주 예수님은 하늘 궁전을 떠나 우리 인성을 쓰고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분의 모본을 따라 우리 모든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사셨다. 우리는 의의 모본이 되는 삶을 이 세상에서 완성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삶으로 우리에게 모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죄를 이길 수 있다. 위대한 모본 되신 그리스도께서 죄를 이기신 것과 똑 같이 인류도 그 죄를 이길 수 있음을 그 분은 드러내 보이셨다. . . .어린 양의 피와 모본 되신 인자를 들어 높이는 우리 자신의 증언을 통해 죄를 이길 수 있는데, 그렇게 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을 증거하는 살아있는 모본이 되며 또한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계 12:11) 인간이 죄를 이길 수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게 된다. 따라서 이렇게 죄를 이긴 이들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 신 모본대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죄를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된다.” (원고 9권 238페이지)
이 글에서 엘렌 화잇이 칼뱅주의자들이 원죄론을 논할 때 사용하는 “totally and wholly depraved” (정말 완전히 타락하다), “hopelessly ruined” (절망적으로 몰락하다) 라는 문구들을 인용하여 사람들의 생각을 언급한 후에 그것에 대해 아니다라고 확고한 답변을 주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녀의 글을 단편적으로 취하여 엘렌 화잇이 “본성적인 죄”의 개념을 지지한다고 일부 목회자들이 주장하고 있지만, 원고 9권에서 인용한 위의 글은 그러한 주장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적어도 1980년도에 이러한 신조문을 준비하고 채택한 교회대표들은 이 사실을 분명히 감지하고 있었으며, 위의 신조문에서 쓰여진 용어들을 아무 생각 없이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신조문이 준비되고 작성되던 그 당시에도 일부 목회자들이 1957년도의 「교리에 대한 질문」을 통해 도입된 원죄론적인 사조를 그 신조문에 끌어들이려고 시도하였음은 교회 역사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1980년 대총회 회기 중, 이 신조문에 대한 공개적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원죄론적인 인간론을 도입하기를 바랬던 W. Duncan Eva (던칸 에바) 라는 목회자/신학자에 의해 이 신조문이 작성되고 준비되던 과정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다음과 같이 보고한 기록이 있다:
“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신조문은 원래 더 강한 표현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시편 51:5의 ‘보소서, 내가 죄악 중에서 태어났고, 죄 중에서 내 어머니가 나를 배었나이다’ 라는 구절을 언급하였는데, 우리가 죄중에 태어났다는 생각을 포함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반대가 여러 위원들로부터 제기되어 그 문절이 삭제되었다.” (53회 대총회의 9번째 회기 중 발언, 1980년 4월 22일 오후 3:15분, Adventist Review 지 보고)
이 신조문을 작성하는 위원회가 잠시 이 원죄론적인 문절을 고려했으나, 여러 위원들의 반대로 인해 삭제되었다는 점 – 이 사실을 셋째 천사 기별을 전할 분별력 있는 재림신앙인들은 분명히 그 의미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지금 일반 칼뱅주의자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원죄론적인 인간론과 죄론을 설파하는 목회자들이 이러한 신조문과 그 신조문을 작성하고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던 교회 전체의 중지를 거스르는 행위임을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을 일삼는 사람들이 아무리 유명한 목회자요 신학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교회가 아님을 인식한다면, 분별력 있는 재림성도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단연히 거부할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지금 미국 재림교회에서는 이 점을 파악하는 (ASI를 중심으로 한) 지각 있는 평신도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특히 젊은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완전히 그 반대방향을 질주하고 있음을 보면서 양쪽을 비교해 보는 본인은 참으로 마음이 착잡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위의 신조문 작성과정에 대한 던칸 에바의 설명에 대해 좀 더 부연하자면, 그 작성 위원들이 시편 51:5의 삽입을 거절했던 이유는, 그 구절이 원죄론을 가르치는 구절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다윗이 죄악이 들어온 세상 중에 태어났음을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그러한 죄악이 존재하는 중에 자신을 가졌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실은 유대인들이 바울의 로마서가 쓰여지기 전인 1000년동안 이 구절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 구절에 바탕을 두어 원죄론과 같은 가르침을 전혀 계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이 죄에 대한 그의 설명 중 시편의 다른 구절들은 많이 인용하면서도 이 시편 51:5을 결코 인용하지 않았음을 보면, 이 구절이 죄에 대한 구절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애드윈 자크리슨은 그의 책 「In the Loins of Adam: A Historical Study of Original Sin in Adventist Theology」 4-5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인간 본질에 관한1980년 신조문의 주안점을 설명하고 있다:
“재림교회의 신학에서 원죄론의 특정한 주제는 요즈음 논의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인성 및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와 같은 논쟁에서 보여지는 바 처럼 좀 분명치 않은 반응을 받고 있다. . . .우리는 이 불분명한 반응을 ‘인간의 본질’이라는 명제 하에 최근 채택된 1980년 신조문에서 더 명확히 목격할 수 있다. . . .아담이 지은 범죄의 결과로 인해 후손들이 나면서부터 본성적으로 죄인이라는 가르침을 결코 삼가지 않는 일반 복음주의파들과는 달리, 재림교회는 가장 최근의 고백서에서 조차 원죄론의 용어를 회피하는 다른 해석을 정립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사실은 재림교회가 인간론과 죄론에 있어서 불분명한 반응을 보인 것이 결코 아니다. 1957년의 「교리에 대한 질문」을 통해 뒷문으로 도입되어 일부 신학자들의 권위로 재림교회에 강요되었던 원죄론의 이설적 가르침을 그 후의 세계 교회의 대표들이 거부했을 뿐이다. 이러한 관찰은 기본 신조문을 설명한 기본 교리 28 (“Seventh-day Adventists Believe”) 이라는 책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특별히 최초의 타락에 관한 설명을 포함해서, 수많은 성경절들은 죄란 도덕적 악이라는 것, 곧 자유로운 도덕적 행위자가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범한 결과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창 3:1-6, 롬 1:18-22).
우리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선이 아닌 악으로 기울어지는 죄성을 타고난 본성 (sinful nature)임을 지적하면서도, 그 죄스러운 본성 그 자체로 인해 “태어나면서 정죄된 (용서가 필요한) 죄인이 되었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김정대(JUSTIN KIM) 교우는 뉴저지 포트리 교회에 출석하는 평신도로 현재 재림 신앙과 신학 사이트의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