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4년 12월 17일 카스다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다. 미주 재림교회의 게시판을 난장판으로 만들던 사람들이 퇴출되어 민초스다라는 게시판을 따로 차린 후, 그들과 다시 합치자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 글은 그들의 주장에 대한 필자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이 글에 함축된 의미는 재림신앙을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 아직도 유효하며 계속 신중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카스다와 민초스다 사이의 담을 헐고 화목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주장이 있었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이러한 주장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환영을 받는 발상이 될 수도 있다. 화목과 평화와 조화를 뜻하는 하나됨은 분명히 사람들에 의해 사랑을 받는 소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 “연합은 좋고, 분리는 나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세상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신앙인들 사이에서도 소위 불문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사고(思考)의 고뇌를 배제하는 이러한 공식은 역사의 교훈은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원칙에 무관심한 신앙인들을 함정에 빠트리는 올가미가 됨을 나는 말하고 싶다. 아마 하나님은 연합, 마귀는 분열을 추구하고, 선인은 하나됨을, 악인은 분리됨을 조장한다는 공식이 정답이라면 교회안에 존재하는 혼란의 근원을 우리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겠지. 허나 이러한 공식이 만유의 법칙이 될수 없음은 조금이라도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다 깨닫는 사실이다.

분리되어야 되는 것들은 나누어야 하고, 합해져야 되는 것들은 묶어야 함이 분별력을 지닌 사람들이 취해야 될 자세라고 나는 믿는다. 이 세상이나 교회를 막론하고 서로 다른 종자들을 함께 붙들어 매거나, 아니면 같은 종자들을 임의로 나누는 시도는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다. 처음으로 이 세상을 나누었던 분이 누구였는가? 바로 창조의 첫 시간에 어둠으로 부터 빛을 분리한 하나님이셨다. 바로 이러한 분리함의 행위에서 우리는 자연과 인간사 가운데 은혜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바이다. 빛과 어둠은 서로 공존 할 수 없으며, 그 둘을 합하여 동시에 가지려 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취할 수 없게되어 불확실과 불확신의 혼돈 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말 것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들어온 죄의 영향 때문에 지금의 세상은 혼돈으로 가득찼으며, 이제 교회안에서 조차 뚜렸한 경계선이 지워져 버렸고, 이사야와 에레미야의 눈물을 버린 목자들의 나태로 인해 양들만이 있어야 할 곳이 이제 염소들과 심지어 온갖 야수들도 섞여있는 불안한 동물원이 되어버린 지경이다. 그리고 그 교회안으로 들어 온 이질의 동물들은 화목과 연합의 깃발을 날리며 세상과 교회를 나누는 담을 더 헐자고 아우성을 치기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서, 종국에 양과 염소를 명확히 나누실 그 분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재림성도들은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진정 순수와 정조를 요구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교회라면, 이러한 혼돈 중에도 “누구 혹은 무엇과 합하고 무엇으로 부터 분리해야 하는가?”라는 고뇌의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나름대로 답을 하며 신앙 생활을 해야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서로 섞일수 없는 이질의 영적 존재들이 재림의 날까지 이 세상에서 공존해야됨에 의문을 제기하는 바가 아니다. 다만 그들이 하나되어야 하고 영적인 연대감을 지닌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뿐이다. 알곡과 가리지가 같은 장소에서 자라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두 다른 종들을 애써 인위적으로 타가수분(他家受粉)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의인과 악인이 똑같이 햇빛과 비의 해택을 이 세상에서 누리고 살지만, 그들이 서로 다른 도덕관을 무시하고 혼인의 결합을 하게될 때 그들의 부부생활은 평탄하지는 못한 것이다.

세상은 이러한 연합이라도 연합을 위한 연합을 해야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로마 교황권도 이러한 원칙을 내세우며 다른 종파와 종교들에 화해하자고 추파를 던져오고 있다. 이러한 하나됨의 우상을 위해 세상과 타협한 신앙인들은 그 어떤 값도 치를 마음이 있는 듯 보이는데, 하나님의 진리도 이 하늘과 지옥의 혼인을 축하하는 연회를 위해 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개념의 하나됨은 성경 말씀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하나됨임을 직시해야 한다. 아마 카스다와 민초스다 사이의 담을 헐고 화목해야 한다고 주장한 논객도 이 점을 깨닫고 있는 듯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 말씀을 구태여 (꼭 따라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일종의 “참고서”라고 하며 그 권위를 약화하려는 주장을 그가 계속함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하나님의 진리가 희생된, 성경 말씀에도 없는, 화해와 하나됨을 두려워하며 주춤하는가? 카스다와 민초스다의 화해를 외치며, 용서, 관용, 사랑 등의 아름다운 단어를 구사하는데, 이 고상한 단어들이 타협이라는 용광로를 거치고 나면 전혀 다른 형상의 예수를 만들고 전혀 다른 복음을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간구하신 하나됨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로의 초청이지, 세상의 혼란스러운 사조에 오염된 “믿음놀이”들과 하나됨을 말하는게 아니며, 그 하나됨은 세상이 우리를 모두 버려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라는 것임을 우리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적인 세상의 권력들은 “나누어 정복하라 (Divide and Conquer)”는 슬로건으로 그들 행동규범의 좌표를 삼고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마귀는 “합하여 정복하라 (Unite and Conquer)”는 전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려고 하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절실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성경말씀의 나침판이 가리키는 하나됨의 의미를 상실한 양들이 현란한 언변에 혹하여 변질된 “연합”의 절벽으로 몰려가 추락하기 시작할 때, 분별력있는 양들은 그 무리에서 탈퇴하여 분리함이 살 길인 것이다.

오늘날 재림 성도들 가운데 참된 성령의 능력이 회복되려면, 동질의 것들은 묶고 이질의 것들은 나누는 것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신중하고 냉정한 분벌력을 회복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오늘날 재림교회 안에서는 하나됨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 현명하고 용기있는 분리됨이 더 강조될 시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지금 많은 이들이 평화의 화목을 외치고 있지만, 진정한 부흥은 분리됨의 아픔을 겪은 후에나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세상의 핍박은 그래서 우리에게 임해야 되는 모양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요한 계시록 18:4-5)


김정대(JUSTIN KIM) 교우는 뉴저지 포트리 교회에 출석하는 평신도로 현재 재림 신앙과 신학 사이트의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