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회에 들어온 후 정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자유주의적 신학사조에 물든 사람들에서 부터 경직된 보수적 신앙에 빠져있는 사람들, 혹은 반교회 주의자들에서부터 재림교단 조직을 재림신앙 그 자체로 직결시키는 경직된 교권 주의자들까지 다 겪어 보았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자신의 신앙을 지켜 나갈 수 있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재림교회안에서 그리고 한 지역 교회의 평신도로 봉사하여 왔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는, 교회안의 여러 분야에서 성실히 정통적인 재림신앙을 지키며 봉사하는 많은 미국인 교회 지도자와 목사, 장로들 및 평신도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사심없는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긴 재림 신앙의 여정 중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이 신앙 동지들의 도움과 격려는 적시에 보내준 하나님의 크신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편향적인 근거에 기준해 부당하게 공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시에 누가 나와 같은 신학 사조를 견지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들을 내 신앙 동지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글이나 주장을 무조건 감싸주지 않는다. 한 개인이 얼마나 정직한 마음으로 신앙을 생활화하며 실천하는가를 보고 신앙 동지로 삼아도 되는지 아니 되는지 나는 판단하고자 한다. 그래서 내가 신앙동지로 생각하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 중에는 좀 자유주의적 신학 사조를 견지하는 사람도 몇 있다. 이러한 본인의 개인적 배경을 이해하신다면, 독자는 다음 글을 조금은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생애의 빛 선교 단체를 이끌던 (고) 강병국 목사가 그 어떤 종류의 죄론을 주장했기 때문에 그 이유만으로 그 죄론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일부 사람들이 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 전개의 이면엔 그가 펼치던 죄론의 성서적 합당성이나 논리성에 대해 한번 주의 깊게 살펴보려는 사람들의 정직한 시도조차 막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마치 일반 개신교인들이 안식일의 성서적 진리를 “안식교인”들이 주장하니까 무조건 잘못된 이설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태도와 너무 흡사한 것 같다. 개인적인 편견의 곽을 짜고나서 그것에 모든걸 마추려는 시도는 정말 보기에도 피곤하다.

영어로 이러한 빈약한 논리전개를 “guilt by association”, 즉 연좌제로 엮으려는 시도라고 부른다. 주로 정당한 논리전개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 사용하는 논증법으로서 양식적인 사람들에 의해 비난을 받아 마땅한 소행이다. 우리 재림교인들은 이러한 논증법에 휘말리지 말고 공정한 양심을 가지고 그 어떤 주장의 성서적 합리성과 논리성을 분별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사실 원죄론적 신학 사조에 반기를 들고나온 사람이 바로 요한 칼뱅의 제자였던 화란의 신학자 아르미니우스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요시하던 재세례파(Anabaptist)들을 이단으로 몰아 핍박하던 칼뱅은 그 당시 저명한 젊은 신학자였던 아르미니우스에게 그들의 주장이 이설임을 밝혀 정죄하는 글을 쓰라고 명하였다. 하지만 재세례파(Anabaptist)의 입장에 대해 조사하던 아르미니우스는 오히려 그들의 입장이 성서적이요 칼뱅의 원죄론 및 예정설등이 이설임을 깨닫고 오히려 칼뱅주의의 오류를 지적하는 글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 이후 아르미니우스의 신학 사조를 받아들인 기독교파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교파가 바로 요한 웨슬리가 창시자인 감리교회였고, 그 후예로 더 일관성있게 아르미니우스적인 인간론과 죄론을 확립한 무리가 바로 제칠일 안식일 재림교회다. 지금은 감리교회도 원래의 입장에서 많이 멀어져 갔고, 재림교회만이 아직도 기본적으로 아르미니우스적인 신학 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 교회 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다 인정하고있는 사실이다.

정말이지 우리가 정직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강병국 목사가 주장하던 인간론과 죄론이 재림교회가 오랫동안 견지해 오던 인간론과 죄론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문제는 그가 그러한 교리적 입장에 걸맞는 격위있고 일관성있게 성화된 언행을 보여주지 못하여서 오히려 교회 안이나 교회 밖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신학적 입장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한 것이 잘못이지만, 그가 주장하던 인간론과 죄론은 오히려 원죄론적인 인간론과 죄론을 주장해온 일부 원로 목회자들과 그들 후배 목회자들의 주장보다 오히려 우리 재림교회의 공식 신조가 밝히는 인간론과 죄론에 더 가깝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강병국 목사가 견지하던 인간론과 죄론은 재림교회안의 많은 지도자들과 전도자 및 목회자들의 입장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구태여 몇 예를 든다면, 테드 윌슨 대총회장, 덕 베철러 목사를 비롯한 어메이징 팩츠 선교 기관의 목사들과 전도자들이 그렇다. 그렇다면 교회의 이런 지도자들이 생애의 빛 강병국 목사의 주장과 동일한 주장을 하기 때문에 그들이 인간론과 죄론에 대해 이설자들이란 말인가? 아니지 않는가? 그러하기에 강병국 목사가 주장하던 죄론이 그가 하기에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주장은 누가 봐도 설득력이 전무하기에 감히 맨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사실 강병국 목사가 견지하고 주장해온 대부분의 메세지들은 그의 고유한 기별이 아니다. 그러한 기별은 이미 견실한 재림 교회의 목자들과 성도들이 전파해 오던 정통적인 재림 기별이라고 보는 편이 공정한 자세다. 강병국 목사의 신학관이 본인의 신학관과 많이 유사하지만, 내가 강병국 목사를 개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보여준 오랜 삶의 행적이 그가 주장해 오던 신학적 사조에 걸맛지 못한 면이 많았고 결국 재림 교회를 바벨론으로 명시하면서 반교회 주의자의 길로 들어서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그 어떤 특정한 개인에 대한 사적 감정을 버리고, 상반되는 주장들을 성경말씀과 예언의 신 글과 비교하면서 그 상반된 입장의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분별하도록 한인 재림 성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다. 그것이 양심적이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나는 생각한다. 목회자들과 평신도 모두를 포함해 한인 재림 교인들이 그러한 양식있고 고결한 신앙 태도를 유지하고 보여 준다면 그리스도께서 바라신 연합의 정신이 한인 재림 교회안에 풍성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사도행전 17:11, 새번역)


김정대(JUSTIN KIM) 교우는 뉴저지 포트리 교회에 출석하는 평신도로 현재 재림 신앙과 신학 사이트의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