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과 1974년에 열렸던 대총회 연례 총회에서 다음의 고무적인 호소문들이 작성 결의되고 공포된지 거의 50년이 흘렀다. 그 당시 세계 전역에 흩어져있던 재림 성도들은 행동을 촉구하는 큰 나팔 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의 명예, 그리스도의 명예는 우리의 품성을 온전케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하며, 우리의 “생애를 성령님으로 하여금 꼴지우게 허용하여. .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모든 죄를 이기는 과업에 헌신하고. . .예수님을 자신의 모든것들에서 모본으로 삼고있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보자는 마지막 세대 신앙을 촉구하는 이 호소문에 의해 고무된 많은 성도들이 있었던 한편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은 또 다른 이들도 있었다. 그 결과 우리는 아직도 하늘 이편의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지난 50년 가까이 세상과 교회 안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 그 불려졌던 나팔 소리를 다시 들을 때가 왔다. 이 메시지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독자들의 마음도 감동 감화시켜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이 호소문에 응답하여 죄악스런 이 세상을 버리고 영생을 구할 은혜의 시간이 아직도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들 속에 완전하게 재현될 때에, 그분은 그들을 당신의 것으로 주장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이다.” (실물교훈, 영문 69페이지)
연례 총회에 모인 지도자들이 교회에 드리는 말씀
지난해인 1973년에 열렸던 연례 총회때 그 자리에 참석한 회중위에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대표자들의 마음을 새롭게 각성시켰으며 하나님을 향한 깊은 동경심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부흥의 절심함과 개혁의 필요성을 감지하게 되었고, 이러한 진지한 경험의 결과로 그 회의에 참석한 대표자들은 세계 전역에 산재해 있는 재림 성도님들에게 간절한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호소문은 우리 교회가 라오디게아적인 상태 (요한 계시록 3:14-22 참조) 에 처해 있으며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들 속에 완전하게 재현” 되지 않았음 (실물 교훈, 69페이지) 을 인정하였고,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두번째 오심이 오랫동안 지연되어 왔으며 . . . .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앞에 놓여있는 중요한 과제는 우리 주님의 재림을 촉진시키기 위해 개인적이거나 단체적인 일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다시 편성하는 것임” 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러한 간곡한 호소에 대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아주 깊은 감동적인 반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목회자들은 이 호소문을 그들 설교의 토대로 삼았으며, 어떤 지역들에서는 사역자 회의 전 시간을 이 호소문이 제기한 여러 이슈들에 대해 연구 논의하는데 할당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모든 지역에 있는 교우들이 교회 지도자들이 느꼈던 바처럼 재림 운동의 최우선 관심 사항은 영적이고 신학적인 면이지 조직적인 면이 아니라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 아무리 우리가 최고의 현대 경영 원리들을 이용하여 완벽한 세계적 기구를 창출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하여 이 교회가 가진 독특한 기별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의 완수에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올바른 신학에 달려 있습니다.
간단명료한 진리는 구별되는 그리스도인 경험과 생활양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로 부터 기대하는 바를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바라심을 좀 더 잘 협조적으로 이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연례 총회에 참석한 대표자인 우리는 부흥과 개혁을 위해 지난 1973년 연례 총회가 발표한 호소문의 동기가 된 개인적이고 단체적인 회개의 정신이 앞으로도 계속 전 세계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 1973년 호소문이 묘사한 우리 교회의 상태가 아직도 그러하며 따라서 부흥과 회개와 개혁의 필요성은 아직도 분명히 살아있습니다.
이 교회에게 주어진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우리가 영적으로 향상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가 우리 백성들앞에 항상 제시되어져야 하며, 지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요한 계시록 14:12) 백성들을 준비시키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 전체 교인들이 분명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충성되고 참된 증인”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모든 시험을 견디고 이긴 자들은 어떠한 대가도 감수하고 참된 증인의 권고에 유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늦은비를 받고 승천하기에 합당한 자들이 될 것이다.” (교회 증언 1권, 187페이지)
그러한 백성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행실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유지되어지는 삶 (즉 예수의 믿음이 예수의 성품을 가져오는 삶) 의 결과임을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안 기쁨과 평화를 발견케 될 것입니다.
그러한 백성들은 또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을 입증하는 일과 대쟁투의 쟁점을 결정하는 마지막 과업에 기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예, 그리스도의 명예는 당신의 백성의 품성을 온전케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시대의 소망, 671페이지) “구주께서는 무슨 목적으로 그분의 신성이 인성과 연합되었는가에 관하여 당신의 제자들이 이해하기를 심히 갈망하셨다. 그분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셔서 그 회복시키는 능력으로 인류를 향상시키시고자 함이었다. 예수께서 저들 가운데 나타나시는바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나타내신바 되셨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당신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가질 수 없는 어떤 특성을 나타내시거나 어떤 능력을 행사하지 않으셨다. 그의 완전한 인성은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 복종한다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시대의 소망, 664페이지) 이러한 광명된 약속이 믿는 사람의 생애에 현실화되게 하기위해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유전적이며 배양된 악에의 성향들을 이기며 당신 자신의 품성을 당신의 교회에 새기는 거룩한 능력으로서 당신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시대의 소망, 671페이지) 완전한 대비책이 이미 강구되어졌으며 우리가 홀로 서도록 내버려져 있지 않음을 주지합시다.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은 가장 높은 인간의 생각이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명령은 일종의 약속이다. 구속의 계획은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을 계획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죄를 깊이 뉘우치는 영혼에게서 죄를 분리시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역사를 멸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며, 모든 회개하는 영혼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보전할 만반의 대비책을 세우셨다.” (시대의 소망, 311페이지)
가정과 이웃 그리고 직장에서 나타내지는 하나님 백성들의 올바른 생활 태도는 이 우주의 만유 주재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시며, 모든면으로 현명하심을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통하여 의의 원칙에 순종하는 결과를 보여 주심으로써 사단의 비난에 대답하고자 하신다. . . .하나님께서 오늘날 당신의 백성들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은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그들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셨던 것과 동일하다. 교회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공의와 사랑을 바라봄으로써, 세상 사람들은 그분의 성품이 어떠함을 알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이 생애에서 구현될 때, 세상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섬기는 자들이 지상의 모든 다른 사람들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 . .그분의 거룩한 교훈을 실천하는 자들이 우수한 백성이 되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다. 영감의 영에 의하여 모세가 기록한 다음의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에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해당된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신 7:6)” (교회 증언 6권, 11-12 페이지)
교회의 지도자들로서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 이 모든 교인들의 개인적인 삶속에 반영되어야 할 뿐아니라 더불어 재림 교회에서 발해지는 모든 설교들과 서적들 및 학교, 병원, 출판기관등의 교회 기관들에도 명확히 반영되어야 함을 절감합니다. “재림 신앙의 길이 타 종교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라는 질의에 대한 답은 이 남은 교회의 그 어떤 종류의 양상과도 접하게 되는 모든 이들에게 분명히 들어나야 할 것입니다. 재림 신앙의 목표는 무엇보다 먼저 질(質)이지 양(量)이 아닙니다. 그러한 목표는 그것이 의료 사업, 교육, 구호 사업이거나 혹은 전도 집회나 안식일 아침에 행해지는 설교들인지를 막론하고 다른 조직체들이 행하는 일들을 그저 그들 못지않게 잘하는 정도로 성취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재림 신앙인이 하는 것들은 무엇이거나간에 명백히 세상과 달라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이 분명하고 거룩한 노선에서 세상에 제시되도록 계획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그들의 생애를 통하여 세속적인 것보다 월등한 그리스도교의 장점을 보여주기를 바라신다. 우리의 모든 사업 거래에 있어서, 세상의 원칙보다 하늘의 원칙이 우월함을 실증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그분의 은혜에 의해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세속적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 증언 7권, 142페이지)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교회 기관들이나 개개적인 전문 업무들이 세상에 이러한 영향을 줄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느 누구도 외면하지 못할 정도로 뚜렷히 표출되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가 되어야 하며 또 재림 교회 기관을 설립하는 이러한 근본적인 목적에 보탬이 될수 있는 사람들만으로 그 기관에 종사하도록 해야함을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깨닫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예수의 형상을 충만하게 반사하여야” 할 존재는 개개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문집, 71페이지)
그러므로 우리는 호소합니다. 각 지역에 계시는 성도 여러분들께서 어느 정도 자신의 생애를 성령님으로 하여금 꼴지우게 허용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모든 죄를 이기는 과업에 얼마나 헌신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심각하게 예수님을 자신의 모든것들에서 모본으로 삼고있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보시도록 말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기술된 다섯의 미련한 처녀로 묘사된 이들 중엔 분명히 교회에 잘다니고 있는 재림 교인들 혹은 우리 재림 신앙의 독특한 진리들을 여러 성경절들로 잘 대변할 수 있는 교인들까지도 포함되 있음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 “미련한 처녀들”은 결코 위선자들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분을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 (마태 1:21) 하기 위해 오신 자신들 개인의 구주로서는 잘 알지 못했던 이들인 것입니다.
그와는 달리 슬기있는 처녀들은 자신들의 생애가 성경의 원칙들에 의해 꼴잡혀 지도록 허용한 이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는 좀더 밝은 통찰력을 가지게 하며 자신을 하나님의 사업에 좀더 유용하게 쓰여지도록 도우는 건강 생활이나, 보다 헌신적으로 안식일의 경건성에 신경쓰며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적인 축복에 대한 청지기 역할에 주력하는 일, 혹은 자신의 입과 귀를 통해 집중적으로 침투해 영혼을 오염시키는 주위의 좋지못한 영향들에 대해 각별한 검토를 하는 일이든지를 막론하고, 이 슬기로운 처녀들은 성경 말씀과 예언의 신 권면들로 하여금 그들 모든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표준으로 세우는 하루 하루의 습관을 형성해 가는 이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무엇이든지 기쁘게 응하는 마음으로 생애의 결정들을 직면하는 슬기있는 처녀들에게는 “왜 진정 이런것을 하면 않되는가?” 라는 마음의 질문이 점차로 줄어들게 되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성도들께서 진지한 성경 연구와 말씀의 묵상 및 기도를 매일의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삼아 이행하도록 호소하는 바입니다. 더불어 거듭 권유하는 바, 여러분들께서 성실한 안식일 교과 공부에 힘쓰시며 특히 시대의 소망, 실물 교훈 및 정로의 계단과 같은 화잇 부인의 글들을 조직적으로 구독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생애의 대부분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당신의 하늘 아버지께 능력을 호소하는 기도로 보냈는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이 하물며 이것을 등한시해서야 되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품성을 반영하는 삶이 복음의 전파에 필수적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교인이 그의 성품에 있어서 좀더 그리스도와 같이 되면 될수록 그는 더욱 인자하고 매력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그러한 면들이 그의 일반적인 영혼 구원 활동에 진실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특히 그 자신의 가족과 이웃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욱 그러합니다. 재림 성도들의 한 세대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이룰 수 있는 증거물들이 되기로 진실로 작심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편에 서거나 혹은 그 분을 대적하게 하는 마지막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때가 더 이상 지연되지 않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유예 기간의 종결로 자주 말해온 세상 인류 전체를 향한 그 마지막 결정의 순간은 지금 너무 오래 지연되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844년 이후 여러번의 중요한 시기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의 역사를 끝마치기를 원하셨지만, 당신의 백성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다리고 계신지 깨닫는데 실패했으며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뜻에 협력하기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화잇 부인은 1879년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시간이 명백히 연장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언행에 있어서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위험을 알지 못하며, 그들 장래의 불멸의 생명을 위한 품성을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인, 유예의 기간을 연장시켜 주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고 이해하지 못한다. 매순간은 가장 고귀한 가치가 있다. 시간이 주어진 것은 그들 자신의 안일함을 탐구하고 세상의 거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결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모본과 개인적인 노력으로 자신들의 품성의 결함을 극복하고 남을 돕는 사업에 사용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혼인 예복 없이 발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믿음과 거룩한 소망 가운데 빠르게 성취되는 예언의 도표를 따라가며, 진리에 순종함으로 자신들의 영혼을 정결케 하려고 노력하는 한 백성을 이 땅에 가지고 계신다.” (교회 증언 4권, 306-307페이지)
우리는 모든 곳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께서 자신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촉진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재림을 지연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실 것을 호소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지금 인간적인 이해력의 범위를 넘어선 그 어떤 방법들로 당신의 교회를 위해 개입하기를 바라시며, 또 헌신된 성도들의 개인적 생활은 물론 그 어느 날 명확성과 힘있는 메시지로 세상을 깜작 놀라게 할 비약적인 공중 전도를 통해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도저히 열수 없는 문들을 여시고자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서 “왜 우리는 주님을 계속 기다리시게 하고 있는가?” 라는 질의가 모든 재림 성도들의 가정과 크고 작은 모든 교회들의 집회가운데 항상 제기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기에는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하시고자 했던 당신의 역사를 지금 이 세대를 통해 이루실 마음이 계십니다. 우리가 또한 확신하는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타락치 않게 할 충분한 능력이 있으며 (유다서 24절), 죄와 유혹가운데 살아가는 인간들이 예수님께서 죄를 극복하신 것처럼 이기고 극복할수 있음을 (요한 계시록 3:21),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사는 생애가 가장 행복하고 친절하며 믿음직한 백성들을 이 세상에 창출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통하여 증명하실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의 긴박성과 이 세상의 비탄,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수심에 잠겨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며 각 개인들에게 주어진 유예의 기간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주어진 과업을 감당하여 탁월하게 그일을 완수하는 백성들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임무는 바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이사야 60:1-3) 였습니다.
이번 1974년 연례 총회에 참석한 대표자들인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이 바로 특별히 이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한 기별임을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별한 진지함으로 우리는 호소합니다. 대총회와 각 지회들, 연합회들과 합회들은 물론 여러 선교지 기관과 단체들과 개 교회들에서 지도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모든 이들은 우리의 일반 사역자들과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형상을 충만히 반영하는” 깊은 영적인 경험을 가질수 있도록 인도하는데 힘쓰기를 호소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이 교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 . . . 영원한 복음” (요한 계시록 14:6)을 전하는데 최대의 효율성을 발휘할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주님의 일꾼들이 이렇게 자신들을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하도록” (요한 일서 2:6) 그리스도께 접목하게 될때, 늦은비 성령의 기운이 완전히 느껴지는 날이 재촉될 것이고, 이 땅이 요한 계시록 18장에서 언급된바 처럼 천사의 영광으로 환하여질 것이며, 결국 그의 신성한 약속대로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 Review and Herald, November 4, 1974 (리뷰와 헤랄드 잡지, 1974년 11월 4일자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