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원죄론”이라는 잘못된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 인용하는 성경의 주요 본문이 에베소서 2장 1절~3절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치는 이 아름다운 본문에서 바울은 먼저 에베소인들에게 그리스도께 나아오기 전의 그들의 상태를 상기시키고 있다. 그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1-2)고 하였다. 성경은 죄가 영적인 죽음, 즉 하나님과의 분리로 이어짐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바울은 죄에 빠지고 그리스도 밖에 거한 사람의 상태를 “허물과 죄로 죽은 것”으로 묘사한다. 바울은 이러한 영적 죽음을 낳는 행위의 본질을 정의하고 있다. 그것은 “불순종의 아들들”로서 사단의 욕망을 따라 “이 세상의 풍속을 좇고” 행하여 “허물과 죄로” 오는 죽음이다. 이것은 명백하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은 다음 구절이다. 바울은 계속하여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라고 말하는데, 이 구절은 에베소인들이 어떻게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본질(nature)“로 번역된 단어는 희랍어로 푸시스(phusis)이다. 영어에서처럼 희랍어에서도 본질(본성)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태이어 희랍 어휘 사전 (Thayer’s Greek Lexicon)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본질: (a) 사물의 본질, 힘, 법칙, 자연의 질서, 자연적인 감각, 태생적인 신념 또는 지식… (b) 출생, 신체적 기원… (c) 오랜 습관에 의해 본질이 된 감정과 행동의 양식. (d)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선천적인 속성과 힘의 집합”(신약성서의 희랍어-영어 어휘집, 660-661). 우리는 이러한 정의에서 푸시스(phusis)가 “출생” 혹은 “신체적 기원”과 관련된 것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또한 “오랜 습관에 의해 본질이 된 감정과 행동의 양식”을 언급할 수도 있음을 주지하게 된다. 단어에 여러가지 다른 정의가 있을 때, 적용되는 정의를 결정하는 것은 그 단어가 사용된 구절의 맥락이어야 한다. 에베소서 2장 3절에서 바울은 “불순종”과 “불법(허물)”의 과정을 따라갔던 에베소인들의 과거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문맥에 맞는 가장 합리적인 정의는 바울이 과거 그들이 행했던 본질화된 행동 양식의 오랜 습관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 개혁자 존 칼뱅은 이 본문에서 인간의 “부패한 본성”이 아담의 죄로부터 전수된다는 그의 이론에 대한 타당성을 찾았다. 칼뱅은 에베소서 2장 3절에서 바울이 언급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 후, “만약 우리가 진노의 자녀라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오염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자극하고 그로 하여금 우리를 적대시하게 만든다.”(칼뱅의 에스겔 18장 20절에 대한 주석)고 기술했다. 그는 에베소서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모든 것에 본질적으로 거하는 것은 분명히 원초적인 것이다; 바울은 우리 모두가 본질적으로 정죄될 뿐이라고 선언한다; 따라서 죄는 우리 안에 본질적으로 거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 없는 사람을 정죄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엡 2:3에 대한 칼뱅 주석)
에베소서 2장 1~3절에는 바울이 언급한 본성이 태어날 때의 유전된 상태를 지칭한다는 증거가 없다. 단순히 죄를 짓는 것이 인간의 습관이기 때문에 그것이 그의 고유한 본성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예는 고린도전서 11장 14~15절에 있는 바울의 가르침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그는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전 11:14-15)고 하였다. 바울은 머리카락에 대해 언급하며 첫 세기 여성의 머리를 덥는 피복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여자의 머리카락이 남자의 머리카락보다 긴 것이 생물학적으로 인간 본성인가? 타고난 본성이 남자의 긴 머리가 그에게 욕됨을 가르치는가? 아니다. 그러나 첫 세기의 자연스러운 관습은 남자는 짧은 머리를 가지고, 여자는 긴 머리를 가지는 것이였다. 바울은 본성(본질)이라는 용어를 이렇게 에베소서 2장 3절에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기독교계의 많은 문제들의 대부분은 성경의 다양한 비유적 표현들을 오용하면서 인간적인 설명과 결합하는데 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그런 비유적 표현의 오용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성경은 개인적인 죄의 결과로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은 자”가 된다고 분명히 가르친다(엡 2:1). 성경이 정의하는 바, 죽음은 분리됨이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으로 간주될 정도로 하나님과의 교제와 교감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칼뱅은 “우리는 모두 죽은 자로 태어난다”(엡 2:1에 대한 칼뱅의 주석)고 주장했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죄로 죽었다”는 개념에다 성경의 가르침을 넘어선 인간의 설명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칼뱅주의 편향으로 악명 높은) 신국제판 성경 번역(NIV)의 간사인 에드윈 팔머는 그의 저서 「칼뱅주의의 다섯가지 요점」에서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성경의 묘사는. . . 3만 5천 피트 이상 깊이의 마리아나 해구의 심연 바닥에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의 위에 있는 바다물의 무게는 1평방인치당 6톤이다. 그는 천 년 동안 그곳에 있었고 상어들은 그의 심장을 먹어버렸다. 다시 말해, 그 인간은 죽었으며 구조대원에게 자기를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그를 구하려면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그가 다시 살아나고 수면 위로 떠오른 다음에야 구조대원에게 구조를 요청할 수 있다.” 팔머는 심지어 죄로 죽은 사람을 다시 태어나고 싶어할 수도 없는 “영적인 무존재”라고까지 말한다. 칼뱅도 똑같은 주장을 했었다. 한 설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어떻게 아직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지 않은 자가 스스로 자신을 존재케 할 수 있는 시도를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의 근원과 우리의 첫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우리의 능력이 아무 것도 이끌어 낼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 안에서 우리에게 전달된 값없이 주시는 모든 선함을 가지고 있다.” (칼뱅의 이사야의 예언에 대한 설교, 사 53:9-10)
이런 것들은 확실히 매우 자극적이고 창의적인 설명들이지만, 그것들은 그들이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죄로 죽은” 영혼은 “무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반항하는 의식을 가진 영혼이다. 그는 여전히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고, 불순종할 수도 있고 회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선택은 그에게 달려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종”(살후1:8)하겠다고만 한다면, 그분의 자비로 “죄로 죽은” 영혼이 영적으로 “거듭날”(벧전 1:23)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바이다.
카일 포프(KYLE POPE) 목사는 일반 개신교회 중 하나인 Church of Christ 교단에 소속된 목회자로 1987년 부터 미조리, 아칸사스, 알라바마, 캔사스, 택사스 주들에서 목사로 임하였으며, 현재 택사스주의 아마릴로에 소재한 Olsen Park Church of Christ에서 시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