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문창길(CHARLES MOON) 목사의 저서 「크리스천의 필수지식」 제2부 “성경의 가장 영광스러운 성육신 진리” 5장에서 발췌한 글이다. 재림신앙과 신학 블로그 사이트에 게재하도록 허락해 주신 저자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이 책을 구입하기를 원하는 분들은 한국이나 미주의 시조사로 연락하시기 바란다.


A.   서 론

20세기 중엽에 이르러 재림교회가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유혹을 쉽게 받아들인 데에는 그 시대의 사회적인 요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로 접어 들어가는 시대의 북미대륙의 사회적 환경은 극적으로 변화되어 갔다. 미국 사회는 신속히 산업화되고 도시화되었다. 청교도 정신은 사라져가고 더욱 세속적이며 실용주의 사상이 지배적이 되었다. 유럽 대륙에서 이주하는 많은 이민자들을 통하여 세속적인 사상들이 미국 사회에로 흘러들어왔다.   

특히 진화론과 성경 고등비판은 세속적인 정신을 가지게 된 미국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 오신 사실을 공공연히 거부토록 인도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이 평창해가고 고등비판을 환영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전통적 가르침을 말살시키려 하였다. 세계1차 대전(1914-18)이 끝날 즈음, 이러한 시대적 경향에 반발하는 프로테스탄트 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Fundamentalism) 운동을 일으켰다. 

현대주의에 저항하는 근본주의는 성경의 축자영감과 무오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리고 부활을 옹호하였다. 재림신자들은 복음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그 근본주의 사상이 저들의 기질이나 신앙에 가장 가까운 교리가 아닌가 하였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은 재림교회를 여호와증인, 모르몬교, 크리스천 사이언스 등과 같이 이단 그룹으로 취급하는 것이 마음에 거리끼는 문제가 되였다. 

어떤 재림신자들은 자신들이 이와 같이 복음주의 교파들로부터 이단시 되는 일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였으며 1888년 이래 율법 이상으로 믿음을 옹호하는 재림교회가 언제까지 크리스천 세계에서 이단시 되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신분을 가지고서도 과연 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들을 품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재림교회를 변신시킨 유혹이 접근한 것이다.  

1955년과 1956년에 복음주의 교회와 재림교회 대표가 18회의 회합을 마치고 1956년 9월호 이터니티(Eternity) 지는 제칠일안식일재림교회는 이단이 아님을 전 세계에 공포하였다. 이와 때를 맞추어 미니스트리 (Ministry) 지는 재림교회의 새 그리스도론을 발표하였다. 재림교회는 순간적으로 셋째 천사의 기별의 사명을 잊고 변신한 것이다. 그리고 저들의 이와 같은 변신을 그 다음 해에  교리에 관한 질문들이라고 제목 한 책 출판으로도 나타내었다. 셋째 천사의 기별 회복을 구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완강히 투쟁하였다. 본장에서는 교리에 관한 질문들이라는 어떠한 책이며 여기에 어떠한 투쟁이 전개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B.  교리에 관한 질문들에 관하여  

1957년, 미니스트리 지의 새 그리스도론 발표가 있은 다음 해에 재림교회는 교리에 관한 질문들(Questions On Doctrine)이라고 제목 한 책 14만권을 출판하고 전 세계 크리스천교계에 배부하였다. 그 책의 내용이란 침례교 청년 마틴이 제출한 48 질문들의 해답으로 준비된 것이며 프룸, 앤더슨, 리드(W. E. Read) 등 소수 재림교회 학자들에 의해서 준비된 것이라 추정되지만 확실히 누가 그 저자들이었는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밝혀지지 아니하였다. 그 책의 출판과 동시에 월터 마틴은, 전날에 서로가 합의한 바와 같이, 제칠일재림교도들의 진실(Truth About Seventh-day Adventists)이라고 제목을 붙인 책을 출판하였다.

교리에 관한 질문들은 재림교회가 정통 크리스천이라는 인증을 받고자 복음주의자들의 질문들에 대해서 해답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남긴  다. 그 책에는 은혜에 의한 구원, 도덕적 율법과 의식적 율법, 광야에 버려진 속죄양, 미가엘의 확인, 기본신조와 실천, 교리와 예언을 포함한 광범위 한 제목들이 취급되었다. 그러나 일반 크리스천교회들이 관심 갖지 아니한 성육신 진리의 깊이에까지는 들어가지 아니하였다.   

교리에 관한 질문들은 일반 개신교의 신임을 얻고자 하였으며, 첫째로,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이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음을 표명하였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진리임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재림교회와 다른 개신교회들의 복음의 가르침이 대동소이하게 되었다. 그 책은 일반 개신교 교회들이 가르치는 것과 같이 십자가에서 구속 사업이 완성되고 완결되었음을 강력히 변호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재림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은 아니었다. 재림교회가 전통적으로 가르쳐 온 구속의 과학이란 근본적으로 성소제도에 기초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은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으며 그리고, 대제사장이 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간 것과 같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가지고 하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셔야 하였다. 세 천사의 기별이란 하늘 성소에서 주어진 기별이며 만일 우리가 십자가만을 쳐다보고 하늘 성소를 주목하지 않는다면 세 천사의 기별은 무산 되는 것이다.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의 하늘 지성소의 중보사업의 중대성에 대하여 요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하늘 성소에서 인류를 대신하는 그리스도의 중보는 구원의 경륜에 있어서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처럼 필수적이었다,”“구세주의 중보의 혜택을 입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성결을 완성하기 위한 저들의 의무에 아무 일에서도 방해를 받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 대제사장의 사업에 대하여, 성소문제와 조사 심판에 관한 문제를 분명히 이해야야 할 것이다”(GC 488-89).

성소제도란 하나님이 죄인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지구와 우주에서 그 죄의 뿌리를 어떻게 처리하고 소멸시킬 것인가 하는 구속사업의 전반적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청사진이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지성소에서의 마지막 구속 사업은 고대 이스라엘의 대속죄일로 전형적으로 예표 되었던 것이며 인류 구속에 있어서의 절정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둘째로, 교리에 관한 질문들은 일반 개신교의 신임을 얻고자 하여 재림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버리고 그리스도는 아담의 타락전의 죄 없는 인성을 취하셨음을 변호하려고 하였다. 사실 이 가르침을 저항한 재림 선구자들은 그 가르침을 신 신학이라고 불렀다. 우리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이 죄 있는 인성-육신을 취하셨음을 가르쳤었다.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함으로써 온전한 대속이 가능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 신학은 성경의 가장 영광스러운 성육신의 진리를 거부하였으며 그리스도는, 우리와 온전히 다른 존재로서,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가진 인성을 취하셨음을 변호하였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가 죄 없는 사람으로 태어남을 사람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마리아는 잉태 전에 원죄가 없는 본성으로 기적적으로 바뀌었다는 괴상한 교리를 조작해냈다. 그런데 신 신학은 그 교리를 수용한 것이다. 

우리 재림교회는 그리스도는 아담의 타락 후의 인성 곧 우리와 같은 죄 있는 인성을 취하셨지만 죄 없는 품성을 지니셨음을 가르친다. 이 진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가톨릭의 원죄론으로 인하여 혼돈하고 그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였다. 죄와 죄의 결과에 대하여 설명한다. 죄의 결과는 유전되는 것이지만 죄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비의 죄를 그 아들에게 물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가 죄 있는 인성을 취하셨다는 진리를 그분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본성과 품성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인간의 본성 즉 죄의 본성은 유전되는 것이지만 품성은 유전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인간의 죄의 본성을 유전 받고 탄생하셨지만, 다윗과 그 후손들의 품성은 유전 받지 아니하셨다. 그분은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여 생애하시고 죄가 없는 품성을 지니셨다. 

1956년 미니스터리 지를 통하여 재림교회의 새 그리스도론을 발표한 대총회 목회부장 앤더슨은 교리에 관한 질문들 준비에 있어서도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우리의 인성과의 차이를 이와 같이 진술하였다. “우리는 태어날 때에 부모의 타락한 죄의 본성과 죄로 달리는 경향을 유전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죄가 없으셨다. 그분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기는 하셨지만 그분의 본성과 생애에 죄가 전연 없으셨다”라고 진술하였다. 

교리에 관한 질문들의 출판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 또 한 사람은 연구가요, 학자요, 역사가로서 재림교회에서 존경받은 저자 프룸이었다. 프룸은 와그너가 고후 5:21을 인용하고 “그리스도에게 죄가 씌어 졌을 뿐만 아니라 실지로도 죄의 본성을 취하셨다”라고 언급한 것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는 그 이상이 되시는 분으로서 “그분은 실지로 우리 대신으로 죄가 되셨다”라고 기술하였다. 

우리 보통사람들은 위의 두 사람의 주장들과 재림교회 전통적 그리스도론을 혼돈할 수 있다. 우리는 재림교회 전통적 그리스도론과 교리에 관한 질문들이 변호하려고 하는 그리스도론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 그리스도의 인성과  교리에 관한 질문들의 두 저자들이 변호하려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다시금 우리는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서로 대조해 볼 수 있다:

  • 전통적인 그리스도론:  “죄 있는 인성을 취하셨다”
  • 앤더슨의 그리스도론: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셨다”
  • 프룸의 그리스도론:  “우리 대신으로 죄가 되셨다” 

1956년 9월, 교리에 관한 질문들의 원고가 준비되고 그 출판에 앞서서, 프룸에 의하면, 검열과 후원을 위하여 250권의 견본을 대총회의 각부서와 그 산하에 있는 모든 기관의 기관장들, 목사들과 교사들에게 배부되었는데 그들로부터 얻은 응답은 긍정적이었으며 고무적이었다고 보고되었다. 그리고 그가 저술한 저서(Movement of Destiny, 1971)에서도 각계 학자들이 만족하였으며 특별히 그들이 중시한 부분은 그리스도론에 관한 진술이었었다고 언급하였다. 사실 그 교리에 관한 질문들이 출판되었을 때에 모두가 흥분하고 기뻐하였으며 그 책의 기별을 전하는 일에 적극적이 되었다.   

대총회 목회부장 앤더슨은 “재림교회와 다른 크리스천교회들 사이에 가로놓여 있었던 신학적 장애가 제거되고 재림교회의 가르침이 전 세계에 천명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늘의 거룩한 뜻이었으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라고 표명하였다. 시조 편집인 맥스엘(Arther S. Maxwell)은 “근대 교회사에서 일어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이것은 마치 수소폭탄이 폭발하는 것과 같다”하며 찬사를 보내었다. 

그러나 그 교리에 관한 질문들은 화잇, 스미스, 와그너, 존스, 프레스캇, 월칵스, 하스켈 등 재림선구자들이 옹호한 성육신의 진리-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죄의 육신을 취하였다는 가르침을 묵살시키려 하였으며 그리고 셋째 천사의 기별을 땅에 매장시키려고 한 것이다.  

C.  성육신 진리 회복을 위한 투쟁      

1956년 대총회의 기관지 미니스트리를 통하여 재림교회의 새 그리스도론이 발표되고 교리에 관한 질문들의 원고가 완성되었을 때에 여기에 첫 번째로 강력한 반발을 나타낸 사람은 재림교회 대학교들과 신학교의 교수요 1950년대의 유력한 신학자로 알려진 앤드리어슨(M. L. Andreasen)이었다. 그 책의 부록에 엘렌 화잇의 원뜻을 어기고 그리스도가 죄가 없는 인성을 취한 것으로 인용한 앤더슨과 리드(W. E. Read)가 교단을 배신하고 불의를 행하였음을 대총회장 피규(R. R. Figuhr)에게 고발하였으며 그들을 해고시키고 그 책의 출판을 중단시킬 것을 호소하였다. 그리하여 대총화와의 치열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앤드리어슨은 교리에 관한 질문들이 첫째로,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의 가치를 저하시키고 단지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의 응용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킨 사실을 특별히 공박하였으며 도합 7 통에 달하는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리하여 “만일 십자가의 희생이 구속의 완성이요 최종이 된다고 한다면 우리의 성소교리, 조사심판, 2300주야 예언, 그리고 엘렌 화잇의 지도력은 모두 땅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라고 언명하였다.

둘째로, 그는 그 책의 새 그리스도론을 공박하였다. “과연 그리스도는 아담의 자손들을 부패시켜온 정욕(passion)과 부패를 유전 받는 일에 있어서 제외 된 분이신가?”하고 질문하며 그 해답을 히브리서 2:10과 2:17을 인용하고 설명하였다. 만일 그리스도가 인간의 정욕에서 제외되신 분이라면 정욕의 면제를 받지 못한 일반 사람들과는 온전히 다른 존재가 되실 것이다. 이러한 신 신학의 가르침은 비극이며 재림교회가 지금까지 가르치고 믿어온 것에서 완전히 배치되는 일이라고 평론하였다. 

셋째로, 그는 다른 교단의 한 목사의 영향을 받은 우리 지도자들이 우리 재림교회의 신학과 교리의 치명적으로 중대한 주춧돌이 되는 신조를 변경시킨 사실은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교리에 관한 질문들의 저자들이 누구인가를 밝히지 아니한 것과 그 책의 새 교리는 재림교회의 어떤 신조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이며 대총회 회의에서 가결한 것도 아님을 지적하고 그는 그 책의 출판을 보류할 것을 간곡히 호소하였다.

그러나 대총회는 그의 호소를 무시하였으며 1957년 하순에 예정대로 그 책을 출판하였다. 놀라운 일은 그 책은 재림교회의 시대적 필요를 가장 적절히 나타낸 책으로 평가되었으며 널리 보급되었다. 대총회장 피규는 1958년 정월 미니스트리(Ministry) 지에 “이 책의 출판에 있어서, 이 책만큼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점검된 책은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라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피규는 앤드리어슨에게 “이제 모든 일이 다 끝장났습니다!”라고 선언하였다. “그 이상으로 분쟁을 연장시킨다면 부양료지급에 변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하고 경고하였다. 여기에 앤드리어슨은 이와 같이 회신하였다. “투쟁을 중단하여야 할 표적이 아직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당신들은 모든 일이 끝장났다고 말하면서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일은 아직 끝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러한 위협을 가지고서는 일을 결코 끝낼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그리고 그는 교리에 관한 질문들의 가르침을 옹호하는 대총회의 지도자들을 배교요 이단으로 낙인을 찍었다.

목사 신임서는 회수되고 은퇴금 지급은 중단되었으며 그의 저서들은 교단의 서점에서 완전히 제거되었다. 그렇지만 앤드리어슨은 생애가 마치는 날까지 그의 투쟁의 손을 결코 놓지 아니하였다. 1959년 2월에 시작하여 그는 교회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고 제목의 한 새로운 문서를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출판물은 재림교회에 널리 배포되었다. 그 문서들은 앤드리어슨이 이 세상에 남긴 그의 마지막 신학적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당시의 투쟁의 진실이 무엇이었는가를 말해 주는 역사적 증거로 남는다. 

대총회와 일반 지도자의 교리에 관한 질문들 출판에 대한 태도는 적극적이었지만, 앤드리어슨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에 심상치 않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엔드리어슨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신 신학에 도전하며 재림교회의 전통적 신앙과 그리스도론을 위하여 투쟁한 하나님의 종이란 엔드리어슨 그 한 사람으로 결코 끝나지 아니하였다. 그때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뒤를 따라가는 투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존속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종들의 이름과 역사를 여기에 다 열거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들 가운데서 두 사람의 역사만은 여기에 마지막으로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1955년과 1957년 재림교회와 복음주의자 대표들이 비공식적인 회합들을 하고 있었던 그 같은 시기에, 일반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조용한 장소에서 조용히 그 시대와 앞으로 올 시대의 쟁투를 대비하는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던 또 한 인물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니콜(Francis D. Nichol)이었다. 1945년에 그는 리뷰 헤랄드 지의 편집인으로 임명 되었으며 그의 생을 마감하는 1966년까지 그 같은 자리에 머물었던 사람이었다. 

니콜의 많은 업적들 중에서 특이한 것은 복음주의자와 재림교회 대표들이 소 그룹 회합을 진행하고 있는 기간에 그의 지도 밑에 약 40여명의 신학자들이 재림교회 성경주석 편찬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진술한 신약전서의 두 서신들 가운데서 히브리서는 재림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의 열렬한 옹호자인 앤드리어슨 그 자신이, 로마서는 보수 신앙을 가진  맥스웰(A. G. Maxwell)이 맡아 주석을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완성시킨 7 권으로 된 그 성경주석은 교리에 관한 질문들이 출판되는 바로 그 같은 1957에 출판되었다. 물론 그 주석에 신 신학 사상이 침입할 수 있었던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각 권의 주석 마지막 부분에는 재림교회의 역사적인 가르침을 보충 확인해 주는 엘렌 화잇의 글 인용문들을 첨부시켰다. 이러한 인용문들 중에서 그 몇 견본을 요약하여 여기에 열거해 보겠다: 

창 3:15:  영광의 왕은 자원하여 자신을 낮추고 인간의 타락한 신성을 취하실 것을 제안하셨다. 그리하여 아담을 이긴 원수와 접전하셨다. 

  • 마 4:1-4:  인성과 신성을 같이 가지신 구세주는 아담의 자리에 서셨으며 거의 6주간의 육체에 혹독한 금식을 참고 견디셨다. 
  • 눅 22: 44:  그리스도는 우리의 허약함을 취하셨다. 그분은 단순이 육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죄 있는 육체와 같은 육체가 되셨다.   
  • 요 1:1-3, 14: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이 육체로 시험을 받으시고 범죄 할 수 있었으나 그분은 한 순간도 죄의 성향을 나타내지 아니하셨다. 
  • 빌 2:5-8: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우리에게 전부가 된다. 그것은 우리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매는 황금사슬이 된다. 

일곱 권의 성경주석 출판에 이어 1958년에 엘렌 화잇유산관리부는 오늘 우리들에게 가려 뽑은 기별로 알려진 책 1권과 2권을 출판하였다. 이 책들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가장 명백하고 의의 깊은 엘렌 화잇의 진술들이 내포되었다. 그 2권에는 1901년 대총회에서 엘렌 화잇이 거룩한 육체운동을 논박하였던 설교 문이 포함되어 있다. 

랄프 라손(Ralph Larson)은 목사, 전도자, 부서장, 선교사, 신학교수 등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한 큰 뜻을 세우고 신 신학이 본 교단에 침입하기 이전의 1852년부터 1952년까지 100년 기간 동안 모든 공식 교회 문서들을 조사하고 그리스도가 죄의 육신을 취하셨음을 증언한 인용문들을 총계 1200개를 수집하여 년대 순으로 정리하였다. 그가 이와 같은 프로젝트를 실시한 것은 성경공부나 신학연구가 목적이 아니었고 오직 재림 신자들이 전통적으로 믿어온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데에 있었다. 그가 찾은 1200개의 증언들 중에서 400개는 엘렌 화잇의 펜에서 온 것임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서 그는 1986년 즉 신 신학이 본 교단에 침입한지 130년이 지나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Word Was Made Flesh)라고 제목 한 책을 출판하였다. 그 저서에서 그는 엘렌 화잇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나타내는 데에 자주 사용했던 낱말들로서 죄의 본성, 타락한 본성, 유전된 죄의 본성, 욕정(passion), 성향(propensities) 등이 어떠한 뜻으로 사용 된 것인가도 밝혔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그는 그리스도가 그분의 거룩한 신성을 타락한 인류와 연결시키고 그 자신을 인류의 연약함과 천박함으로 확인하신 사실도 예증해 보였다. 

우리는 혹시 라손 교수의 저서를 한번 참고할 생각은 없는가? 나는 그의 저서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에 나의 정력이 온통 그의 저서 안으로 땅겨 들어가는 뜻한 느낌을 가졌었다. 그 저자는 그의 책 마지막 페이지에다가 현상금 1000불을 건다는 광고를 선전하였다. 누구든지 화잇유산관리부에 소장된 엘렌 화잇의 글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죄가 없는 육신 즉 아담의 타락하기 이전의 죄 없는 육신을 취하셨다는 한 마디 증언을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현상금 1000불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오늘 우리도 한번 시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상금을 받았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D.  결론의 말  

신 신학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준비된 교리에 관한 질문들은 대인기 가운데 출판되고 보급되었다. 신 신학사상은 교단 전체에 신속히 확산되어 셋째 천사의 기별은 땅에 묻혀버리는 듯이 보여 졌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었으며 셋째 천사의 기별 회복을 위하여 투쟁할 하나님의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책 출판에 첫 번째로 도전한 사람은 앤드리어슨이었다. 그러나 신 신학에 도전한 사람이란 결코 앤드리어슨 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아니하였다. 

재림교회 내부에서는 그 전날에 볼 수 없었던 대립과 분열 그리고 분파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 회복과 보존을 위한 동기와 의지가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앤드리어슨과 같은 세대에  그리고 그 후 세대에도, 마치 바알종교가 득세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000명을 남겨두신 것처럼, 신 신학에 도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각 세대 각 곳에 남아 있었다. 거기에는 학자들이 있었으며 또한 평신자들이 있었다.

니콜은 학자로서 신 신학의 영향을 받지 아니한 성경주석을 준비하므로써 성육신 진리에 서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공헌하였다. 라손은 재림교회 선구자들과 엘렌 화잇이 가르쳐온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진리의 증언들로 우리들의 확신을 굳세게 하고 새롭게 해 주었다. 그러나 사탄은 그 확신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재림교회의 신학이란 발전되고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혹은 “엘렌 화잇 자신도 성숙해 갔으며 그녀의 가르침도 변화되어 갔다,”등의 말을 가지고 우리들이 가진 확신을 무너뜨리려고 하였다.    

우리는 오늘 결정하여야 한다. 우리는 신 신학과 전통적 가르침 중간에 서서 머뭇거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는 오늘 그 한편에 서기로 결정하여야 한다. 우리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결정하여야 하며 그 기별의 회복을 위하여 투쟁한 하나님의 종들의 뒤를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참고 문헌
SDA Bible Commentary vol. 7A 437-488.
Questions on Doctrine, 1957.
LeRoy Edwin Froom, Movement of Destiny, 1971.
Anthony A. Hoekema, The Four Major Cults, 1963.


문창길(CHARLES MOON) 목사는 1962년 도미하여 덴버신학대학(M.R.E.), 앤드루스신학대학(B.D.),매코믹신학대학원(D.Min.) 등에서 수학하였다. 1972년 시카고 지역에서 조직된 한인교회의 초대목사로 시작하여 1981년 하와이 호놀루루 교회, 그 후에 캐나다 토론토 교회 등에서 목회에 임했다. 토론토 교회에서의 마지막 사역을 마치고 1996년에 정년 은퇴한 후, 건강 생활 연구, 저술과 교편 생활 및 지역 사회 봉사에 임하였으며 더불어 중국에 수차례 오가며 성경과 건강 생활을 가르쳤다.