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종교자유에 관한 여러가지 이슈를 취급하는 격월간지인 리버티(LIBERTY) 잡지의 2011년 1/2월호에 실린 “Free Will, Predestination, and Religious Liberty“이라는 케빈 폴슨 목사의 글이다. 이 잡지는 대총회의 종교자유부에서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로서 각계의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가들 및 법률 전문가들에게 분포되어지고 있다.
미국의 극우파 기독교 지도자들의 말을 듣다보면, 시민정부를 기독교가 지배하는 것은 성서적 명령이라고 단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성서와 교회 역사를 주의 깊게 검토해보면, 이러한 주장은 보수적인 기독교계의 여러 신조와 관행들의 경우처럼 성경이 쓰여진 후 얼마 되지 않아 기독교 신학으로 들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제자가 검으로 그를 지키려 했을 때, 예수께서는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2)고 명하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로마 총독의 질문에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한 18:36)고 말씀하셨다.
구원을 위한 자유의지와 개인적 책임에 대한 성경 교리가 유지되는 한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원칙을 충실히 지켰다 (여호수아 24:15; 에스겔 18:20; 요한계시록 22:17 참조). 그러나 그 후 여러 세기동안 죄와 책임과 구원에 관한 새로운 개념이 기독교 신학 사조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장래 신권 통치의 불관용을 기독교가 수용하는 씨앗이 뿌려졌다.
원죄론과 무력행사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교부 (A.D. 354-430)는 역사학자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인간은 유죄 판결을 받은 죄인으로 태어 난다는 이론인 원죄론 교리의 창시자로 인정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전의 기독교인들은 육체적 부패가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간에게 전수되지만, 죄책은 오직 개인의 선택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믿었다. [1]
반면에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리는 연약함은 물론 죄책도 모든 사람의 타고난 팔자라고 주장했다.
그러한 개념은 곧 아기들이 그들의 영혼으로부터 원죄를 씻을 기회가 없이 세례 전에 죽는다면, 그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2] 그것은 또한 인간이 구제 불능한 타락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단자와 죄인에게 당연히 무력이 사용될 수 있다는 전제를 성립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시”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원칙을 더 명확하게 밝혔다. 역사학자 윌 듀란트(Will Durant)에 의하면, “교회는 나중에 정치의 이념적 무기로서 그들의 존재를 ‘하나님의 도시’와 동일시 하였고,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으로부터 신권통치 교리를 논리적으로 추론하였다. 이 교리는 인간에서 기인한 세속 권력들은 하나님에게서 유래한 교회가 지닌 영적 권력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교리다.” [3]
많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권위적인 종교 개혁자들, 특히 존 칼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인간 본성에 대한 견해를 강하게 고수했다. [4] 그리하여 칼뱅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시민정부 지배권과 반대자들에 대한 무력 사용의 당위성을 믿었다. 칼뱅이 [스페인의 의학자요 신학자였던] 미카엘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를 제네바에서 화형에 처했고 이것을 그당시 가톨릭교와 다른 개신교인들이 칭찬했는데, 이것은 바로 그들이 신권통치와 교회의 무력행사를 믿은 증거이다. [5]
예정론
칼뱅과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비자발적인 죄의 교리는 자연히 비자발적인 구원의 교리를 필요로 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예정론이 탄생했다. 이것은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을 운명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주받을 운명이라는 교리이다. 이러한 개념은 구원을 인간의 실제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제거하는데, 그 경험은 짐작건데 – 그리고 필연적으로 개심한 기독교인들의 경험 조차도 – 원죄에 의해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칼뱅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이 죽을수 밖에 없는 몸을 벗어버릴 때까지, 우리 안에는 항상 많은 불완전함과 병약함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불쌍하고 비참한 죄인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의안에서 얼마나 많이 성장하고 증가하더라도,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결코 풍족함이나 완전함이 없을 것이다.” [6]
그러므로 이 신학에 따르면, 남녀의 구원은 이생에서 성취되는 죄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삶에서 누릴 그러한 자유와 영원한 행복에 대한 약속일 뿐이다.
물론 모든 개신교 신자들이 아우구스티누스와 종교개혁자들의 이러한 신학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아르미니우스-재침례파(Arminian-Anabaptist) 전통의 사람들은 죄, 죄책, 무력 사용에 대해 매우 다른 견해를 취했다. 원죄론을 거부하면서 이 집단은 성인 침례를 주장했고, 이들로부터 영국에서는 요한 웨슬리의 운동이 일어나 이생에서의 죄에 대한 승리를 강조했다. 역사학자 윌 듀란트는 개신교의 이 분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유럽 대륙의 재침례파 교도들와 영국의 퀘이커교도들, 미국의 침례교도들 사이에 명확한 유대관계는 없다; 그러나 전쟁과 맹세에 대한 퀘이커교도들의 거부와 성인 침례에 대한 침례교도들의 주장은 아마도 스위스, 독일과 네델란드에서 재침례파의 형태를 취한 신조와 행동의 전통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집단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한가지 특성은 자신들과는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기꺼이 평화롭게 지내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이다.” [7]
미국에서의 역사
이 두 개신교 계파 사이의 갈등은 구대륙에서와 마찬가지로 신대륙에서도 불가피했다. 칼뱅의 추종자였던 영국의 청교도들은[8] 교회 법령이 국가에 의해 집행되는 것을 지지했다. 원죄론 교리에 바탕을 둔 청교도들은 인간의 의지가 “본질적으로 부패했다”고 믿으며 그 의지에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뉴잉글랜드 지역의 청교도들과 이견에 대한 그들의 무관용에 대해 한 역사학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두 가지 형태의 자유, 즉 자연적(또는 타락한) 자유와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류를 행할 수 있는 자유는 전자의 범주에 속하며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일종의 방종, 즉 ‘사람이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자유’로 여겼다.” [9]
재침례파의 전통에 속한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가 이러한 신권통치의 사고방식에 도전하게 되었고, 그 결과 매사추세츠주로 부터 추방되어 산속의 인디언들과 함께 살았던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윌리엄스는 나중에 “야만적인 기독교인들”과 살기보다는 “그리스도적인 야만인들”과 함께 살겠다고 말했다.
미국 역사가 진전됨에 따라, 칼뱅주의자와 아르미니우스 개신교 분파가 채택한 사상과 방법의 차이는 점점 더 뚜렷해졌다. 노예폐지론자인 존 브라운(John Brown)과 전체적인 노예폐지운동에 관해 언급하면서, 최근의 한 역사학자는 제2차 대각성운동(The Second Great Awakening)의 영향을 받은 인간의 완전 가능성에 비중을 둔 아르미니우스 운동권의 사람들과 존 브라운과 같이 칼뱅주의 전통에서 온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대조했다:
“제2차 대각성 운동에 의해 촉발된 기독교적 인도주의와 완전주의를 바탕으로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William Lloyd Garrison)과 노예제도 즉시 폐지론자들(immediatists)은 국가의 영혼을 구하려면 모든 형태의 불경스러운 강제를 초월해야 한다고 믿으며 폭력을 포기하고 도덕적 설득의 효능을 강조했다. 한 편, 존 브라운은 도덕적 설득, 비폭력, 회복적인 기독교 인도주의에 결코 몰입하지 않았다. 그는 1800년 코네티컷주 토링턴에서 태어나 주로 오하이오주에서 자랐으며, 회중교회의 칼뱅주의와 예정론의 신조를 고수하는 독실한 부모로부터 훈련을 받았다.” [11]
자유의지, 예정론, 그리고 종교 자유
오늘날의 극우파 기독교는 아우구스티누스에서 기원한 칼뱅주의적 기독교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복음주의의 축제”라는 성명서에[12] 제리 폴웰(Jerry Falwell)과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을 포함한 대부분의 보수적 기독교 지도자들이 서명하였는데[13], 그 성명서에는 “본성에 의해” 인간이 보편적으로 정죄된다는 원죄론과[14], 인간의 구원이 변화된 삶과는 별개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달성된다는 예정론이[15] 확실시 되어 있다.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기독교 작가들 중 한사람인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극우파 기독교 진영에 대해 빈번히 비판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도 죄, 은혜, 구원에 대해서는 그의 동료 복음주의자들의 칼뱅주의적 견해를 함께 나누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의의 성취에 대하여, 얀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위대해서 우리가 그럴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다.[16] 또 그는 “불완전하고 미비하고 나약하며 죽을수 밖에 없는 것이 이 땅에 있는 우리 인간의 운명이기에, 오직 그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만 우리가 중력의 힘을 벗어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17]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 등이 가르쳤던 본격적인 예정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견해는 개인의 선택과 별개로 인간을 죄인으로 만들어 인간의 자유와 성경의 가르침을 모두 훼손하고 있다 (겔 18:20; 롬 5:12; 약1:14, 15; 4:17 참조). 더불어 그는 하나님의 권능을 부여받은 의지의 행사를 통해, 남녀들이 실제로 그들의 삶에서 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성경의 분명한 메시지를 부정하고 있다 (요 8:11; 롬 8:4,13; 고후 7:1; 빌 4:13; 살전 5:23; 벧전 2:21,22; 4:1; 요일 1:9; 3:2,3,7; 유 24; 계 3:21; 14:5 참조).
교회 역사에서 분명한 것은,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과 협력하여 의와 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믿음이 타인의 자유의지 행사를 존중하고 허용하는 마음 가짐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남녀가 자신의 의지에 대적하는 죄에 의해 철저히 무력화되어 하나님의 사면 칙령외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것으로 보인다면, 다음의 논리적인 단계는 사회의 악을 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하는 악에 대한 하나님의 허용이 자유의지에 대한 하나님의 존중이라는 증거라고 믿고, 이 자유의지를 행사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고 악을 삼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개인적인 도덕적, 영적 판단의 범위에서 선과 악 사이의 선택을 개인에게 맡기는 것은 마찬가지로 논리적이다.
성경은 영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하나님의 도덕률(계명)에 대한 순종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마 19:17; 눅 10:25-28). 그러나 동시에 그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처음부터 의와 죄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음을 또한 분명히 하고 있다. 성경 기록에 따르면 에덴에 생명 나무와 선악과 나무를 모두 두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었다 (창 2:9).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는 초대장이 주어지고 있다. 교회 역사의 기록은 교회가 죄와 구원의 문제에서 자유의지를 분리시킬 때, 궁극적으로 희생되는 것은 자유 그 자체임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역자주] 재림교회안에서의 근대사를 살펴보아도 칼뱅주의의 원죄론적 사조와 구원론을 받아들인 신학자와 목회자들에게서 자신들과 다른 신학적 견해를 지닌 사람들에 대한 불관용적인 태도와 핍박정신을 자주 관찰할 수 있었다. 특히 교회의 행정권을 이용해 그들의 신학적 입장과 다른 견해를 밝히는 목회자들에게 실질적인 견제를 가하는 경우도 목격한 바가 있다. 1957년경에 출판된 「교리에 대한 질문 (QOD)」에 이의를 제기하였던 M. L. 앤드리어슨 박사에게 가해졌던 (목사신임서 박탈과 노후부양금 지급중단 등) 그 당시 대총회 지도자들이 취한 비정상적인 행정조치들이 그 한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그리고 2020년 중반 한국 재림교회의 어느 은퇴목사가 이끄는 선교단체가 재림교단이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인성" 주제에 있어 자신과 반대되는 견해를 밝혀온 (라이벌 선교단체를 이끄는) 한 평신도 목회자를 유투브와 인터넷 게시판 및 카톡 찌라시 문자등으로 이단몰이하는 추태를 보인 것도 그 한 사례가 될 것이다. ("고결한 신앙을 추구하는 재림성도들에게" 칼럼 참조)
각 주
1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Mich.: W. B. Eerdmans, 1977), p. 244.
2 David Van Biema, “Life After Limbo,” Time, Jan. 9, 2006, p. 68.
3 Will Durant, The Age of Faith, The Story of Civilization: Part IV (New York: MJF Books, 1939), p. 73.
4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Book III, Chaps. xxi-xxii.
5 Will Durant, The Reformation, The Story of Civilization: Part VI (New York: Simon & Schuster, 1957), p. 484.
6 John Calvin, The Geneva Confession, quoted in Lewis W. Spitz, ed., The Protestant Reformation, p. 117.
7 Durant, The Reformation, pp. 401,402.
8 Thomas J. Curry, The First Freedoms: Church and State in America to the Passage of the First Amendment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6), p. 1.
9 Ibid., p. 6.
10 Charles Longacre, Roger Williams: His Life, Work, and Ideals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n., 1939), p. 80.
11 Sean Wilentz, “Homegrown Terrorist,” The New Republic, Oct. 24, 2005, p. 24.
12 “The Gospel of Jesus Christ: An Evangelical Celebration,” Christianity Today, June 14, 1999, pp. 51-56.
13 Ibid., p. 56.
14 Ibid., p. 52.
15 Ibid., p. 55.
16 Philip Yancey, What’s So Amazing About Grace? (Grand Rapids, Mich.: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7), p. 210.
17 Ibid., p. 273.
케빈 폴슨(KEVIN PAULSON) 목사는 퍼시픽 유니온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로마린다 대학원에서 조직신학으로 석사학위, 앤드류스 신학원에서 목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뉴욕합회에서 성경교사, 전도목사, 목사로 목회에 역임한 바 있다. 지금은 재림교회의 종교자유 전문지 리버티(Liberty) 등에 기고하는 작가로 활동하며 미시간의 베리언 스프링즈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